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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와 격동의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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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무자년(戊子年)을 알리는 소리가 엊그제 같은해 벌써 한 해가 갔다. 한 해를 마감하는 이때를 돌이켜 보면 다사다난 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지만 올 한해는 더욱 그런 것 같다. 지난 연말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 출범 이후 변화된 정국과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의 탄생은 국내외 ‘빅’이슈였다. 시대가 변화를 요한다는 것은 그만큼 절박하다는 반증으로 해석된다. 국내에선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숭례문이 불탔고 미국산 수입 쇠고기 재개 문제를 둘러싼 촛불정국으로 뜨거웠다. 남북관계는 경색됐고 미국발 금융위기는 전세계를 경기침체로 내몰았고 우리도 ‘제2의 IMF’의 악몽을 꾸고 있다. 2008, 한 해를 정리하는 국내외 이슈 10가지를 선정했다.
MB정국
지난 12월 대선에서 국민들은 17대 대통령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선택했다. 더불어 10년만에 한나라당은 정권교체를 이뤘다. 10년간 IMF 외환위기를 겪고 지칠 때로 지친 국민들은 “경제만 살려달라”며 이 대통령에게 한 표를 던졌다. 논란이 불거졌던 이 대통령의 일부 비도덕한 행위조차 문제 삼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사를 통해 “경제 살리기와 국민통합, 실용주의”를 강조하고 “2008년을 산업화와 민주화에 이은 대한민국 선진화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취임 초반 맞닥뜨린 미국산 쇠고기 파동에서 보여준 국민적 실망감은 극에 달했고 ‘제 식구 챙기기’에 나선 내각 구성은 ‘강부자 내각’이라는 오명을 썼다. 여기에 소망교회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이 ‘소망인’을 대거 인력에 기용해 논란을 낳기도 했다. 경제 정책엔 서민은 없고 부자들을 위한 정책만이 난무한 것을 보면서 서민들의 배신감은 컸다. ‘경제 대통령‘을 표방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발 금융위기에 따른 국내 실물경기 침체의 덫에 걸려 내우외환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참여정부가 유지했던 부동산값 안정화 정책과 지난 10년간 일궈왔던 북한과의 교류를 뒤엎고 있는 점 등 여론의 힘을 얻지 못하는 이명박식 불도저 정책에 ’공안정치‘, ’독재정치‘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정부는 오래 가지 못한다. 실용정부 1년이 지났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이명박 정권은 취임 초기 주창했던 “경제살리기와 국민통합, 실용주의”를 말이 아닌 실천으로 보여줘 국민의 신뢰를 다시 얻어야 할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와 촛불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와 관련된 ‘촛불정국’으로 취임 신고식을 거하게 치렀다. 미국산 쇠고기를 둘러싼 광우병 파동으로 반대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났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강한 의지는 단호했다. 지난 4월, 미국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개정안 협상이 타결된 뒤 시작된 촛불집회는 장장 100회를 넘어 장기간 지속됐다. 남녀노소 불구하고 다양한 연령층의 국민들이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경찰은 촛불집회 참여자를 체포하고 물 대포를 이용해 집회해산을 요구하는 등 사회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경찰의 압박이 심해질수록 촛불은 더욱 거세졌고 민심의 바다는 이명박 정부를 향해 칼날 같은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50%를 육박하던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촛불정국에 가로막혀 10%대로 급락했다.
국민의 과반수 이상이 반대하는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려는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간의 뒷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축도 난무했다. 어찌됐든 전국을 촛불로 뒤덮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은 재개됐고 선택은 국민에게 맡겨졌다. 미국산 쇠고기가 판매되더라도 정상화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으나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미국산 쇠고기는 판매개시가 무섭게 팔려 나간 반면 한우 판매는 급속도로 줄었다. “값이 한우나 호주산 쇠고기보다 싸다”는 메리트를 져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에 광우병 파동이 일기 직전인 2003년 1월부터 12월24일까지 우리나라가 수입한 미국산 쇠고기는 무려 19만9,400t으로 전체 쇠고기 수입량의 80%를 차지했다. 촛불시위를 하며 날밤을 새웠던 국민들은 어디 가고 줄을 서서 미국산 쇠고기를 사려는 사람들이 즐비한 모습을 보면서 한국인의 ‘냄비근성’에 뒷맛이 씁쓸해진다.
제2의 IMF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10년 후, 2008년 금융위기가 도래했다. 부동산값 폭등과 주식 2000시대 돌파의 축하 폭죽도 잠시, 지난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신청 등 미국의 금융대란의 여파로 세계경제가 동반 추락했고 우리도 심각한 금융위기에 직면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에 무리해 대출을 받아 집을 샀지만 금융대란으로 대출금리는 폭등하고 미분양 아파트가 넘쳐나 집값이 큰 폭으로 떨어져 ‘대출부담’과 ‘자산가치 하락’의 이중고를 겪는 서민이 적지 않다. 한때 주가 2000시대 돌파와 더불어 ‘펀드 광풍’이 일었건만 현재 주가가 반토막 나면서 큰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의 원성이 높다. 문제는 정부의 부적절한 실업자는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실물경제는 꽁꽁 얼어붙었다. 외환위기 때 겪었던 감원과 해고 바람이 본격화 되고 거리에 노숙자가 또다시 늘고 있다.
돈줄이 막힌 중소기업들의 부도가 확산되고 영세업자들은 가게 문을 닫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는 탄식이 터져 나온다. 경기악화는 적절한 처방을 내리지 못한 정부의 책임도 크다. 다들 ‘NO!’라고 외치던 고환율 정책을 밀고 나가 원화를 종이값으로 둔갑시켰고 경제에 마비를 가져왔다. 대신 경기를 부양하겠다며 마구잡이로 돈을 풀어 국가 재정만 악화시키고 있는 판이다. 국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정부의 정책은 인터넷상에서 ‘얼굴 없는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우는 ‘미네르바’를 교주처럼 섬기는 현상도 나타났다. 경기악화가 본격화되는 내년 경제전망은 더욱 어둡다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글로벌 경기둔화와 함께 서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우리 경제가 향후 어떤 길을 가게 될지 착잡한 심경을 거둘 수 없다.
얼어붙은 남북관계
MB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냉전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 10년간 갈고 닦은 햇볕정책은 온데 간데 없고 양측의 신경이 날카롭게 서있는 요즘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초부터 ‘북한에 무차별 퍼주기’식으론 안된다고 북한에 대한 생각을 어필한 바 있다. 이때부터 현 정부의 대북행보는 엇박자였다. 옥수수 5만t 지원문제로 시간을 끌다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 방침이 알려진 뒤에야 제안했다. 여기에 지난 7월 발생한 박왕자씨 피살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됐다. 미리 정한 절차를 밟듯 모든 남북교류가 사실상 단절됐다. 남북경협 시대의 개막을 알리며 56년 만에 재개통된 경의선열차가 1년도 못가 다시 멈춰 섰다.
북한의 ‘12·1 조치’로 경협사무소가 폐쇄되고, 1년 새 10만 명을 넘어선 개성관광 역시 막을 내렸다. 개성공단을 볼모로 한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은 현 정부 들어, 특히 미국에서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예고돼 왔다. 포용과 다자체제를 앞세운 오바마의 당선은 국제사회 ‘빅 브라더의 부재’로 받아들여져 집권초기 각국의 이해관계가 충돌, 갈등이 표면화 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북한은 대선직후 이근 국장을 발 빠르게 뉴욕에 보내 대미관계 개선에 나서면서, 한반도에는 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핵을 놓고 미국이 한국을 도외시한 채 북·미 직접대화와 대북제재를 추진, 한·미 갈등을 촉발했던 ‘김영삼-클린턴 시대’를 연상시킨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개성공단에 상주해 있는 우리 기업들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간다.
영광의 순간, ‘베이징올림픽’
경기침체의 그늘에도 2008년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베이징 올림픽은 세계인의 축제였다. 2008년 8월24일부터 8월24일까지 17일간 열린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은 금 13개, 은 10개, 동 8개를 따내 세계 7위 수성을 이뤘다. ‘각본없는 드라마’ ‘감동의 서사시’의 연출은 올림픽의 묘미를 한층 더해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올림픽 전부터 유명세를 치렀던 스타들의 암울한 퇴장을 보았고 ‘반짝’하고 탄생한 스타도 보았다. 베이징올림픽 최고의 스타는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23.미국)와 육상의 ‘선더 볼트’ 우사인 볼트(22.자메이카)를 꼽을 수 있다. 펠프스는 베이징올림픽에서 단일 대회 최다인 8개의 금메달을 쓸어담으며 1972년 뮌헨 대회에서 ‘미국 수영의 전설’ 마크 스피츠가 작성한 7관왕 기록을 깨 세계를 놀라게 했다. 4년 전 아테네에서 똑같은 8개 종목에 도전했지만 금메달 6개에 동메달 2개로 스피츠의 7관왕에 살짝 못 미쳤던 펠프스는 세계 수영의 새 역사를 쓴 것이다. 수영에 펠프스가 있다면 육상에는 ‘가장 빠른 사나이’ 볼트가 존재한다. 세계신기록(9초69)으로 남자 육상 100m를 우승한 볼트는 200m에서도 또 세계신기록을 작성하고 정상을 밟은 데 이어 400m 계주까지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다.
한국이 만든 올림픽 스타는 ‘마린보이’ 박태환(19.단국대)과 ‘여자 헤라클라스’ 장미란(25.고양시청)가 단연 돋보인다. 박태환(19.단국대)은 남자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 200m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한국 수영역사를 새로 썼다. 특히 박태환의 올림픽 자유형 금메달은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획득한 금메달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또한 역도에서 세계 신기록을 다섯 차례나 작성한 장미란은 ‘세계에서 가장 힘 센 여자’란 타이틀을 거머쥐며 주목을 받았다. 극본없는 드라마는 또 한 번 쓰여졌다. 4년 전 결승전 패배의 아픔을 딛고 다시 모인 여자핸드볼은 노르웨이와 준결승전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넣고도 종료 직전 결승골을 내줘 통한의 눈물을 흘렸지만 동메달 결정전에서 헝가리를 꺾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멜라민 공포
지난 9월 중국발 멜라민 파동이 전세계를 충격으로 몰아 넣었다. 중국에서 멜라민이 함유된 분유를 먹고 신장결석에 걸린 영아들이 중국 전역에서 30만명에 달하고 6명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은 담백질 함량이 높은 것처럼 꾸미기 위해 유제품에 멜라민을 섞어왔다. 멜라민 파동으로 세계시장에서 중국식품에 대한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불매운동까지 벌어졌다. 유럽연합은 이 사건을 계기로 중국산 우유의 수입을 금지했다. 국내에서도 중국산 과자 10개 제품에서 최대 271.4ppm의 멜라민이 검출됐다. 특히 해태제과의 미사랑카스타드는 멜라민 검출 소식이 전해지면서 생산 및 수입이 중단되는 등 크게 홍역을 치뤘다. 국내에서 멜라민은 이미 지난 3월부터 문제가 됐다. 반려동물 사료에서 멜라민이 검출된 것. 급기야 아이들이 먹는 분유 뿐 아니라 해산물, 치약, 커피크림 등에도 멜라민이 첨가된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 정부의 늑장 대처는 많은 국민들의 원성을 사기에 충분했다. 정부는 뒤늦게 수입식품 검역을 강화하겠다고 나섰지만 소비자들의 불신과 불안은 여전하다. 한편, 멜라민에 오염된 분유를 먹고 신장결석에 걸린 영아들의 부모들이 문제의 진원지가 된 분유 제조사인 싼루(三鹿)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첫 집단소송에서 법원은 ‘기각’했다. 지난 9월 22일 이후 란저우(蘭州) 등지에서 멜라민 분유 피해와 관련한 수차례의 개별소송이 제기됐으나 법원에 의해 소송이 받아들여진 사례는 아직까지 한 건도 없다. 값이 싸다는 것을 무기로 중국산 제품은 전세계를 점령하고 있다. 하지만 잦은 파동은 전세계 소비자들의 불신 야기한다. 돈벌이에만 눈이 먼 중국인의 파렴치한 행위를 언제까지 용인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역사속으로 사라진 숭례문
국보 1호 숭례문이 지난 2월10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600년 역사를 간직한 채 언제나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건만 한 70대 방화범에 의해 무참하게 불태워졌다. 사건은 70대 채모씨가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토지보상 문제에 불만을 품고 숭례문에 들어가 시너를 부은 후 불을 붙인 게 발단이었다. 그는 2006년 같은 이유로 창경궁에도 방화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방화범은 징역 10년을 구형받고 구속수감됐다. 국보1호의 보물이 단순한 방화범에 의해 짓밟힐 수 있었는지 충격을 감출 수가 없는 사건이었다. 더욱이 화재 진압 과정에서 초기 소방당국과 문화재청의 대처에 문제가 있었다는 논란도 제기됐다. 또한 숭례문 내에 소화기가 1,2층에 나눠 배치되고 상수도 소화전이 설치된 것과 사설경비 업체의 무인경비시스템에 의존해 왔으며 화재감지기, 경보설비 등은 전혀 없었다는 점도 화재 예방의 취약점으로 드러났다. 숭례문의 문화재 보험금이 9500만원 밖에 되지 않아 개방을 했음에도 관리가 잘 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화재로 붕괴된 숭례문 원형 복원에는 2~3년이 걸리며 200억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면 무엇하랴! 숭례문의 주요 부분들이 모두 불에 탔기 때문에 원형 그대로 재현하기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또 제아무리 완벽하게 원형 그대로 복원한다 해도 600년의 역사를 숨쉬어 온 숭례문은 사라진, ‘모형’에 불과하다. 문화재는 곧 그 나라의 역사이며, 재산이다. 안전 불감증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화재를 보호하고 아끼는 자세부터 배워야겠다.
미국의 변화, ‘오바마’
미국 건국 역사 232년 만에 흑인 대통령이 탄생해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초라한 흑인의 정치적 위상 때문에 오바마 상원의원의 대선출마는 무모한 도전으로 여겨졌지만 마침내 그 높은 인종의 벽을 허물었다. 2008년 11월4일(현지시각)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47세)가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를 큰 표차로 제치고 제44대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이로써 공화당 출신인 조지 부시 대통령의 집권 8년 이후 민주당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지게 됐다. 지난 9월까지도 매케인과 박스권 경합을 벌였던 오바마가 막판 대세를 굳힌 것은 월가의 금융위기가 확산되면서 조지 부시 대통령 집권 8년 만에 대한 민심 이반과 정권교체론이 부동표의 표심을 결정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오바마는 흑인의 대부분, 히스패닉의 3분의2, 여성의 절반 이상에서 높은 지지를 얻었다. 특히 30세 이하 젊은층에서는 오바마 지지가 배 이상 높았다. 그만큼 미국은 변화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의 당선으로 미국 정치에서 인종주의의 마지막 장벽이 무너졌다”고 평가했다. 미국인이 오바마에게 기대하는 것은 그가 줄기차게 주장한 ‘변화와 희망’의 리더쉽이다. 뉴딜정책을 통한 새로운 비젼으로 대공황을 극복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나 젊고 강한 미국을 일깨워준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같은 강력한 리더쉽이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은 당선이 확정된 직후인 5일 0시(현시시각)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가진 연설에서 “변화가 미국에 도래했다”고 말했다. 출범 전 내각 구성부터 오바마의 리더쉽은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특히 오바마가 한때 라이벌이었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국무장관으로 기용한 점은,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엇갈린 운명과 비교되기도 했다.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오바마의 역사가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 세계의 관심이 주목된다.
종부세 사망선고
실용정부를 외치는 MB정부는 참여정부가 공들여 고집한 ‘종합부동산세’를 사실상 폐지했다. 종부세의 부당성을 주장해 온 한나라당은 헌법재판소에 종부세의 위헌을 제기했고 헌법재판소는 지난 11월13일 종부세 자체에 대해서는 정당성을 인정했지만 종부세 일부 조항에 위헌과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종합부동산세법 중 세대부 합산 부과 조항은 위헌으로 그날로 폐기됐고 거주 목적 1주택 보유자에게 부과하는 조항은 합헌불합치 결정으로 법을 고쳐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종부세의 근간이 되는 세대부 합산 부과와 1주택 보유자 부과 조항이 사라짐에 따라 부동산 투기로 인한 사회적 손실을 막을 마지막 안전핀으로 여겼던 종부세는 사실상 ‘사망선고’에 이르렀다. 게다가 정부와 한나라당은 현행 종부세 부과 기준을 6억에서 9억으로 대폭 올리고 과표 구간별로 1~3%인 세율이 0.5~1%로 줄어들게 돼 종부세를 내는 사람들은 거의 없게 된다. 따라서 종부세를 통해 집값을 잡겠다는 입법취지는 그 효용성이 다된 것이다. 종세의 유명무실화에 논란이 되는 점은 정권 초기부터 ‘부자 내각’으로 알려진 이명박 정부를 위한 결정이라는 점에 있다. 헌재 결정은 강만수 장관이 “헌재를 만났다”는 발언과 헌법재판관 9명 중 8명이 종부세 납부자라는 사실이 거론되면서 “결론은 이미 정해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미 신뢰를 잃었다. 종부세의 무력화로 서울 강남 등의 부동산 부자들은 막대한 경제적 혜택을 얻게 됐다. 상위 2%만이 내던 종부세는 상위 1% ‘부자 중의 초부자’들만이 내는 세금이 됐고 2조원이 넘는 세금은 대다수 중산층과 서민이 떠안게 됐다. 종부세의 세수가 크게 줄어들게 되면서, 지방재정도 악화될 게 뻔하고 1가구 다주택자들의 세금 부담이 거의 없어지면서, 부동산 광풍이 재현될 가능성도 커지게 됐다. 종부세 폐지, 진정 국민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별이 지다 ‘최진실 자살’
올해 최대의 연예계 화두는 최진실 사망이 아닐까 싶다. ‘시대의 아이콘’으로 불리우며 20여년간 연예계 대스타로 군림해 온 최진실의 안타까운 죽음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최고의 스타에서 이혼의 아픔을 겪고 최근 복귀해 다시 한 번 ‘최진실 효과’를 증명해 보였던 그녀가 지난 9월, 왜 자신의 집에서 목을 매 자살을 해야 했는지 믿을 수 없었다. 더구나 두 아이의 엄마로 강한 모습을 보였던 그녀였기에 안타까움은 더욱 컸다. 단정지을 순 없지만 경찰과 언론은 그녀가 ‘안재환 사채설’로 시달려왔고 그로 인해 자살을 선택했다고 추정했다.
탤런트 안재환의 자살이 있은 지 얼마 후 벌어진 일이라 그 충격은 더했다. 안재환은 수십억 빚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자신의 차 안에서 연탄불을 피워 자살했었다. 그런데 최진실이 평소 친분이 두터운 정선희의 남편 안재환에게 20억의 사채를 빌려주고 압박하는 과정에서 안재환이 자살했다는 내용이 증권가에서 나돌기 시작했고 이같은 루머를 증권가 직원이 인터넷상에 퍼트리면서 故 최진실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이다. 최진실을 죽음으로 내몬 이 루머가 사실인지, 근거 없는 소문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로 인해 생각없이 루머를 퍼트린 여직원은 여론의 뭇매를 당해야 했고 국회에선 ‘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하자며 ‘최진실 법’을 들고 나왔다. 문제의 심각성은 유명인의 자살이 충동적인 모방자살을 부추긴다는 ‘베르테르 효과’로 드러났다. 실제로 최진실이 자살한 2~3일간 전국에서 5명의 여성들이 최진실처럼 자신의 집에서 목을 매 숨지는 수법으로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제는 그녀의 가슴 벅찬 연기를 볼 순 없지만 그녀가 남긴 수십편의 작품을 통해 우리들 기억 속에서 영원히 간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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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순의 아트&컬처] 다른 듯 닮은 남매 작가 윤석남 윤석구 첫 2인전 <뉴라이프 New Life>
한 가문에서 유명 작가가 여럿 나오기는 쉽지 않다. 국내 대표적인 여성주의 미술작가 윤석남(85)과 조각가 윤석구(77)는 한 뿌리에서 나고 자라난 남매 예술가다. 윤석남이 여성사를 발굴해 여성의 목소리를 되살리는 작업을 해왔다면, 윤석구는 물질만능주의와 자본주의를 성찰하고 생명에 애정을 보이는 작업을 해왔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에서 열리고 있는 윤석남 윤석구의 2인전 ‘뉴라이프 New Life’전은 두 남매가 함께 여는 첫전시다. 윤석남은 2000년대 초반 그린 드로잉 80여 점을, 윤석구는 미발표 신작 17점을 내놓았다. 두 사람이 미술로 함께 한 것은 2012년 전북 익산국제돌문화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한 조각이 유일하다. 이번 전시는 동생 윤석구의 조각 작품을 중심으로 윤석남의 2000년대 드로잉을 소개한다. #윤석구, 물질적 욕망 부추기는 자본주의 비판 “살아가면서 하나의 틀에서 출발하는데, 이러한 틀을 극복하지 못하는 우리의 삶에 대해 생각하며 ‘치유와 새 생명 탄생의 의미를 담은 작품을 하게 됐습니다.” 윤석구는 15년 전 독일 유학에서 돌아온 후 원광대학 미술대학에서 제자를 기르고 작업을 하면서 숙명적인 틀을 느꼈다고 한다. “비슷한 작업을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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