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동훈 기자] 삼성전자 기흥반도체 공장의 노동자였던 황유미 양이 2007년 3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하며 촉발된 '반도체 백혈병' 분쟁의 당사자들이 24일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의 향후 중재안을 무조건 받아들이기로 약속했다.
삼성전자와 삼성전자 백혈병 피해자를 대변하며 활동해온 시민단체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조정위 등 3자는 이날 법무법인 지평에서 열린 '제2차 조정재개 및 중재방식 합의 서명식'에 참석해 서명했다.
이들 3자가 이날 서명한 합의문은 향후 조정위가 마련할 중재안을 삼성전자와 반올림이 무조건으로 수용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골자다. 삼성전자와 반올림이 조정위를 전폭적으로 신뢰한다는 것이 전제로 깔려 있다.
반올림 측 서명자로 나선 고 황유미 씨 아버지 황상기 반올림 대표는 "조정안을 무조건 받는 방식으로 합의한 것이므로 사실상 종료(최종) 합의"라고 말했다. 그는 "칭찬할 수 없는 것은 삼성이다. 끝까지 책임을 회피하면서 10년 넘게 있다가 인제야 미흡하게 해결하는, 섭섭하고 못난 삼성"이라고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황 대표는 "삼성을 비롯해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변해야 하고, 사회나 노동자와 소통해야 한다"며 "세상은 변해가는데 삼성맨들만 소통에 눈뜨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반올림의 공유정옥 간사는 "이렇게 지난한 시간을 거쳤지만, 결국은 당사자 간 직접 대화가 아니라 중재라는 방식으로 마무리하게 돼 아쉽다"며 " 이것이 사회적 문제이고 그런 차원에서 해결책을 마련하겠다던 조정위의 처음 약속을 믿고 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중재 합의는 삼성전자에도 어려웠을 것"이라며 "어렵게 도달한 약속인 만큼 규모와 위상에 걸맞게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 문제를 해결해줬으면 하는 사회 구성원들의 요구와 바람이 삼성에 가닿기를 정말 진심으로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어 "2015년 10월 삼성전자의 거부로 인해 당시 권고안에 대한 논의조차 못 하고 거리에 나와 농성을 시작한 지 오늘로 1022일째"라며 "오늘 서명한 합의에 따라 내일 문화제를 끝으로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 농성장을 닫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정위는 오는 8∼9월 중재안 내용을 긴밀한 논의를 통해 마련하고, 9월 말에서 10월 초 사이에 2차 조정 최종 중재안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후 10월 안에 삼성전자가 반올림 소속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완료한다는 것이 현재 조정위가 제시한 일정이다.
향후 조정위가 내놓을 2차 조정 최종 중재안에는 △ 새로운 질병 보상 방안 △ 반올림 피해자 보상안 △ 삼성전자 측의 사과 △ 반올림 농성 해제 △ 재발 방지 및 사회공헌 등의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조정위 계획대로 중재안 합의와 삼성전자의 피해자 보상이 연내 마무리되면 반도체 백혈병 분쟁은 약 11년 만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반올림이 파악한 삼성 직업병 사망자만 8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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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앞서 조정위원회는 지난 18일 삼성전자와 반올림 측에 '2차 조정을 위한 공개 제안서'를 발송했다. 조정위는 삼성전자와 반올림이 위원회가 만든 조정안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하는 방식 대신 양측 주장을 참고한 중재안이 나오면 반드시 따르도록 하는, 일종의 강제 조정 방식을 선택했다. 특히 한 쪽이라도 이를 거부할 경우 조정위원회 활동을 공식 종료하겠다며 강수를 띄웠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내부 논의를 거쳐 무조건 수용하기로 했다. 재계에선 지난 2월 초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된 이재용 부회장이 대승적인 차원에서 결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반올림도 이를 받아들였다.
황유미 씨는 속초상고를 졸업하고 2003년 10월 삼성전자에 입사한뒤 반도체 원판을 화학물질 혼합물에 담갔다가 빼는 작업을 하는 3 라인에서 근무하다가 2005년 10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판정받았다. 2005년 골수이익을 받았으나 2006년 백혈병이 재발, 결국 23세라는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