2008년 무자년(戊子年)을 알리는 소리가 엊그제 같은해 벌써 한 해가 갔다. 한 해를 마감하는 이때를 돌이켜 보면 다사다난 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지만 올 한해는 더욱 그런 것 같다. 지난 연말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 출범 이후 변화된 정국과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의 탄생은 국내외 ‘빅’이슈였다. 시대가 변화를 요한다는 것은 그만큼 절박하다는 반증으로 해석된다. 국내에선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숭례문이 불탔고 미국산 수입 쇠고기 재개 문제를 둘러싼 촛불정국으로 뜨거웠다. 남북관계는 경색됐고 미국발 금융위기는 전세계를 경기침체로 내몰았고 우리도 ‘제2의 IMF’의 악몽을 꾸고 있다. 2008, 한 해를 정리하는 국내외 이슈 10가지를 선정했다. MB정국 지난 12월 대선에서 국민들은 17대 대통령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선택했다. 더불어 10년만에 한나라당은 정권교체를 이뤘다. 10년간 IMF 외환위기를 겪고 지칠 때로 지친 국민들은 “경제만 살려달라”며 이 대통령에게 한 표를 던졌다. 논란이 불거졌던 이 대통령의 일부 비도덕한 행위조차 문제 삼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사를 통해 “경제 살리기와 국민통합, 실용주의”를 강조하고 “2008년을 산업화와
헌재 전원재판부는 11월13일 종합부동산세(종부세)에 대한 헌법소원 및 위헌법률심판 사건 선고에서 세대별로 합산해 공시가격 6억 원을 초과하는 주택에 종부세를 부과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또 주거목적으로 한 채의 주택을 일정 기간 이상 보유하거나 한 것 등에 종부세를 부과하는 규정에 대해서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즉 이 결과 여·야는 물론 여권 내부, 청와대와 야당, 전·현 정권 등을 둘러싼 갈등이 겹쳐지면서 정치권이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의 살얼음 판을 걷고 있다. 국회 재정위는 11월19일부터 조세소위원회를 열어 종부세를 비롯한 140여 개에 달하는 세법 개정안 논의에 들어갔으며 ‘감세법안’을 놓고 여·야간 본격적인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시민단체와 야당내 일부의원은 논평 등을 통해 “헌법의 경제민주화 의미를 유린한 헌법재판소의 잘못된 판결”이라며“헌재 결정과 별개로 극심한 부동산 소유 편중 완화 입법적 보완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종부세 폐지’안 놓 고 당·정 딴 목소리 정부의 재산세 통합에 홍준표 대표 정면으로 반박 헌재 전원재판부는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에 대한 결정문에서 “세대별
노무현 대통령은 종부세 세대별 합산에 대한 헌재의 위헌결정을 보고받고 “부자들의 세금은 계속 깎이는데 중산층과 서민의 물가나 전기료, 가스료는 올라 국민 살림살이가 참 걱정이다”고 말했다고 김경수 비서관이 전했다. 노 대통령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운 종부세 정책이 위헌 판결을 받자 불편한 심기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판결에 대해 일부 정치인들은 기획재정부 강만수 장관의 헌재와의 접촉설 등으로 인해 MB정부가 노무현 정권때 일궈낸 주요 정책들의 흔적을 지우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고 밝혔다. 특히 종부세에 대한 논란이 지속될 경우 정부와 한나라당이 부자편들기에 나서고 있다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따라 종부세의 재산세 통합의 틀을 만들어 정부 여당의 이미지 개선과 함께 세대별 합산에서 인별 합산에 따른 세수 부족분을 충당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종부세 재산원본 잠식은 잘못 민주당 이용섭 국회의원은 ‘종합부동산세를 둘러싼 거짓과 진실’이란 보고서에서 정부는 종부세를 무력화내지는 폐지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합헌이라고 헌재에 낸 의견을 두 달 만에 위헌이라고 의견을 바꾸는가
미국 건국 역사 232년 만에 새로운 변혁이 일어났다. 2008년 11월4일(현지시각) 미국은 역사상 최초로 흑인 대통령을 선택했고 앞으로 미국은 물론 세계에 변화의 바람을 예고했다. 미국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47세)가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를 제치고 제44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이에 따라 러닝메이트인 조지프 바이든(65세) 상원의원은 부통령에 당선됐다. 오바마는 5일 오전 1시(한국시각 5일 오후 3시) 현재 캘리포니아 오하이오 플로리다 버지니아주 등 27개주에서 338명을 확보해 19개주에서 155명을 얻는데 그친 매케인을 더블스코어차로 따돌리고 압승을 거뒀다. 미국이 오바마를 선택한 이유 그는 개표초반 매케인 후보와 버지니아, 미주리, 오하이오주 등지에서 접전을 벌였지만 개표 종반 뒷심을 발휘해 역전을 이끌어냈다. 선거를 앞두고 우려했던 이른바 ‘브래들리 효과(여론조사에서 흑인후보를 지지한다고 답한 백인 유권자들이 정작 투표장에서는 백인 후보에게 투표하는 현상)’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로써 공화당 출신인 조지 부시 대통령의 집권 8년 이후 민주당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지게 됐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오바마 당선에 힘입어 대선과 함께 실시된 상·하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미국 역사에 일대 변혁을 일으킨 버락 오바마 당선자. 그는 대부분 전임 대통령이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것과 달리 중산층과 다문화 가정이란 독특한 배경을 가진 인물이다. 그런 그가 세계의 중심인 미국을 이끌 새 지도자가 된 것은 마이너리티(소수집단)를 극복한 불굴의 의지와 가족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4년 존케리 후보 지지연설… 정계 ‘샛별’로 등극 오바마는 1961년 8월4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태어났다. 케냐에서 하와이대학으로 유학온 아버지와 미 캔자스 출신의 백인 어머니(95년 난소암 사망) 사이였다. 그러나 그의 어린시적은 평탄치 못했다. 그가 두 살이던 때 부모는 이혼했고 이후 어머니가 인도네시아 출신 국비 장학생과 재혼하면서 인도네시아에서 살았다. 열 살 때 다시 하와이로 돌아온 오바마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와 함께 살게 됐고 어머니는 두 번째 이혼을 한 뒤 77년 인류학 공부를 위해 다시 인도네시아로 떠났다. 오바마는 하와이 명문 사립학교인 푸나호우 스쿨에서 초중고 시절을 보냈으나 인종문제와 열등감으로 방황하면서 한때 마약에 손을 대기도 했다. 하지만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지극한 사랑으로 오바마는 제자리를 찾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민선 4기 전반기는 경기도가 아니라 대한민국도 좁았다. 외자유치, 보트쇼 등 경기도의 성장과 품격을 높이기 위해 하루가 멀다하고 세계를 누볐다. 또한 김문수 지사는 잘사는 경기도를 구현하기 위해 규제개혁 교통환경개선 명품신도시 경기서해안개발 등에 전력했다. 특히 김지사는 유니버셜 스튜디오, 세계적 물류기업 프로로지스사 유치와 국제보트쇼의 성공적 개최 등으로 경기도를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서게 했다. 23건의 법률 재·개정 등 규제개혁 실마리 마련 경기도는 투자유치 다변화로 외자유치 106억 달러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기존 투자유치가 제조업 중심으로만 이뤄진 것을 물류, 관광테마파크, 유통, 디지털문화콘텐츠 등 서비스업종으로 투자유치 분야를 확대했다. 그 결과 프로로지스사 20억 달러, 유니버설스튜디오 31억 달러, 포천 에코 디자인시티 36억 달러, 한국 3M 2.2억 달러 등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 예상보다 빠른 시간에 100억 달러 투자유치성과를 이끌어 냈다. 경기도의 투자유치 성적은 앞으로 더욱 좋아질 전망이다. 규제개선이 이뤄지는 등 투자 여건이 좋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이 지역에 외국 교육기관, 의료기관, 호텔, 복합관
1988년 출범한 노태우 정부는 개헌에 의한 직선제로 국민의 선택을 받았으나 근원적으로 군사정권의 틀을 벗어 버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후 본격적인 문민정부로의 인정을 받은 김영삼 정부는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경제파탄을 불러 왔으며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은 햇볕정책을 위한 대북 선심성 정책으로 국민들의 정체성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했다. 이 결과 ‘평화적 정권교체’ 등 민주화 20년에 대한 성과를 격하시키는 우를 범하기도 했으나 이 기간동안 IMF와 카드대란 등을 극복한 우리로서는 국제사회로부터 글로벌 시대의 경제적 주체로서의 자격을 인정받기도 했다. 이와함께 80년대 말 ‘88서울올릭픽’을 계기로 등장한 ‘세대론’를 비롯해 90년대 초부터 급속도로 성장한 ‘휴대폰’ 문화, 2000년대의 ‘한류열풍’ 등은 기존 사회·문화적 트랜드 변화에 단초를 제공하기에 이른다. 편집자 주 민주화 20년 희망 한국의 토대 마련 인간다운 삶 보장하는 실질적 민주주의 달성엔 여전히 한계 한국은 민주화 20년 동안 경제발전과 자유민주주의를 동시에 발전시킨 저력의 나라로 자리매김했을 뿐 아니라 지난 세월동안 이뤘던 성과는 선진한국으로 가는 희망의 토대를 만드는데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노동’을 빼놓고는 가진 게 없었던 대한민국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그 작은 나라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개최하고 세상에 알려졌고 한국은 ‘수출 주도형’ 국가로 탈바꿈했다. 자동차, 선박 등의 수출을 주도하고 IT 최강국으로 이름을 날렸다. 세계 11위의 무역대국이라는 성과를 얻었지만, IMF 외환위기와 서민경제가 파탄나는 고통도 감수해야 했다. 그간 우리 경제는 거품과 경기침체, 경기부양을 오가는 ‘냉온탕’식 흐름을 보였다. 한국경제의 지나온 20년을 과거시간으로 되돌려 본다. 정권마다 ‘경기부양’ 유혹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89년, 재계와 언론은 ‘총체적 위기론’을 들고 나왔다. 정부는 증시부양과 건설투자 확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 부작용으로 땅값이 폭등하고 물가가 치솟았으며 경상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서서 경제는 더욱 심각한 위기로 빠지고 말았다. 증시는 1989년 3월31일 1003.31포인트를 기록, 증시 1000시대를 열었다. 90년대 들어서 증시는 개방의 물결을 타게 된다. 1992년 1월 외국인에 시장개방이 되면서 외국인 투자자는 우리 증시를 좌지우지하는 시장 주도세력으로 자리를 차지했다. 당시 노태
20년 전 대한민국은 88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그 어느 때보다도 번영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샴페인 거품은 빨리 꺼졌다. IMF 쓰나미가 몰아치고 서민들의 삶은 더욱 힘겨워졌다. 1990년대 당당한 신세대가 등장했지만, 2000년대에는 88만원 세대가 울고 있다. 주윤발과 ‘뉴키즈 온 더 블록’에 열광하던 청소년들은 서태지에 몰입하고 한국영화에 몰려들었다. 아시아에 한류 광풍이 불었다. 짧은 20년의 역사에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대목은 많았다. 올림픽 거품, IMF 폭풍… 그리고 월드컵 1980년대 후반 올림픽 이후 당시 고성장으로 과소비라는 단어가 사회 전반을 지배했다. 상류층의 환락을 상징하는 오렌지족이라는 단어도 유행했다. 당시 올림픽을 준비하며 대도시는 새로운 인프라를 확충했다. 하지만 그 개발의 과정에서 판자촌은 정부 선전용 밝은 그림들로 대충 가려졌다. 이것이 1980년대 한국의 현실이었다. 곪아터진 상처를 대충 못 본 채 가리면서 ‘코리안 드림’의 환상만 계속 키웠던 것이다. 환상은 머지않아 깨졌다. 1997년 IMF라는 시련이 찾아왔다. IMF는 많은 것을 바꾸었다. 양극화는 더욱 심화됐고 몰락한 중산층들이 절망의 늪에서
미국 금융시장 불안이 전 세계 증시를 강타했다. 이번 사태로 최근 상승세를 유지했던 미 달러화는 다시 주저 앉기 시작했으며 국제 외환시장에서는 유로화에 대한 달러화 가치도 2개월 만에 최저치로 급락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금융시장 불안으로 투기자금이 다시 원유 등 현물시장으로 몰릴 경우 유가 상승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 상황 악화와 유가 급등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은 고스란히 국내 금융시장에 직격탄을 날리고 말았다. 추석연휴 후 개장된 9월16일은 말 그대로 ‘검은 화요일’로 급변하는데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거래소와 코스닥을 합쳐 하루 새 시가 총액이 51조 원 넘게 사라졌으며 외환시장에서도 비명이 터져 나오는 등 국내 증시와 외환시장이 받은 타격은 미국과 일본, 유럽, 중국 등 가운데 가장 컸다. 이에따라 정부는 긴급점검 회의를 개최하는 등 사태파악과 함께 대비책을 만들어가고 있으나 자칫하면 제3의 경제위기로까지 번질수도 있다는 경고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유럽·아시아증시 혼돈 상태 빠져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후폭풍 일제히 세계 강타 지난해 여름부터 제기돼온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후폭풍으로 인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한국 코스피지수는 9월16일 오전 10시 지난 주말(9월12)보다 91.17포인트(6.17%포인트) 떨어진 1386.75를 나타내고 있으며 코스닥지수도 같은 기간에 비해 32.63포인트(6.99%포인트)가 하락한 434.28을 기록했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96.68포인트(6.54%포인트) 폭락한 1381.24로 거래를 시작해 장중 한때 2007년 3월5일 1376.15(종가 기준) 이후 1년6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환율 역시 큰 폭으로 올라 금융시장에 대한 불안심리를 그대로 드러내기도 했다. 9월16일 오전 10시 현재 서울외환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지난 주말보다 31.2원 오른 1140.7원을 기록했을 뿐 아니라 장중 한때 전날보다 34.7원 폭등한 1144.2원을 기록했다. 원·달러 환율이 1140원대를 기록한 것은 2004년 10월19일 1144.8원(종가 기준) 이후 3년11개월 만에 처음이다. 증시 침체로 펀드 손실 역시 눈덩이 처럼 불어나고 있다. 연초 이후 손실액을 따지면 해외 주식형 펀드 21조7000억 원(순자산 기준), 국내 7조4800억 원이 날아간 셈이된다. 외부 작은 파동에도 ‘휘청’
청와대는 8월24일 보도자료에 이어 9월1일 청와대 뉴스레터 제9호를 통해 ‘이명박 정부 취임 6개월 성과 및 향후 국정운영 방향’에 대한 언론 및 국민들을 상대로 홍보에 나섰다. 청와대는 홍보자료에서 이명박 정부 취임 6개월을 ‘대·내외 어려움속 삶의 선진화를 준비한 6개월’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국정의 중심으로서의 ‘국민의 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한층 강화했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공공요금 동결 등 서민생활 안정위한 물가 잡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새로운 실용외교의 모델제시, 남북관계 새로운 틀 구축, 경제살리기, 튼튼한 안보, 수요자 중심 복지 체계 개편에 초점을 맞췄다고 덧붙였다. 이와함께 향후 국정운영 방향으로 내세운 △녹색성장 △생활공감 △국민안전 제도 장치 강화 등을 달성하기 위해 ‘MB노믹스’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 놓고 있다. 또한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의식한 듯 9월9일에 ‘국민과의 대화’를 비롯해 추석 귀성길에는 ‘대국민 추석인사 메시지’를 갖고 국민곁으로 다가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 등 야권과 일부 시민단체들은 한나라당의 ‘DJ·노무현으로 잃어버린 10년’에 빗대어 ‘강부자 인사·
이명박 대통령은 8월18일 국무회의에서 “취임후 지난 6개 월은 워밍업(준비운동)을 한 기간이었다”며“이제는 상황를 모면하려고만 하지 않고 초기에 세워놓은 원칙에 충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쇠고기 파동 등의 후폭풍으로 인한 ‘잃어버린 6개월’을 거울삼아 하반기 국정운영에 대한 주도권을 쥐고 강력한 정책을 펼쳐나가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주변 환경이 그리 녹녹치만은 않은 것도 현실이다. 이명박 정부의 종교탄압을 중지하라는 조계종 등 불교계의 반발이 예상외로 거칠게 저항하고 있어 후반기 이명박 정국의 최대 현안으로 떠 오르고 있다. 여기에다 집권초부터 논란의 대상으로 꼽히고 있는 좌·우 이념대결과 일본 자민당 후쿠다총리의 사임후 불거지고 있는 강경우파 총리의 등장에 따른 한일관계, 좀처럼 상황이 나아지고 있지 않은 대내외 경제 여건 등이 발목을 잡을 공산이 큰 것이다. 경부대운하 ‘취소’ 아닌 ‘중단’ 이명박 대통령은 국내 경기 회복을 위해 8·15 광복절을 계기로 국가를 위해 필요한 개혁을 당당하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나타내 보였다. MB로부터 등을 돌린 촛불 등의 반대여론에 더 이상 떠밀려 다니지 않겠다는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