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순의 아트&컬처] 문화유산과 현대건축이 만났다. 국립현대미술관(MMCA)이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소장 김동영)가 함께 ‘덕수궁-서울 야외 프로젝트 : 기억된 미래’를 5일부터 내년 4월 5일까지 개최한다. 덕수궁에 들어서면 스페이스 파퓰러, CL3, 뷰로 스펙타큘러, OBBA, 오브라 아키텍츠 등 아시아 지역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5팀의 5점 작품이 한눈에 보인다. 지난 2012년과 2017년 고궁에서 펼치는 현대미술의 향연으로 대단한 호평을 이끌어냈던 ‘덕수궁 야외 프로젝트’의 계보를 잇는 건축전이다. 올해는 아시아 각국의 건축그룹 다섯팀이 참여해 격동의 근대화 시기 대한제국이 품었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그들만의 시각으로 풀어냈다. 전시는 고종황제의 서거와 3·1 운동이 있었던 1919년으로부터 100년이 흐른 2019년, 대한제국 시기에 가졌던 미래 도시를 향한 꿈들을 현대 건축가들의 시각과 상상으로 풀어낸다. 특히 ‘개항’과 ‘근대화’라는 역사적 맥락을 같이하는 아시아 주축 건축가들이 근대문화유산을 배경으로 새로운 작품을 구상, 연출, 설치됐다. 태국에서 처음 디자인 회사를 설립해 지금은 세계 여러 곳을 무대로 활동하는 스페이스 파퓰러(라라 레스메스, 프레드리크 헬베리)는 덕수궁 광명문에 ‘밝은 빛들의 문’을 설치했다. 광명문의 이름에서 영감을 얻어 빛의 스크린을 설치하고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가상의 공간을 연출했다. 작가들은 한국의 단청 보수 전문가와 워크샵 등을 통해 단청 패턴에 관심을 갖고 약 7개월간 작품을 구상했다. 고종황제의 침전이던 함녕전 앞마당에는 홍콩 건축가 CL3(윌리엄 림)의 ‘전환기의 황제를 위한 가구’가 설치됐다. 황실의 가마와 가구에서 영감을 받은 작가는 샤를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의 라운지 의자 등 20세기 서구에서 실험됐던 가구의 형태들과 조합해 6개의 가구 유형을 디자인했다. 관람객들은 마당에 배치된 가구들에 직접 앉아보며 동서양이 만나던 대한제국기의 황제의 일상적 삶을 상상할 수 있다. 덕수궁의 법전인 중화전 앞에서는 ‘2018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건축부분(문체부 장관 표창)을 수상한 OBBA(곽상준, 이소정)의 ‘대한연향(大韓宴享)’을 만나게 된다. 과거 중화전 앞에서 열렸던 연향(궁중잔치)에는 가리개처럼 기능에 따라 공간이 새로 창출되는 ‘변화 가능성’을 가진 장치들이 동원됐다. 이러한 전통 구조물에서 영감을 얻은 이 작품은 오색 반사필름으로 시시각각 바람에 반응해 춤추듯 화려한 색의 그림자로 매 순간 변화하는 풍경을 창출해낸다. 작가는 이를 통해 유연한 사고, 가치, 공간을 제안한다. 석조전 분수대 앞에는 대만계 캐나다 건축가이자 2014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대만관의 대표작가인 뷰로 스펙타큘러(히메네즈 라이)가 ‘미래의 고고학자’라는 작품을 통해 관객들을 만난다. 작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먼지가 쌓여 단층을 만들 듯, 수 세기 후 지면과 우리와의 관계를 수직적으로 보여준다. 관람객들은 솟은 평면들을 연결한 계단을 올라 수세기 뒤 미래의 한 시점에 도달하고 발 아래 2019년을 과거로 바라보게 된다. 덕수궁관에 이어 서울관의 미술관 마당에는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중인 오브라 아키텍츠(제니퍼 리, 파블로 카스트로)의 120㎡(약 36평) 초대형 파빌리온 온실, ‘영원한 봄’이 11일 공개된다. 가을과 겨울 전시기간 동안 봄의 온도 항상성을 유지하는 온실로, 파빌리온을 덮은 투명 반구체들을 통해 빛이 실내를 환하게 밝힌다. 작품명은 자유롭고 공정한 사회를 지향해 온 인류 역사가 ‘프라하의 봄’, ‘아랍의 봄’등 봄으로 불리는 시적인 은유에서 착안했다. 동시에 작가는 오늘날 전 지구적 문제로 떠오르는 기후변화의 사회적 영향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한편, 전시기간 중 큐레이터와 건축가들의 토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27일(금)에는 국립현대미술관 50주년을 기념한 미술관 장터 국립현대미술관x마르쉐@’가 '영원한 봄’ 파빌리온 안팎에서열린다. 이 전시에 참가한 이소정씨(건축그룹 오비비에이)는 "조선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슬픔으로 가득찼을 향연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상황을 생각하니까 마음이 먹먹해졌다"고 말했고, ‘라라 레스메스’(스페이스 파퓰러)는 "단청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고, 그를 통해 문화적인 코드를 찾고 이해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덕수궁 프로젝트’는 첫회인 2012년에 35만 명, 2017년에는 90만 명이라는 관람객 수를 기록한 만큼 올해에도 폭발적 반응을 기대한다”며 “세계적인 현대 건축가들의 유연한 건축정신과 살아있는 한국 문화유산의 융합을 통해 국내․외 관객들에게 새로운 미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시사뉴스 오승환 기자] KB국민은행은 지난 5일부터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에 따라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에 긴급 경영안정자금을 지원하고 최대 2%포인트 우대금리를 제공한다. 상환 유예는 물론 환율 우대와 함께 외국환 관련 수수료 감면 혜택을 제공한다. 아울러 국민은행은 8.15 광복절에 ‘3.1독립선언광장’ 준공식을 진행했다. 앞서 국민은행은 자체 제작한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영상’으로 마련한 1억 원을 후원금으로 전달했다. 하지만 국민은행의 애국마케팅은 최근 행보에 비춰보면 씁쓸함이 남는다. 국민은행은 미얀마에서의 은행업 허가를 위해 지난 5년간 총 6회에 걸쳐 미얀마 정부와 만나며 동분서주해왔다. 첫 단계의 일환으로 지난 2017년 3월 미얀마 KB마이크로파이낸스법인 설립 후 현재까지 13개 현지 영업점을 개설했다. 마이크로 파이낸스 사업은 일종의 소액대출사업으로 본래 제도권 금융을 이용할 수 없는 빈곤층을 저금리 소액대출로 지원해 주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KB마이크로파이낸스의 이자율은 연 24~26% 수준으로 가히 약탈적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물론 고리대금이 널리 퍼진 미얀마 현지 사정과 법정 이자율 한도(30%)에 비춰보면 높은 이자율은 아니다. 하지만 일본 대부업체가 자국 규제를 피해 우리나라에서 소액대출 및 고리대금업을 하던 모습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는 지적에서는 자유로울 수는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본대부업체’의 이미지가 미얀마 내 ‘한국대부업체’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시사뉴스 이장혁 기자] GS칼텍스는 직원 1인당 생산성이 23억8,968만 원으로 업계에서 가장 높다. 기록적인 수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십수 년 동안 지속적으로 단행한 조직개편, 즉 구조조정의 결과일지 모른다. GS칼텍스는 대규모 설비투자를 통해 고용창출을 일으키겠다는 발표를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노조 해체와 대규모 구조조정, 인력전환배치 등 노동압박 장치도 함께 가동됐다. 본지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1997년 미국 칼텍스는 GS칼텍스(당시 LG칼텍스)에 정유와 석유화학 전반의 성과 측정을 제안했다. 진단 결과, 1999년 기준 2,000여 명(정규직과 용역 포함)의 공장 인원 중 조직개편을 통해 819명을 줄이는 게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나머지 1,181명도 정규직은 54%에 불과했다. GS칼텍스는 효율 개선과 경비 절감을 목적으로 ‘RMIP’(Refinery Management Innovation Program)라는 구조조정 계획을 수립했다. SK가 1998년 공장조직 통폐합과 희망퇴직을 병행한 조직 슬림화를 단행해 3,600여 명의 인원 중 약 17%(600여 명) 축소한 사례도 벤치마킹했다. GS칼텍스는 IMF 외환위기 이듬해인 1998년 공장조직을 기존 31부 36과를 26부 32과로 통폐합하면서 일단 300명을 내보냈다. 그 결과 인력지수는 106.5(93년)에서 63(98년)으로 낮아졌다. 이후 신규투자나 공장 증설은 됐지만 생산직 근로자 수가 계속 감소하면서 남은 직원들의 노동강도는 한층 높아졌다. 더욱이 경영혁신의 일환으로 진행되던 ‘World Top 5 by 2005’에 맞게 인력지수를 36.3 수준으로 낮출 경우 전체 인력의 30%(400여 명) 정도를 잉여인력으로 활용 가능하다는 점도 RMIP 문건에 명시되어 있었다. 실제로 GS칼텍스는 직무순환 방식을 통해 잉여인력을 새로운 부서로 전환배치 했다. 재배치된 인력은 2004년부터 2007년까지 496명에 달했다. 2005년 GS칼텍스는 2010년까지 완공을 목표로 5조 원 규모의 신규투자(NO.2 HOU 고도화(1조5,000억), NO.3 HOU 고도화(2조5,000억), 알킬레이션공사(1,400억), 등경유탈황설비/휘발유고급화(2,300억), NO.1CCR Revamp(1,700억), NO.4 Diesel HDS(3,400억), NO4 LPG(300억)) 및 고용 창출(정규직 500명, 협력업체 300명) 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2015년까지 1조5,000억 원을 들여 공장증설 및 고용 창출(정규직 500명) 계획도 밝혔다. 하지만 실제 창출된 고용은 미미했다. 2004년 2,984명(정규직 2,690명)이었던 임직원 수는 2015년 공장 증설 후 3,027명(정규직 2,811명)으로 다소 늘었지만 정규직 인원만 보면 11년 동안 121명 는 데 그쳤다. 결과적으로 6조5,000억 원의 공장 증설을 통해 1,300명(정규직 1,000명, 협력업체 300명)의 고용창출 계획을 발표했지만 목표치의 10%도 달성하지 못한 셈이다. 지난해 GS칼텍스는 2022년 완공을 목표로 올레핀 생산시설에 2조7,000억 원을 투자, 설비 가동에 따른 500명 이상의 고용창출 계획을 밝혔다. 이번엔 50명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따뜻한 에너지’ GS칼텍스의 냉혹한 민낯② 살인적 해고로 대주주 배만 불렸나?]에서 계속▶▶▶
[시사뉴스 이장혁 기자] 몇 백원짜리 플라스틱 볼펜과는 다르게 바디 '소재'를 금속으로 바꾸고 최신 잉크심 '기술'을 넣어 만든 고급 프리미엄 볼펜. 거기에 '애국'까지 입혀 2만5,000원에 판매하는 마법을 부리는 기업. 50여 년간 국민 필기구 브랜드로 자리 잡은 모나미다. 최근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불이 붙으면서 반사이익을 톡톡히 보고 있는 모나미는 한일관계가 파탄에 빠져 있는 이 상황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을 테다. 그래서일까. 기획상품에 유난히 강한 면모를 보여 온 모나미는 광복절 기획상품 '일오삼(153) 무궁화'를 출시했다. 볼펜뿐 아니라 무궁화를 소개하는 책갈피도 함께 넣었다. 결과는 완판. 2만 원이 훌쩍 넘는 가격이었지만 ‘애국’으로 포장된 볼펜 두 자루에 소비자들은 홀리듯 지갑을 열었다. 대놓고 8.15 광복 기념 기획상품이며 광복절의 의미를 기억할 수 있도록 했다는 소개말은 소비자의 마음도 같이 훔쳤다. 매출은 뛰었고 주가는 날았다. 매출은 온라인몰 5배 이상, 오프라인에서도 20% 증가했다. 주가는 '과열'을 넘어 '폭발' 수준이다. 불매운동이 본격화된 이후 한 달 새 200%가 넘는 수익률을 기록했다. 한국거래소가 투자 경고 종목 지정 예고까지 했을 정도다. 이렇게까지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모나미지만 애국의 가면 뒤로 숨어있던 민낯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과거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송하경 모나미 대표가 연루된 의혹이 있어 참고인 조사를 받은 이력이 있다. 당시 정유라 씨가 연습할 경마장을 송 대표가 직접 나서 구입해주고 대가로 99억 원 상당의 일감을 받았다는 의혹이 일었다. 송 대표는 "모나미 승마단 연습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라고 언급했지만 승마단 창단이 승마장 구입 이후에 진행됐고 대표 개인이 빚까지 내면서 승마장을 구입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검찰 조사 이후 송 대표는 의혹에서 벗어났지만 이런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됐다는 의혹만으로 기업 이미지에는 치명상이 될 수도 있다. 혹시라도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과 행동을 국민이 어떻게 바라볼지는 두고 볼 사안이다. 모나미는 1960년 광신화학공업사에서 출발해 지금껏 문구업계의 터줏대감 역할을 하며 국민 브랜드로 성장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전 국민이 써봤다는 '모나미 153 볼펜'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꾸준히 사랑받는 제품도 드물다. 153이라는 숫자는 '베드로가 예수님의 지시대로 그 물을 던졌더니 153마리의 물고기가 잡혔다'는 신약성서 요한복음 21장 11절의 내용에서 착안했다고 전해진다.
[시사뉴스 강민재 기자] 광복절을 앞두고 금융권에도 이른바 '애국마케팅' 붐이 일었다. 그중 우리은행이 가장 돋보였다.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대한민국 정통은행"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애국은행'의 대표주자처럼 활발한 마케팅을 벌였다. ◇ 민족은행 가면 속 친일 민낯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갈수록 거세지는 상황은 우리은행처럼 '민족 정통성'을 표방해 온 은행에겐 더 없이 좋은 기회임에 틀림없었다. 광복 74주년을 기념해 8일 출시한 '우리 특판 정기예금'은 만기 해지 시 연 0.8%포인트의 우대금리 적용으로 최고 1.7%의 금리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최소 가입금액은 개인당 100만 원으로 3,000억 원 한도 내에서 선착순 마감한다고 했다. 독립군의 항쟁을 다룬 영화 <봉오동전투> 관람권 증정 이벤트도 벌였다. 신용대출을 신규 약정하거나 문자메시지, 이메일 등을 통한 마케팅에 최초 동의한 고객을 대상으로 1,899명을 추첨했다. '1899'라는 숫자는 우리은행의 모태인 대한천일은행(大韓天一銀行)이 설립된 연도다. 우리은행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족은행'이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1897년 설립된 한성은행 (조흥은행의 전신)이 국내 최초다. 조흥은행이 신한금융지주에 흡수되면서 우리은행은 '현존하는 최고(最古) 민족은행'이란 타이틀은 얻은 셈이다. ◇ "민족은행" 주장 '어폐' 하지만 '민족은행'이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다. 순수 민족 자본으로 설립된 은행이라 보기 힘든 면이 있기 때문이다. 대한천일은행은 고종이 설립했다고 알려졌지만 사실 친일파 민병석이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초대행장을 맡았다. 당시 일본 다이이치은행도 지원사격에 나섰다. 이후 대한천일은행의 행보는 더욱더 민족적이지 않다. 아니 '반(反)민족적'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대한천일은행은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 2월 조선상업은행으로 개편된다. 일제강점 직후 민족계 은행에 대한 일본 자본과 세력을 침투시키려는 조선총독부 정책의 일환이었다. ◇ 삼남, 북선상업, 대구상공 등 민족계 은행 흡수 조선상업은행 출범 후 일본은 본격적으로 식민지 금융 찬탈에 나섰다. 조선총독부는 1928년 신은행령을 공포하고 민족계 은행 말살을 시작했다. 그 결과 1928년 삼남(三南)은행이, 1933년 북선상업(北鮮商業)은행이, 1941년 경일은행의 전신인 대구상공(大邱商工)은행이 흡수, 통합되었다. 우리은행이 역사에서 정통성을 찾으려면 영예만 볼 것이 아니라 치욕의 역사도 함께 보아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우리은행이 영욕(榮辱)을 알면 애국을 한낱 마케팅 수단으로 쓰지는 않을 것이다. <시사뉴스> 이번호 커버스토리에서 다룬 것처럼 애국마케팅이 대국민가면쇼가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시사뉴스 이장혁 기자] “우리은행은 1899년 자금흐름을 원활히 하여 국가 경제에 이바지한다는 목적으로 설립된 ‘국내 유일의 민족 정통 은행’입니다.” 우리은행은 국내 최초의 민족 정통 은행이라는 타이틀도 가져가고 싶었겠지만 안타깝게도 1897년 설립된 한성은행(조흥은행, 현 신한은행)이 국내 최초다. 당나귀를 담보로 첫 대출영업을 시작했다는 일화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민족 정통 은행이라는 말도 어폐가 있어 보인다. 순수 민족 자본으로 설립된 은행이라 보기에는 석연치 않다. 우리은행의 뿌리는 대한천일은행(大韓天一銀行)이다. ‘하늘 아래 첫째 은행’이라는 대한천일은행은 고종이 설립했다고 알려졌지만 사실 친일파 민병석이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초대행장을 맡았다. 당시 황실 특혜를 받았고 일본 다이이치은행도 지원사격에 나섰다. 민족 정통은커녕 태생부터 ‘친일’ 꼬리표를 달고 나온 것은 아닐까. 이후 대한천일은행은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 2월 조선상업은행으로 개편된다. 일제강점 직후 민족계 은행에 대한 일본 자본과 세력을 침투시키려는 조선총독부 정책의 일환으로 출범했다. 삼남은행, 북선상업은행, 대구상공은행 등 민족계 은행 흡수 합병 조선상업은행 출범 후 일본은 본격적으로 식민지 금융 찬탈에 나섰다. 조선총독부는 1928년 신은행령을 공포하고 민족계 은행 말살을 시작했다. 그 결과 1928년 건실하게 운영되던 삼남은행(三南銀行)이, 1933년 북선상업은행(北鮮商業銀行)이, 1941년 경일은행의 전신인 대구상공은행(大邱商工銀行)이 각각 흡수, 통합되었다. 조선상업은행의 자본 구성을 보면, 1917년에 자본금 57만5,000원이던 것이 군소은행의 흡수와 통합 과정을 거치면서 흡수, 통합되는 은행의 자본금이 가산되고 자체의 증자도 단행해 1929년 6월에는 공칭자본금 892만5,000원, 불입자본금 447만5,000원으로 증액되었다. 광복 후 조선상업은행은 한국상업은행으로 개편되었다가 1999년 한일은행과 합병해 한빛은행으로 통합되었고, 다시 2002년에 이르러 지금의 우리은행으로 변경되었다.
[시사뉴스 강민재 기자]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는 지난달 30일, “8월 조직개편을 통해 내수시장은 물론 해외시장에서 부진을 만회하겠다”고 했다. 넥슨코리아는 지난해 1조 원 가까운 매출을 올렸지만, 128억 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조직개편은 이미 시작됐다. 가장 우려되는 형태다. 넥슨 게임의 미국 서비스를 담당하는 넥슨아메리카가 캘리포니아 소재의 사무실 두 곳을 폐쇄했다. 5일, 디비전 파트너스의 프로덕션 매니저 크리스 정(Chris Jung)은 자신의 링크드인(LinkedIn)을 통해 "넥슨아메리카가 구조조정(restructuring)을 단행해 디비전 파트너스 사무실은 문을 닫았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거나 역할이 바뀌었다"라고 토로했다. 허민 원더홀딩스 대표의 넥슨 합류 소식도 들려온다. 넥슨은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중이다. 왜 확인도 부인도 못해주는 것일까. 업계 여러 관계자의 의견을 종합하면 넥슨과 허 대표는 직책과 합류 시기를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주 창업주는 성장동력을 마련하기 위해 엔씨소프트와의 제휴로 외부 DNA 이식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다. 허 대표가 게임업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임은 분명하나 허 대표 1인이 공룡처럼 둔감해진 넥슨에 새로운 DNA를 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업계에서 허 대표 영입이 넥슨의 재매각을 위한 마중물 역할로 바라보는 이유다.
[시사뉴스 이임광 기자] 라이온코리아=‘아이 깨끗해’...일본회사란 소리에 엄마들 뿔났다 ‘때가 쓱 비트’, ‘아이! 깨끗해’를 살림하고 아이 키우는 한국 주부 중에 이 두 브랜드를 모르는 엄마들은 없겠지만, 회사가 일본계라는 것을 아는 엄마들도 없었다.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시작되기 전에는. 이 일본기업 라이온(ライオン)은 130년이 다 되어가는 장수기업이다. 1891년 창업해 세제, 비누, 치약 등 생활용품, 화장품, 기능성 식품, 의약품, 화학품을 다루는 일본 굴지의 기업이다. 라이온코리아는 일본 ‘라이온코퍼레이션’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1990년 CJ제일제당과 제휴해 ‘CJ라이온’이라는 이름으로 국내 영업을 시작했는데, 2017년 라이온코퍼레이션이 CJ의 지분 19%를 모두 인수해 100% 일본 기업으로 재출범했다. ‘CJ’의 잔상 때문에 라이온코리아가 자연스럽게 우리 기업인 듯한 착시가 일어났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불매운동가들은 어쩌면 CJ와 제휴한 것부터가 국내 시장에 안착하면서 일본계 기업이라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전략이 아니었느냐는 의구심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라이온코리아가 일본 우익단체 후원기업 명단에 포함됐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라이온코리아는 한국에서 독립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2004년 분사 이후 일본법인에 배당 실적이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온라인상에서 라이온코리아에 부정적인 목소리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손세정제 1위 브랜드인 ‘아이! 깨끗해’가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맘카페들을 중심으로 대체품을 찾기 위한 정보를 공유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시사뉴스 이임광 기자] ABC마트=한국 진출 17년, 국내 신발시장 석권...알파벳 대신 히라가나였다면? 일본의 신발 전문 브랜드 매장. 창업주는 미키 마사히로(三木正浩). 멀티샵 형태의 매장으로 여러 브랜드의 신발을 모아놓고 판다. 지극히 평범한 알파벳으로 이뤄진 ’ABC‘라는 사명 때문에 서양 기업인 줄로 알려져 있지만 의외로 일본 기업이다. ABC에서 A, B, C는 각각 Ability(능력으로 채용), Bargain(파격적인 할인), Customer(고객의 욕구에 맞춘 마케팅)을 의미하는데, 이는 ABC마트의 성공요인으로 꼽힌다. 1990년 일본 도쿄 시부야에서 유한회사로 설립되었다. 2002년 압구정에 1호점을 내면서 한국 영업을 시작했고, 2008년에는 한국에 온라인 쇼핑몰을 개설했다. 현재 한국에 오프라인 매장 포함 총 200개가 넘는 매장이 있고, 100개가 넘는 브랜드의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2012년 멤버십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이 서비스는 개시 1년 만에 회원 50만 명 돌파, 현재 200만 명이 넘는다.
[시사뉴스 이임광 기자] 데상트=프랑스회사인 듯 비싼 가격에도 한국시장에 제대로 활강 데상트(descente)는 프랑스어로 '활강'이라는 뜻이다. 이름 때문에 프랑스 기업으로 흔히들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엄연한 일본 기업이다. 1935년 이시모토(ISHIMOTO)상점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계속 번성하고 있다. 1988년부터 스키 관련 소재 개발에 주력해 특히 스키복으로 유명하다. 'Move sport'라는 로고도 있다. 골프의류 브랜드로 유명한 '먼싱웨어'도 데상트 계열사다. 일본 현지에서는 아디다스의 수입업체 역할을 한 적도 있다. 사실 1980년대부터 한국 진출을 생각했지만, 당시 아식스와 미즈노의 강세에 밀려 유보됐다. 2013년부터 피겨스케이트 선수인 최진주와 메이저리거 추신수를 후원하고 있다. 야구와 배구 쪽 키트 스폰서로도 유명하다. 한국에선 LG트윈스, 삼성라이온스 롯데자이언츠 등의 프로야구단과 프로배구팀의 유니폼을 제작하거나 키트 스폰서로 후원하기 때문에 친한 이미지가 강해서 데상트를 일본 기업이라고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더 없는지도 모른다. 2014년엔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사용된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유니폼을 제작하기도 했다. 경쟁 브랜드에 비해 비싼 가격대이지만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시사뉴스 이임광 기자] 린나이=공동 창업주의 성에서 따온 사명 가스레인지로 너무나 유명한 린나이도 우리 기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사명의 느낌이 우리 기업은 아니더라도 일본 기업일 것 같지는 않지만, 작명 과정을 보면 그렇지 않다. 1920년 일본에서 하야시 겐키치(林兼吉)와 나이토 히데지로(内藤秀次郎) 두 사람은 회사를 창업하면서 각자의 성씨의 앞글자를 따와 '나이린(ナイリン)'이라는 사명을 지었다. 그러다 어감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순서를 바꿔 '린나이'로 개명했다. 보일러 생산을 위해 독일의 바일란트와 제휴해 가스온수기 등도 제조해 판매하고 있으며 2007년 온수기 일산화탄소 중독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유명하다.
[시사뉴스 이임광 기자] 브리지스톤=미슐랭은 프랑스인데, 브리지스톤은 글쎄? 브리지스톤은 세계 타이어시장에서 1,2위를 다툰다. 생산공장이 전 세계 24개국 150개에 달한다. 하지만 미슐랭이 프랑스회사인 줄은 알아도 브리지스톤이 일본회사인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아무래도 이름 때문일 수 있다. 브리지스톤(Bridgestone)은 ‘돌다리’를 의미하는 한자 ‘石橋(석교)’를 영어로 옮긴 말에서 유래한다. 어감이 좋지 않아 앞뒤를 바꿔 ‘브리지스톤’이 되었다. 창업자 이시바시 쇼지로는 가업인 재봉일로 시작해 1918년 닛폰다비주식회사를 설립했다. ‘다비(足袋)’는 일본식 버선이다. 1921년 고무 밑창을 단 다비를 생산하면서 고무 기술을 키웠다. 이를 계기로 자동차 타이어 개발을 시작한 끝에 1930년 첫 제품을 출시했다. 1979년 브리지스톤의 대표적인 고성능 타이어 ‘포텐자 RE47'이 출시되었다. 1983년에는 미국 파이어스톤으로부터 내슈빌 공장을 인수해 글로벌기업으로의 첫발을 내디뎠다. 한국 판매법인은 브리지스톤타이어세일즈코리아(주)로 2001년 설립된 이후 한국에서도 지속 성장했다.
[시사뉴스 오주한 기자] 폐업 위기 처한 소상인들 불매운동 화살은 라멘, 사케 등 일식(日食)을 취급하는 영세업체, 프랜차이즈에도 겨눠지고 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에 겹쳐 불매운동 타깃까지 된 이들은 폐업, 종업원 감축을 고려하는 등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많은 업체는 ‘우리는 일본 회사가 아닙니다’ 등 문구가 적힌 입간판을 설치하고 손님 유치에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매출 급감은 피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서울 시내의 한 이자카야(일본식 선술집) 프랜차이즈 점주는 “불매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불매운동 지지 문구, 음료 서비스를 내걸었다”고 말했다. 라멘, 일본식 우동 등 다른 메뉴를 다루는 일식 업체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7월 사케 등 일본 전통주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0%가량 줄었다. 일식 재료는 대부분 국산이라 불매운동은 일본 경제에 주는 영향은 미미한 반면, 오히려 폐업, 종업원 해고 등 우리 경제에 더 큰 타격을 주고 있다. 그나마 한국인 운영 업체임을 내세울 수 있는 일식업체들에 비해 미니스톱 등 일본 브랜드 편의점 점주들 상황은 한층 암울하다. 이곳에서 발생하는 수익 일부가 일본에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미니스톱의 경우 최대주주는 지분 96.06%를 보유한 일본 최대 유통사 이온(Aeon)그룹이다. 나머지 3.94%는 전범기업인 미쓰비시(三菱)가 갖고 있다. 때문에 미니스톱은 일본 브랜드 편의점 중에서도 특히 불매운동에 직격당하고 있다. 미니스톱은 8월 맥주 할인행사에서 일본 맥주를 제외하기로 하는 등 여파를 벗어나 보려 하고 있지만 매출 감소는 피하지 못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7월 1~24일 일본 맥주 매출은 전월 동기 대비 38.2% 급감했다. 덩달아 가맹점주들도 울상을 짓고 있다. 설상가상 일본 맥주는 본사로의 반품까지 불가능하다. 3년째 서울에서 일본 브랜드 편의점을 운영한 한 점주는 “본사는 일본 맥주 행사 취소해서 이미지만 챙기고 점주들은 재고 때문에 눈물 흘린다”고 말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불매운동과 관련해 “감정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며 “오히려 (국내 경기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근거가 있는 곳을 찾아 불매운동을 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기업들은 당장 생존을 생각해야 하는데 (청와대가) 쫄지 말라고 말만 하면 기업들 경쟁력이 살아나는가”라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일본을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실질적인 극일(克日)”이라고 강조했다. ‘샤이재팬’ 나선 일부 소비자들 이러한 불매운동의 모순 앞에 일부 소비자들은 조용히 일본 상품을 구매하는 이른바 ‘샤이재팬(Shy Japan)’에 나서고 있다. 일본 제품을 사용하고 일본 문화를 즐기는 대신 주변에 이를 알리지 않는 형태의 새로운 소비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일식의 경우 집에서 홀로 즐기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일본 국적 연예인의 경우 콘서트나 팬사인회 참가 인증샷을 SNS에 올리지 않는 성향이 팬들 사이에서 증가 중이다. 샤이재팬이 불매운동 앞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일부 골목상권, 문화계에 다시금 생기를 불어넣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