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세희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16일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폴란드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청소년 축구대표팀에 격려의 메시지를 남겼다. 문 대통령은 이날 북유럽 순방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기 직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멋지게 놀고 나온 우리 선수들 자랑스럽다"라고 적었다.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16일 오전 1시(한국시간) 폴란드 우치의 우치 스타디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와의 2019 FIFA U-20 폴란드 월드컵 결승전에서 1-3으로 역전패했다. 전반 4분 이강인(발렌시아)의 페널티킥 선제골을 지키지 못하고 연속 3골을 허용,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 남자 축구 역사상 첫 FIFA 결승전이었다. 스톡홀름의 백야처럼 대한민국의 밤도 낮처럼 환해졌다"며 "북유럽 순방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저도 응원의 마음을 보탰다"고 전했다. 세네갈과의 8강전 직전 "멋지게 한 판 놀고 나와라"라고 주문한 정정용 감독의 메시지를 인용한 문 대통령은 "선수들은 경기를 마음껏 즐겼다"며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믿고 동료들을 믿었다"고 언급했다. 이어 "젊음을 이해하고 넓게 품어준 감독님과 선수들은 우리 마음에 가장 멋진 팀으로 기억될 것이다. 자랑스럽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하나의 팀을 만들어오신 감독님, 코칭스태프, 축구협회 관계자 여러분도 수고 많으셨다"며 "축구 선수 아들을 뒷바라지하느라 애쓰시고 마음 졸여오신 부모님들께도 축하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러면서 “하나 된 마음과 서로를 믿는 신뢰는 어떤 상황도 이겨낼 수 있는 우리만의 힘"이라며 " 오늘 폴란드 우치에서 보내온 소식이 다뉴브강의 눈물과 애통함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들께서도 유족들이 슬픔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따뜻하게 손잡아주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스웨덴 국빈방문 일정을 모두 마친 문 대통령은 현지시각으로 15일 오후 8시40분(한국시각 16일 오전 3시40분) 스톡홀름 알란다 국제공항을 통해 전용기편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이날 오후 1시께 도착할 예정이다.
[시사뉴스 오주한 기자] 사상 첫 U-20 월드컵 결승에 올랐던 한국대표팀이 아쉽게도 우승컵을 놓쳤다. 대표팀은 16일 오전 폴란드 우치경기장에서 열린 우크라이나와의 결승에서 전반 4분만에 터진 이강인의 페널티킥 선제골에도 불구하고 3점을 잇따라 내주며 1:3으로 패했다.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이강인이라는 차세대 스타 발굴에 성공했다. 2골, 4도움을 기록한 이강인은 결승전 후 대회 최우수선수(MVP)에게 주는 골든볼을 수상했다. 한국 남자선수가 FIFA 주관 대회에서 골든볼을 수상한 건 처음이다. 대표팀은 17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이날 정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리는 환영식에 참석한다.
[시사뉴스 유한태 기자] 봄의 막바지 속 일상이 계속되던 지난 5월 29일 오후 9시,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발생한 한 사건이 긴급타전됐다. 우리 국민 33명을 포함해 35명이 탑승한 유람선 허블레아니(Hableany)호가 침몰한 것이다. 허블레아니호는 뒤따르던 대형 크루즈 선박과 충돌한 뒤 수면 아래로 흔적 없이 사라졌다. 6세 여아 등 승객 대부분이 실종됐으며 언론은 앞 다퉈 이 충격적인 사건을 국내에 긴급 타전했다. 일각에서 ‘제2의 세월호’ 악몽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지만 이번 정부는 달랐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의용 안보실장으로부터 사건 발생을 첫 보고받은 후 헝가리 정부와의 협력을 통한 구조활동, 강경화 외교장관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설치, 신속대응팀 현지 파견 등을 지시했다. 우선적으로 행정안전부, 소방청이 주축이 돼 지휘관 1명, 지원요원 2명, 심해잠수 요원 9명 등 12명이 급파됐다. 그리고 해군 해난구조전대 심해잠수사와 특수전전단 등에서 차출된 37명의 신속대응팀이 뒤를 따랐다. 문 대통령은 특별히 세월호 수색작업 참여 인력을 중심으로 꾸릴 것을 주문했다. 문 대통령 본인의 대응도 남달랐다. 오르반 빅토르(Viktor Orban) 헝가리 총리에게 전화해 적극적인 생존자 수색을 요청하는 한편 시신이 빠른 유속 영향을 받아 타국으로 유실될 가능성에 대비해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우크라이나 등 다국적 수색팀 조직을 당부했다. 가해선박인 ‘바이킹 시긴(Viking Sigyn)호’ 가압류를 요청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탄핵’ 야기한 ‘7시간’ 논란… 그때와는 확실히 달라 이번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에 대한 정부 대응은 이전 정부와는 확연히 달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 ‘행방’이 묘연했다. 박 전 대통령이 사고 관련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진 시각인 오전 10시 15분부터 중대본을 방문한 오후 5시 15분까지 그는 ‘실종’ 상태였다. 이른바 ‘세월호 7시간’ 파문이다.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행정권 수반(首班)으로 기능하는 최고 통치권자다. 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안 단 1초라도 그 행적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 언제 어디에서 발생할 지 모를 국가 차원 의 재난을 수습하기 위해 대책을 마련하고 각 정부 부처에 지시를 내릴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7시간 동안 ‘실종’된 것도 모자라 이날 오전 10시 무렵에야 출근하는 태만까지 저질렀다. 심지어 그날 오전 9시 19분께 각 언론매체에서 침몰 소식을 특보로 내보냈음에도 박 전 대통령은 손을 놓고 말았다. 그 사이 구심점을 잃은 각 부처는 우왕좌왕했으며 세월호는 오후 11시 18분께 선수(船首)만 남긴 채 차디찬 바닷물 속으로 완전히 가라앉았다. 사망·실종자 304명 중 대부분을 차지한 어린 학생들은 채 인생의 꽃봉오리를 피우기도 전에 눈을 감고 말았다. ‘지켜진 본분’ 政 대응 앞 여론 호평 우리 정부의 발 빠른 대응, 이에 따른 헝가리 당국의 협조로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수습되고 있다. 신속대응팀 잠수사들은 다뉴브강의 빠른 물살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돌보지 않은 채 강물로 뛰어들었다. 6월 3일 60대 남성과 50대 여성 시신 각 1구가 수습된 데 이어 이튿날에는 시신 3구가 추가로 발견됐다. 이후 연일 사망자들이 확인됐으며 11일에는 실종됐던 6세 여아의 시신이 생모로 추정되는 여성 옆에서 발견됐다. 이번 침몰사고에 대한 여론반응은 대단히 긍정적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4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이튿날 발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4.4%. 응답률 5.8%. 상세사항 리얼미터 홈페이지 참조)에서 ‘초기대응 잘함’은 61.4%에 달했다. ‘잘못(24.4%)’의 2배 이상 많은 수치였다. ‘매우 잘함’은 33.4%에 이르렀으며 ‘잘한 편’도 28.0%로 나타났다. ‘잘못한 편’은 15.2%, ‘매우 잘못’은 9.2%에 그쳤다. ‘모름·무응답’은 14.2%다. 문 대통령 지지율도 큰 하락은 없었다. 리얼미터가 6월 3~5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2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10일 발표한 여론조사(95% 신뢰수준에 ±2.2%p. 응답률 6.1%. 상세사항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또는 리얼미터 홈페이지 참조)에서 문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48.0%로 집계됐다. 부정평가는 46.7%였다. ‘골든타임 3분’ 등 막말 논란에 휩싸인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29.6%로 전주 대비 0.4%p 하락했다. 더불어민주당은 40.5%를 기록했다. 이번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로 가족·친지를 잃은 유가족의 슬픔은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다. 불의의 사고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불시에 찾아든다. 그것을 완전히 사람의 힘으로 예방하는 건 불가능하다. 누구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남은 이들의 슬픔을 최소화 할 수는 있다. 그것이 대통령과 정부의 존재이유다. 국민이 권력을 믿고 위임하는 까닭이자 정부와 국민 간의 약속이다. ‘본분(本分)’을 지킨다는 것, 문재인 정부에 대한 여론이 세월호 참사 때와는 사뭇 다른 이유다.
[시사뉴스 유한태 기자]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생의 동반자이자 여성운동의 선구자 였던 이희호 여사가 지난 10일 향년 97세로 별세했다. 그간 이 여사는 2000년 첫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간 화해협력을 위해 힘써 왔다. 햇볕정책과 그 산물인 6·15공동선언 정신을 유지하는 데 여생을 바쳤다. 고 이희호 여사는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국민을 위해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꽉 막힌 북핵 해결을 위한 대화의 장을 이끌어냈다. 북한 고위급 조의문 전달..남북 정상회담 모멘텀 마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2일 고(故)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별세에 대해 조화와 조전(弔電)을 보내며 애도를 표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후 5시께 판문점 통일각에서 김여정 부부장과 이현 통전부 실장을 통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호 통일부 차관,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 등에게 조의문과 조화를 전달했다. 윤건영 국정상황실장도 함께 자리했다. 이후 정 실장과 서 차관, 박 의원은 오후 7시께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해 권노갑 장례위원장과 유가족 등에게 조의문과 조화를 전했다. 김 위원장은 '리희호 녀사의 유가족들에게'라는 제목의 조의문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리희호 녀사가 서거하였다는 슬픈 소식에 접하여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와 위로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리희호 녀사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온갖 고난과 풍파를 겪으며 민족의 화해와 단합,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울인 헌신과 노력은 자주통일과 번영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현 북남관계의 흐름에 소중한 밑거름이 되고 있으며 온 겨레는 그에 대하여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 실장은 유가족에 조의문을 전달한 후 기자들과 만나 "김여정 부부장은 김 위원장의 각별한 애도의 뜻을 전하면서 김대중 대통령과 이 여사님의 유지를 받들어 남북관계가 더욱 화해와 협력의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기를 원한다는 취지의 말씀을 전했다"고 말했다. 박 의원 역시 "김 부부장이 이 여사님의 서거에 대한 애도와 이 여사님의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공로를 높이 평가하면서 김 위원장의 애도를 유족들과 장례위에 전달해 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美, “이희호 여사, 한반도 평화 위해 남북 간대화 촉진” 미국 국무부는 11일(현지시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고 이희호 여사의 타계 소식에 애도를 표했다. 이날 국무부는 모건 오테이거스 대변인 명의의 성명에서 "미국 정부를 대표해 이희호 여사의 가족과 한국 국민에게 이 여사의 별세에 애도를 전하려 한다"면서 "이 여사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쳤으며, 남북 간 대화를 촉진했다"고 밝혔다. 국무부는 또 "이 여사는 남북 간 관계 증진을 위해 수차례 평양을 방문했다"면서 "평화를 향한 그의 노력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상실의 시간에 가장 깊은 위로의 마음을 받아주기를 바란다"면서 "미국은 이 여사의 헌신과 봉사를 항상 기억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文대통령, '先남북-後한미 회담' 재확인 노르웨이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조의문 전달과 발맞추어 12일(현지시각) 4차 남북 정상회담 뒤에 한미 정상회담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특히 김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냈다는 사실도 함께 공개되면서 교착상태에 놓였던 북미 비핵화 대화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 열린 '오슬로 포럼' 기조연설 뒤 진행된 사회자와의 질의응답 시간에 김 위원장과의 만남이 6월 말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보다 먼저 이뤄질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가능하다면 그 이전에 김 위원장을 만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과 언제든 만날 준비가 돼 있다"며 "우리가 만날지 여부, 또 만날 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김 위원장의 선택에 달렸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4차 남북 정상회담을 공개 제안한 것은 4월15일 이후 2개월 만이다. 지난 2개월 동안 남북관계 발전이 북미 관계 개선의 출발점이라는 기존 인식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가동 재개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촉진한다는 문 대통령의 구상은 '선(先) 비핵화, 후(後) 제재완화'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입장에 가로 막혀 있다. 그러나 분위기 반전의 기대감도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1주년인 12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재차 거론하며 북미 비핵화 협상에 희망적 메시지를 던졌다. 문 대통령도 "지금 제3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북미간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며 "남북 간, 북미간 대화를 계속하기 위한 대화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남북·북미 간 대화가 재개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고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이희호 여사가 마지막 순간까지 북핵해결을 위해 마련한 남·북·미 대화의 장이 어떤 식으로 풀릴지 관심이 모아진다.
[이화순의 아트&컬처] 2014년 세월호 사건 발생 후 방한해 수많은 한국인들을 위로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을 기억한다. 당시 교황이 무릎꿇고 기도를 올려 감동을 더했던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 그곳이 서로 위로하고 화합하는 역사 문화의 중심 공간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지상은 서소문역사공원으로, 지하는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으로 조성돼, 특별전시 ‘한국현대조각의 단면’전과 상설전시로 손님을 맞고 있다. 이곳을 방문하면, 심신의 힐링은 물론,우리 역사속의 신앙의 선조들을 만나고, 한국조각의 근현대사 100년 궤적을 만나볼 수 있다. 서소문은 조선시대 중국으로 향하던 중요 관문이었으며 형장이 있었다. 서소문 밖 형장에서는 1801년의 신유박해 이래 1871년 무렵까지 수많은 신자들이 처형됐고, 그중 44명의 순교자는 103위 성..
[배재대학교 박성태 부총장] 지난달 28일 뉴스를 통해 2019 FIFA U-20 월드컵대회가 진행 중인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때 이후 5월29일 남아공과의 경기, 아르헨티나와의 예선 최종전, 일본과의 16강전, 세네갈과의 8강전, 에콰도르와의 4강전을 모두 실황중계를 통해 보았다. 현재 직장을 다니고 있어 매번 새벽마다 하얗게 밤을 지세며 실황중계를 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남아공 전 이후 한 경기도 빼놓지 않고 우리 청년전사들의 혈투에 가까운 경기를 보며 마음껏 대한민국을 외쳤다. 경기를 보는 내내 우리 팀 정정용감독의 전술, 선수들의 움직임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도 아니고 축구지도자로서 혁혁한 성과를 낸 적도 없는, 무명의 유소년 지도자가 이끄는 팀인데 어떻게 이렇게 감동적인 경기를 펼칠 수 있을까?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답은 정감독의 ‘신뢰의 리더십’과 팀원들의 ‘자율적 헌신’에 있었다. 그가 매 경기마다 선수들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은 “멋지게 놀고 나와라”였다고 한다. 어느 스포츠 칼럼니스트가 팀 훈련장을 찾았더니 아이돌 그룹의 인기곡이 운동장이 떠나갈 정도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고 한다. 정감독에게 연유를 물으니 “아이들이 좋아하고 경기장 소음에도 미리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한다. 정감독은 팀을 이끌며 최대한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분위기가 연출되도록 했다. 유럽파 출신 ‘막내’ 이강인(발렌시아)이 2살이나 많은 형들 사이에서 오히려 ‘막내형’이라고 불리며 마음껏 자기 기량을 뽐낼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정감독의 지휘방식에 기인했다고 본다. 정감독은 대회 전부터 ‘어디까지 올라가겠다’는 목표를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 ‘4강’이나 ‘우승’ 등의 목표는 막내 이강인이 ‘진짜’ ‘진짜’를 외치며 큰소리 친 내용이었다. 오세훈 조영욱 등도 이에 질세라 자신감을 표했고 정 감독은 “선수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도록 도와주고 싶다”고만 반복했을 뿐이다. 중,고,대 실업무대를 거치며 무명선수로 29살에 선수 생활을 마감한 정감독은 10년 이상 유소년 지도자로 일하면서 ‘어린 선수들은 지시가 아니라 이해를 시켜야 한다’는 철학을 갖게 됐다고 한다. 강압적이지 않더라도 선수들 스스로 최선을 다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면 성과가 나오리라고 확신했다. 그것이 신뢰의 리더십이고 자율적 팀 운영방식인 것이다. 정감독은 이번 대표팀을 ‘꾸역꾸역 팀’ ‘모두가 하나된 팀(원팀)’이라고 스스로 평가하며 어떠한 경우라도 만만하게 물러나지 않을 팀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에콰도르와 4강전이 벌어지던 12일 새벽(한국시간) 미국 Fox Sports에서 실시간 중계를 하면서 해설자가 한국 팀 플레이 특성이 sticky(끈적끈적한) 하다고 평하기도 했는데 그만큼 상대하기가 어려운 팀이라는 것을 강조한 말이었다. 이러한 정감독의 신뢰의 리더십은 마냥 “니들 믿으니까 니들 마음대로 하라”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나름 정확한 분석과 신뢰를 바탕으로 팀을 이끌어가는 카리스마도 겸비했다. 적시의사결정(Timely Make Decision)능력은 현대사회 리더의 기본 덕목 중의 하나다. 정감독은 이러한 적시의사결정 능력을 바탕으로 스타플레이어 이강인을 에콰도르 전에서 후반 28분 과감하게 교체할 수 있었고 팀 최고의 골잡이 조영욱을 선발에서 제외시킬 수 있었던 것이었다. 스타 출신 감독들이 눈치보느라 실행에 옮기지 못한 과감한 결정을 적시에 내렸던 것이다. 이러한 용병에 대해 선수들은 정말 아무런 불만이 없었고 “감독님이 다 알아서 하신 것”이라고 수긍하는 모습들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우리 정치 경제 사회 지도자들과 구성원들은 정감독의 신뢰의 러더십과 U-20팀 선수들의 정신자세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는 당리당략에 따라 사분오열(四分五裂)되어 있고 경제주체들은 각자도생(各自圖生)하기에 급급하며 사회 각 주체들은 자기 유익을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으니 국민들의 삶은 점점 황폐화되어가고 힘들어지고 있다. 제대로 된 목표와 가치에 대해 신뢰를 바탕으로 리더와 구성원이 공유할 때 지향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국민들이나 조직의 구성원들이 리더가 추구하는 방향과 방법에 대해 납득하고 인정할 때 비로소 강압적이고 지시일변도의 원팀이 아니라 자율적인 원팀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모쪼록 이번 U-20월드컵대회가 스포츠대회로서의 가치가 아니라 우리 국민들이 이 대회를 통해 진정한 신뢰의 리더십이 어떤 것인지, 자율적인 원팀은 어떠한 결과를 생성해 내는 지를 똑똑히 경험하는 대회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시사뉴스 오주한 기자] 정정용 감독의 대한민국 20세 이하 U-20 축구대표팀이 U-20 월드컵 결승에 사상 최초로 진출했다. 한국 U-20 대표팀은 우리 시간으로 12일 오전 3시 30분 폴란드 루블린 경기장 구장에서 열린 2019 FIFA U-20 월드컵 4강전에서 에콰도르에 1:0으로 승리했다. 이강인의 도움과 최준의 결승골이 결정타가 됐다. 유소년, 성인대표팀을 포함해 한국 남자축구가 FIFA 주관 대회 결승에 오른 건 처음이다. 역대 최고 기록은 1983년 박종환 감독이 이끈 대표팀의 4강 진출이다. 여자축구는 2010년 17세 이하 U-17 대표팀이 FIFA 주관 대회에서 결승에 진출했다. 한국 U-20 대표팀은 우리 시간으로 16일 오전 1시 폴란드 우치 경기장에서 우크라이나와 우승컵을 두고 맞붙게 된다.
[시사뉴스 유한태 기자]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인 고 이희호 여사 빈소에 여야 대표 등 각계 인사들이 조문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11일 오전 10시 40분께 빈소를 찾아 고인의 영정 앞에 고개를 숙였다. 문 의장은“정신이 없고 울컥하다”며“이루 말할 수 없이 슬프고 가슴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1시 30분께 조문했다. 그는“여사님이 그동안 아주 훌륭하게 잘 살아오신 것을 본받겠다”고 말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11시 45분께 빈소에 들어섰다. 황 대표는“저와 한국당은 깊이 애도한다”며“우리나라 민주주의, 여성 인권을 위해 남기신 유지를 잘 받들 것”이라고 말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10시 30분께 조문을 마친 후“대한민국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방문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편안히 영면하시길 빈다”고 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발자취를 새기고 이어나가겠다”고 말했다. 청와대 윤영찬 전 소통수석,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김수현 정책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등 청와대 비서진도 이날 빈소를 찾아 북유럽 3국 순방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 조의를 전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민주당 이인영,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오후 5~6시께 조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2남 홍업 씨, 3남 홍걸 씨 등 유가족과 ‘동교동계 막내’ 설훈 민주당 의원, 김 전 대통령 마지막 비서관이었던 최경환 평화당 의원, 한광옥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동교동계 인사들이 빈소를 지키며 조문객을 맞았다.
[시사뉴스 유한태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이희호 여사의 별세 소식에 "오늘 여성을 위해 평생을 살아오신 한 명의 위인을 보내드리고 있다"며 애도의 뜻을 표시했다. 핀란드를 국빈방문중인 문 대통령은 11일(한국시간) 페이스북을 통해 "오늘 이희호 여사님께서 김대중 대통령님을 만나러 가셨다. 조금 더 미뤄도 좋았을 텐데 그리움이 깊으셨나 보다"라며 "평생 동지로 살아오신 두 분 사이의 그리움은 우리와는 차원이 다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영면하시고, 계신 분들이 정성을 다해 모셔달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여사님은 정치인 김대중 대통령의 배우자, 영부인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1세대 여성운동가"라며 "대한여자청년단, 여성문제연구원 등을 창설해 활동하셨고, YWCA 총무로 여성운동에 헌신하셨다. 민주화운동에 함께 하시고 김대중 정부의 여성부 설치에도 많은 역할을 하셨다"고 강조했다. 이어 "여사님은 '남편이 대통령이 돼 독재를 하면 제가 앞장서서 타도하겠다' 하실 정도로 늘 시민 편이셨고, 정치인 김대중을 '행동하는 양심'으로 만들고 지켜주신 우리 시대의 대표적 신앙인, 민주주의자였다"고 회고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평양 방문에 여사님의 건강이 여의치 않아 모시고 가지 못해 안타까웠다. 평화의 소식을 가장 먼저 알리고 싶었는데 벌써 여사님의 빈자리가 느껴진다"며 "순방을 마치고 바로 뵙겠다. 하늘나라에서 우리의 평화를 위해 두 분께서 늘 응원해주시리라 믿는다"고 글을 맺었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순방 출발 전 이 여사가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9일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위로의 말을 전했다. 문 대통령은 김 의장에게 "여사님께서 여러번 고비를 넘기셨으니 이번에도 다시 회복되시지 않겠나"라며 "국민들을 위해서라도 오래 살아계셨으면 좋겠다. 남북 관계도 좋아질 수 있으니 그런 모습도 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며칠 전 위중하시다는 말씀을 듣고 아내가 문병을 가려다 여사님께서 안정을 되찾고 다급한 순간은 넘겼다 해서 다녀오지 못했는데 참 안타깝다"며 "곧 순방을 나가야하는데 나가있는 동안 큰일이 생기면 거기서라도 조치를 취하겠지만 예를 다할 수 있겠는가. 안타까운 마음을 잘 전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지난 4월25일 이 여사가 있는 병원으로 문병을 다녀왔다고 전했다. 청와대는 11일 오전 노영민 비서실장 주재로 회의를 열어 이 여사를 예우하는 문제 등을 논의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생 동반자였던 이 여사는 10일 오후 11시37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7세. 다음은 <문재인 대통령의 고(故) 이희호 여사 추모 페이스북 메시지> 전문 오늘 이희호 여사님께서 김대중 대통령님을 만나러 가셨습니다. 조금만 더 미뤄도 좋았을 텐데, 그리움이 깊으셨나봅니다. 평생 동지로 살아오신 두 분 사이의 그리움은 우리와는 차원이 다르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여사님 저는 지금 헬싱키에 있습니다. 부디 영면하시고, 계신 분들께서 정성을 다해 모셔주시기 바랍니다. 여사님은 정치인 김대중 대통령의 배우자, 영부인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1세대 여성운동가입니다. 대한여자청년단, 여성문제연구원 등을 창설해 활동하셨고, YWCA 총무로 여성운동에 헌신하셨습니다. 민주화운동에 함께 하셨을 뿐 아니라 김대중 정부의 여성부 설치에도 많은 역할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여성을 위해 평생을 살아오신 한명의 위인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여사님은 "남편이 대통령이 돼 독재를 하면 제가 앞장서서 타도하겠다" 하실 정도로 늘 시민 편이셨고, 정치인 김대중을 '행동하는 양심'으로 만들고 지켜주신 우리시대의 대표적 신앙인, 민주주의자였습니다. 지난해 평양 방문에 여사님의 건강이 여의치 않아 모시고 가지 못해 안타까웠습니다. 평화의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드리고 싶었는데 벌써 여사님의 빈자리가 느껴집니다. 두 분 만나셔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겠지요. 순방을 마치고 바로 뵙겠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우리의 평화를 위해 두 분께서 늘 응원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시사뉴스 유한태 기자] 청와대는 7일 이달 한미정상회담 전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도 대화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며, “북한과의 접촉은 계속 시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즉 이달 말 G20 계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국에서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인데, 이를 전후해 남북 정상간 대화도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7일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내 생각에는 우리가 조심스럽게 낙관할 수 있는(cautiously optimistic)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앞서 지난달 9일 취임2주년 특집 방송대담을 통해 “이제 북한이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지금부터 북한에게 적극적으로 회담을 제안하고 대화로 이끌어낼 그런 계획”이라며 본격적인 4차 남북정상회담 추진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 관계자는 "외교라는 것은 모든 것을 공개하지는 못한다"며 "만나기 힘들다고 해서 아무 것도 안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상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간은 북한 편인가. 아니면 미국편인가'라는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하는 말을 보면 본인이 외교정책을 지금까지 잘 이행해왔기 때문에 북한과 관계가 좋아졌고 김정은 위원장과의 관계도 강조하는 것을 보면 상당히 여유가 있는 것 같다”며 “2020년 대선에서 북한 이슈가 얼마만큼 영향을 미칠지 등의 계산을 감안하면 (미국과 북한 중) 누가 더 여유를 부릴 수 있을지는 자연스럽게 답이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은 7일자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방관자가 돼서는 안 된다. 우리는 당사자다. 트럼프 대통령이 6월 말에 방한한다. 그 전에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비공식·비공개로 원 포인트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 강조했다. 그는 “현재 우리 정부는 민족 이익을 주장하는 북한과 동맹 이익을 요구하는 미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라며 “이 상황을 벗어나려면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아가 “북미 양쪽에 모두 쓴소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장관·참모들 중 악역을 맡는 ‘배드 캅’(나쁜 경찰)이 없다. 왜 대통령이 배드 캅이 돼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문정인 특보, 그리고 자문단 교수님들과 안보실과는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시사뉴스 오주한 기자] 1979년 12월 12일 서울 한복판에서 때 아닌 총성이 울려 퍼졌다. 보안사령부, 수도경비사령부 33헌병대 병력 수십 명이 용산구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난입해 경비원들을 제압하고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서빙고 분실로 강제연행한 것이다. 바로 ‘12.12 사태’의 시작이었다. ‘10.26 사건’으로 말미암아 대한민국이 사실상 무정부상태에 준하는 상황에 놓이자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을 중심으로 하는 국군 사조직 ‘하나회’ 회원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정승화 납치를 시작으로 비(非)하나회 장성들은 하나둘 ‘숙청’됐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지만 정작 눈앞에 겨눠진 칼날 앞에서는 무력한 게 펜인지라 최규하 대통령은 ‘쿠데타’를 묵인하고 말았다. 그렇게 전두환 정부는 출범했다. 현대 중국에서는 마오쩌둥(毛澤東)을 두고 흔히 “7할의 공과 3할의 과오가 있다”고 평가한다. 전두환 시대도 마찬가지로 명암이 겹친다. 이 시기 대한민국은 헌정사상 최대 경제호황을 누렸다. 대표적인 게 ‘3저 호황’으로 유가, 원화환율, 이자율은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오늘날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는 주요산업 중 하나인 전자·반도체 산업이 이 때 본격적으로 육성됐으며 전국 광(光)케이블 매설도 추진돼 IT산업의 기틀이 마련됐다. “지나가는 개도 입에 만 원 짜리 지폐 하나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온 게 이 시기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저임금법이 제정된 것도 전두환 정부 때다. 1986년 12월 31일 대통령령으로 제정된 최저임금법은 이듬해 7월 1일 시행령이 공포됐다. 노사관계에서 을(乙)의 위치에 머물러야 했던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이 이뤄졌으며 특히 저임금에 시달리던 여성노동자들의 위상이 점차 높아졌다. 그러나 전두환 정부는 태생이 ‘반(反) 민주적’이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절대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격언처럼 눈부신 경제발전의 이면에서는 각종 탄압과 비리가 이뤄졌다. 그 중에서도 공권력의 권력 남용은 부인할 수 없는 해악(害惡)이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는 말처럼 미디어에 난무하는 이른바 ‘전비어천가’ 속에서도 국민은 하나 둘 눈을 뜨기 시작했으며 곳곳에서 저항이 이어졌다. 많은 이들이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으며 음지에서의 투쟁은 점차 양지로 흘러들었다. 그리고 1987년 마침내 오늘날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거대한 사건이 발생했다. ‘6월 항쟁’이다. ‘국가폭력’ 국민저항을 부르다 ‘6월 항쟁’은 1987년 1월 14일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종철이 경찰에 연행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다 사망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기폭제가 됐다. 경찰은 박종철에게 2년 전 터진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으로 수배된 인물의 소재를 추궁했다. 해당 단체는 1985년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을 일으킨 바 있으며 당국은 일반시민이 사망한 1982년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으로 인해 예민해진 상태였다. 조사 과정에서 경찰은 ‘국가폭력’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줬다. 박종철이 답변을 거부하자 수사관들은 그의 옷을 모두 벗기고 욕조로 끌고 가 물고문을 가했다. 기절 직전에 욕조에서 꺼내 소재를 되물었다가 모른다고 하면 다시 욕조에 넣는 행위가 반복됐으며 박종철은 결국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으로 혼절했다. 중앙대 부속 용산병원에 긴급 이송됐지만 그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이 사건은 흔적 없이 파묻히는 듯 했지만 소위 ‘냄새’를 맡은 언론에 의해 전국에 폭로된다. 당시 중앙일보 서울지검 출입기자였던 신성호 씨는 해당 사건을 단신으로 보도했으며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자숙의 기미도 없이 ‘국가폭력’은 또다시 재발됐다. 동년 6월 9일 정권타도를 외치며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에 참가해 거리로 나섰던 연세대 재학생 이한열은 시위 과정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에 직격 당해 사경을 헤매다 결국 숨졌다. 이 소식은 현장에 있던 로이터통신 기자에 의해 전 세계에 타전됐으며 앞서 정부의 개헌(改憲)논의 유보,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등에도 참고 참던 여론은 결국 폭발하고 만다. ‘하나회’ 백기를 들다 1987년 6월 10일은 잠실체육관에서 당시 집권여당이던 민주정의당의 제4차 전당대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전두환의 오른팔’ 노태우의 대선후보 선출은 예정된 수순이었으며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는 이 날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서울주교좌성당에서 ‘6월 항쟁’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하나회 출신 간 ‘권력 승계’를 원한 정부는 이틀 뒤 서울 곳곳에서 산발적인 시위가 터지자 대응방침을 세우고 경찰병력을 투입했다. 당국은 최루탄 발사 등 강경진압은 자제했으며 6월 15일부터는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 대전, 대구 등에서도 집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16일 경남 진주의 파출소 4개소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26일 또다시 전국의 파출소 29곳, 경찰서 2곳, 민정당사 4곳이 불타오르는 사건도 있었지만 시위는 전반적으로 큰 유혈사태 없이 전개됐다.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이상 정부로서도 강경대응은 어려 웠다. 정부가 손 놓는 사이 ‘6월 항쟁’은 급기야 약 100만 명(주최측 추산)이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로까지 확대됐다. 민심에 굴복한 노태우는 결국 ‘백기’를 들었으며 이에 따라 ‘6월 항쟁’은 성공적으로 막을 내린다. ‘직선제 개헌’ 이끌어 낸 6월 항쟁, 그러나... 노태우가 1987년 6월 29일 발표하고 정부가 수용한 ‘6.29 선언’은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질서의 기틀을 마련했다. 8개 항으로 구성된 선언 내용은 △여야 합의 하에 조속히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하고 새 헌법에 의한 대선을 통해 1988년 2월 평화적인 정부 이양을 실행 △직선제 개헌이라는 제도 변경뿐만 아니라 이의 민주적 실천을 위해 자유로운 출마, 공정한 경쟁이 보장돼 국민의 올바른 심판을 받을 수 있는 내용으로 대통령 선거법을 개정 △정치권은 물론 모든 분야에 있어서의 반목, 대결이 과감히 제거돼 국민적 화해, 대단결을 도모 △인간의 존엄성은 더욱 존중돼야 하며 국민 개개인의 기본적 인권을 최대한 신장 △언론자유의 창달을 위해 관련 제도, 관행을 획기적으로 개선 △사회 각 부문의 자치, 자율을 최대한 보장 △정당의 건전한 활동이 보장되는 가운데 대화, 타협의 정치 풍토를 조속히 마련 △밝고 맑은 사회건설을 위해 과감한 사회정화 조치를 강구 등이다. 1987년 10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뤄지고 6공화국이 출범해 국민 누구나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지만 3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도록 ‘6.29 선언’에서 아직 이뤄지지 않은 부분도 존재한다. 어쩌면 ‘6.29 선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반목·대결 해소와 대단결’이다. ‘독주’ ‘직무유기’ 논란 휩싸인 정치권 2019년 지금 정치권은 문민정부 출범 후 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반목’ ‘대결’하고 있다. ‘합치(合致)’가 이뤄져야 국회가 정상운영되고 민생(民生)도 이뤄질 수 있기에 대립 격화의 심각성은 크다고 할 수 있다. 정부·여당의 경우 ‘합치’라는 문민정부 이후 대부분의 역대 여야 관계를 뒤집고 ‘독주’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회 일각에서 받고 있다. ‘합치’의 사례를 보면 첫 문민정부인 김영삼(YS) 정부는 보수 성향임에도 불구하고 야당과의 화합을 위해 1995년 ‘5.18 특별법’을 제정하고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도 야당과의 화해에 나서서 2004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녀인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만나 악수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민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준 건 평가받을 만하다”고 밝혔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2012년 택시를 대중교통에 포함시키는 내용의 ‘대중교통의 육성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 발의에 야당이 반발하자 해당 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전격 행사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와 친문(親文)이 주축이 된 민주당은 이 점에서 아쉽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선 정부는 내각 조각(組閣)에 있어서 야당의 ‘부적합’ 판단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에 대한 임명을 강행했다. 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공약했던 △병역면탈 △부동산투기 △탈세 △위장전입 △논문표절 △음주운전 △성폭력 등 이른바 ‘7개 인사검증 기준’은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야당 의원들에 대해 난무하는 정부·여당의 고소·고발은 ‘입막음’을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최근 한미(韓美)정상 통화내용 유출사건으로 ‘구걸외교’ 논란을 불러온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표적 사례다. 그는 여당은 물론 외교부로부터도 ‘기밀유출’ 혐의로 고발당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에 청와대 의전비서실 행정관 이모 씨가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최모 의원에게 주한미군 관련 기밀문서를 유출한 바 있지만 야당은 해당 인물들을 고발하지 않았다. 약 2년째 검찰조사를 받던 고(故) 조진래 전 한나라당 의원이 근래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문재인 정부 들어 피의자 신분으로 자살한 인물은 수 명에 이르고 있다. 강 의원에 대한 정부·여당의 ‘합공’을 두고 야권에서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5월 3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기밀유지, 보안관리를 엉망진창으로 한 강경화 외교장관, 조윤제 주미(駐美)대사의 관리감독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 그런 후에 야당 책임을 따지는 게 합당한 태도”라고 강조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전날 MBC라디오 ‘심인보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문 대통령이 (정부) 기강을 확립하지 않으면 나머지 3년이 어렵다”며 ‘집안단속’ 에 먼저 집중할 것을 촉구했다. ‘합치’를 촉구하면서 장외투쟁에 나섰던 한국당에 대한 비판도 일각에서 존재한다. 정부·여당 행보에 설사 오점이 있다 하더라도 국회에서 이에 맞서면서 의정(議政)이라는 본연의 임무는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당의 장외투쟁이 시작되면서 국회는 산적한 민생법안들을 뒤로 한 채 사실상의 ‘셧다운(Shut Down. 부분 폐쇄)’ 상태에 돌입했다. 여당은 6월 임시국회 단독소집 검토에 나섰으며 사회 일각에서는 국회에 출석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에게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국격(國格) 훼손 여지가 있는 과격한 목소리는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5월 2일 김무성 의원은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한 집회에서 “문재인 청와대를 폭파하자”고 말해 물의를 일으켰다. 발언 요지가 ‘정권 타도’가 아닌 ‘물리적인 청와대 파괴’일 경우 국민 혈세로 세워지고 유지되는 대한민국 행정 컨트롤타워에 ‘테러’를 가하자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 날의 정신’ 이제는 되살릴 때 정쟁(政爭)이 격화되면서 ‘민주주의’ ‘합치’라는 국민 염원이 담겼던 ‘6월 항쟁’의 정신은 빛이 바래지고 있다. ‘민주주의(民主主義)’ 사상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가 대원칙이다. 그러나 정작 국민의 삶은 나날이 피폐해지고 한숨은 늘어만 가고 있다. ‘6월 항쟁’ 모토는 ‘합치’였다. 누군가의 독주를 막고 여야 간 건전한 견제를 이뤄 민주주의를 완성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많은 국민이 보기에 ‘6월 항쟁’은 ‘과거완료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그 날의 함성이 대한민국 정치권에 주는 교훈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이화순의 아트&컬처]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이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1923~1995)의 업적과 예술혼을 기리는 문신 아트상품 기획전 ‘라 후루미’를 6월 7일부터 12월 8일까지 6개월간 문신미술관 제1전시관에서 개최한다. 이번 기획전은 지역상공인들과 아트상품을 개발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문신미술관과 문신선생의 작품을 홍보하기 위해 마련됐다. 문신 작품의 저작권자인 최성숙 명예관장은 “문신미술관이 창원시에 기증되어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한지 올해로 15주년이 되는 것을 기념하고, 문신 선생이 생전에 소망했던 미술 대중화를 위해 기획했다”고 밝혔다. 전시명인 ‘라 후루미’는 문신의 대표작품인 ‘개미’를 불어로 일컫는 말이다. 문신미술관 내 문신미술연구소이자 아트샵으로 운영되는 ‘라 후루미’는 대표인 최성숙 관장이 문신의 예술을 알리기 위하여 이름을 정한 것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유리공예, 도예, 공예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 및 지역상공인 등 총 14팀이 참여해 문신의 작품세계를 개별로 재해석한 아트상품을 선보인다. 1938~1945년 도쿄 일본미술학교 양화과를 수료한 문신은 1961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조각가로 변신했다. 1966년 파리전에 처음으로 출품전을 갖는 등 추상조각의 거장으로 활동했다. '모든 자연은 대칭(Symetry)이다'는 공간적 구조를 조각작품에 반영시키면서 독특한 개념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이끌어냈다. 작품에 감각과 생명성 부여에 큰 관심을 가졌던 문신은 1992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헨리 무어, 알렉산더 칼더와 함께 '세계3대 조각가'로 공인받을 정도로 세계적 명성을 자랑했다. 또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헝가리와 유고에서 초대전을 갖기도 했다. 생전에 고향에 미술관 건립을 꿈꿨던 문신은 1981년 부인 최성숙과 함께 마산에 정착 후 꿈을 이뤄갔다. 1985년부터 본격적인 문신미술관을 공사에 들어갔고, 문신의 지휘로 14년간 이어진 공사는 대부분 추산동 주민들로 이루어진 인부들과 함께였다. 이웃 주민들로 구성된 인부들의 피땀 어린 노력과 함께 미술관 개관은 1994년에 이뤄졌지만 문신은 1995년 소천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전시작은 1960~90년대 문신 선생이 자주 다니던 곳인 추산동, 오동동, 창동을 재현해 재탄생된 아트상품으로 문신예술을 모티브로 한 미니어처, 에코백, 시계, 커튼, 주얼리(액세서리) 상품, 머그컵, 넥타이, 머플러, 작품그림, 엽서 등 수십여 점이 선보인다. 최성숙 관장은 “문신 선생은 20대부터 마산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 자신의 미술관을 지을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오랜 해외생활 후 귀국해 1981년 마산에 정착하면서 꿈을 이루고자 노력했다. 문신 선생은 지역공동체 일자리 사업을 꿈꿨다”고 말했다. 또 “문신의 뜻을 이어 지역소상인들과 함께 아트상품기획전을 개최해 지역경제살리기에 보탬이 되고자 한다”면서 “또 문신예술을 모티브로 한 아트상품을 계속해서 연구해 나갈 것”이라 밝혔다. 문의 (055)225-7184
[이화순의 아트&컬처]조각, 유리, 설치 작품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국내 유일의 조형예술 아트페어인 조형아트서울2019(PLAS-Contemporary Art Show)가 ‘새로운 만남’을 주제로 12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 1층 B1, B2홀에서 열린다. 조형아트서울2019는 창의적인 조형 예술로 신선한 공간 구성과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유망작가가 세계 미술시장에 조명되어 그 가치를 높이는 밑거름이 되도록 하기 위해 기획된 아트페어다. 올해 4회를 맞는 조형아트서울에는 미국 이탈리아 프랑스 대만 중국 캐나다 등 6개국의 10개 외국 갤러리들과 국내 청작화랑, 웅갤러리, 윤갤러리, 박영덕화랑, 이정갤러리 등 86개 갤러리(91개 부스)가 참가한다. 인도네시아 작가 이마데 위르다나, 프랑스 작가 로랑스 젠켈, 이건용, 김영주 등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