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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특집] ‘6월 항쟁’ 과거완료형인가, 현재진행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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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치’ 모토 무색하게 계속되는 정쟁
‘반목’ 얼룩 지우고 이제는 화합 이룰 때



[시사뉴스 오주한 기자] 1979년 12월 12일 서울 한복판에서 때 아닌 총성이 울려 퍼졌다. 보안사령부, 수도경비사령부 33헌병대 병력 수십 명이 용산구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난입해 경비원들을 제압하고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서빙고 분실로 강제연행한 것이다. 바로 ‘12.12 사태’의 시작이었다.


‘10.26 사건’으로 말미암아 대한민국이 사실상 무정부상태에 준하는 상황에 놓이자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을 중심으로 하는 국군 사조직 ‘하나회’ 회원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정승화 납치를 시작으로 비(非)하나회 장성들은 하나둘 ‘숙청’됐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지만 정작 눈앞에 겨눠진 칼날 앞에서는 무력한 게 펜인지라 최규하 대통령은 ‘쿠데타’를 묵인하고 말았다. 그렇게 전두환 정부는 출범했다.

현대 중국에서는 마오쩌둥(毛澤東)을 두고 흔히 “7할의 공과 3할의 과오가 있다”고 평가한다. 전두환 시대도 마찬가지로 명암이 겹친다. 이 시기 대한민국은 헌정사상 최대 경제호황을 누렸다. 대표적인 게 ‘3저 호황’으로 유가, 원화환율, 이자율은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오늘날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는 주요산업 중 하나인 전자·반도체 산업이 이 때 본격적으로 육성됐으며 전국 광(光)케이블 매설도 추진돼 IT산업의 기틀이 마련됐다. “지나가는 개도 입에 만 원 짜리 지폐 하나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온 게 이 시기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저임금법이 제정된 것도 전두환 정부 때다. 1986년 12월 31일 대통령령으로 제정된 최저임금법은 이듬해 7월 1일 시행령이 공포됐다. 노사관계에서 을(乙)의 위치에 머물러야 했던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이 이뤄졌으며 특히 저임금에 시달리던 여성노동자들의 위상이 점차 높아졌다.

그러나 전두환 정부는 태생이 ‘반(反) 민주적’이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절대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격언처럼 눈부신 경제발전의 이면에서는 각종 탄압과 비리가 이뤄졌다. 그 중에서도 공권력의 권력 남용은 부인할 수 없는 해악(害惡)이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는 말처럼 미디어에 난무하는 이른바 ‘전비어천가’ 속에서도 국민은 하나 둘 눈을 뜨기 시작했으며 곳곳에서 저항이 이어졌다. 많은 이들이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으며 음지에서의 투쟁은 점차 양지로 흘러들었다. 그리고 1987년 마침내 오늘날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거대한 사건이 발생했다. ‘6월 항쟁’이다.



‘국가폭력’ 국민저항을 부르다

‘6월 항쟁’은 1987년 1월 14일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종철이 경찰에 연행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다 사망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기폭제가 됐다.

경찰은 박종철에게 2년 전 터진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으로 수배된 인물의 소재를 추궁했다. 해당 단체는 1985년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을 일으킨 바 있으며 당국은 일반시민이 사망한 1982년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으로 인해 예민해진 상태였다.

조사 과정에서 경찰은 ‘국가폭력’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줬다. 박종철이 답변을 거부하자 수사관들은 그의 옷을 모두 벗기고 욕조로 끌고 가 물고문을 가했다. 기절 직전에 욕조에서 꺼내 소재를 되물었다가 모른다고 하면 다시 욕조에 넣는 행위가 반복됐으며 박종철은 결국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으로 혼절했다. 중앙대 부속 용산병원에 긴급 이송됐지만 그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이 사건은 흔적 없이 파묻히는 듯 했지만 소위 ‘냄새’를 맡은 언론에 의해 전국에 폭로된다. 당시 중앙일보 서울지검 출입기자였던 신성호 씨는 해당 사건을 단신으로 보도했으며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자숙의 기미도 없이 ‘국가폭력’은 또다시 재발됐다. 동년 6월 9일 정권타도를 외치며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에 참가해 거리로 나섰던 연세대 재학생 이한열은 시위 과정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에 직격 당해 사경을 헤매다 결국 숨졌다. 이 소식은 현장에 있던 로이터통신 기자에 의해 전 세계에 타전됐으며 앞서 정부의 개헌(改憲)논의 유보,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등에도 참고 참던 여론은 결국 폭발하고 만다.

‘하나회’ 백기를 들다

1987년 6월 10일은 잠실체육관에서 당시 집권여당이던 민주정의당의 제4차 전당대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전두환의 오른팔’ 노태우의 대선후보 선출은 예정된 수순이었으며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는 이 날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서울주교좌성당에서 ‘6월 항쟁’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하나회 출신 간 ‘권력 승계’를 원한 정부는 이틀 뒤 서울 곳곳에서 산발적인 시위가 터지자 대응방침을 세우고 경찰병력을 투입했다. 당국은 최루탄 발사 등 강경진압은 자제했으며 6월 15일부터는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 대전, 대구 등에서도 집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16일 경남 진주의 파출소 4개소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26일 또다시 전국의 파출소 29곳, 경찰서 2곳, 민정당사 4곳이 불타오르는 사건도 있었지만 시위는 전반적으로 큰 유혈사태 없이 전개됐다.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이상 정부로서도 강경대응은 어려 웠다.

정부가 손 놓는 사이 ‘6월 항쟁’은 급기야 약 100만 명(주최측 추산)이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로까지 확대됐다. 민심에 굴복한 노태우는 결국 ‘백기’를 들었으며 이에 따라 ‘6월 항쟁’은 성공적으로 막을 내린다.



‘직선제 개헌’ 이끌어 낸 6월 항쟁, 그러나...

노태우가 1987년 6월 29일 발표하고 정부가 수용한 ‘6.29 선언’은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질서의 기틀을 마련했다.

8개 항으로 구성된 선언 내용은 △여야 합의 하에 조속히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하고 새 헌법에 의한 대선을 통해 1988년 2월 평화적인 정부 이양을 실행 △직선제 개헌이라는 제도 변경뿐만 아니라 이의 민주적 실천을 위해 자유로운 출마, 공정한 경쟁이 보장돼 국민의 올바른 심판을 받을 수 있는 내용으로 대통령 선거법을 개정 △정치권은 물론 모든 분야에 있어서의 반목, 대결이 과감히 제거돼 국민적 화해, 대단결을 도모 △인간의 존엄성은 더욱 존중돼야 하며 국민 개개인의 기본적 인권을 최대한 신장 △언론자유의 창달을 위해 관련 제도, 관행을 획기적으로 개선 △사회 각 부문의 자치, 자율을 최대한 보장 △정당의 건전한 활동이 보장되는 가운데 대화, 타협의 정치 풍토를 조속히 마련 △밝고 맑은 사회건설을 위해 과감한 사회정화 조치를 강구 등이다.

1987년 10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뤄지고 6공화국이 출범해 국민 누구나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지만 3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도록 ‘6.29 선언’에서 아직 이뤄지지 않은 부분도 존재한다. 어쩌면 ‘6.29 선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반목·대결 해소와 대단결’이다.



‘독주’ ‘직무유기’ 논란 휩싸인 정치권

2019년 지금 정치권은 문민정부 출범 후 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반목’ ‘대결’하고 있다. ‘합치(合致)’가 이뤄져야 국회가 정상운영되고 민생(民生)도 이뤄질 수 있기에 대립 격화의 심각성은 크다고 할 수 있다.

정부·여당의 경우 ‘합치’라는 문민정부 이후 대부분의 역대 여야 관계를 뒤집고 ‘독주’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회 일각에서 받고 있다. ‘합치’의 사례를 보면 첫 문민정부인 김영삼(YS) 정부는 보수 성향임에도 불구하고 야당과의 화합을 위해 1995년 ‘5.18 특별법’을 제정하고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도 야당과의 화해에 나서서 2004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녀인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만나 악수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민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준 건 평가받을 만하다”고 밝혔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2012년 택시를 대중교통에 포함시키는 내용의 ‘대중교통의 육성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 발의에 야당이 반발하자 해당 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전격 행사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와 친문(親文)이 주축이 된 민주당은 이 점에서 아쉽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선 정부는 내각 조각(組閣)에 있어서 야당의 ‘부적합’ 판단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에 대한 임명을 강행했다. 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공약했던 △병역면탈 △부동산투기 △탈세 △위장전입 △논문표절 △음주운전 △성폭력 등 이른바 ‘7개 인사검증 기준’은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야당 의원들에 대해 난무하는 정부·여당의 고소·고발은 ‘입막음’을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최근 한미(韓美)정상 통화내용 유출사건으로 ‘구걸외교’ 논란을 불러온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표적 사례다. 그는 여당은 물론 외교부로부터도 ‘기밀유출’ 혐의로 고발당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에 청와대 의전비서실 행정관 이모 씨가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최모 의원에게 주한미군 관련 기밀문서를 유출한 바 있지만 야당은 해당 인물들을 고발하지 않았다. 약 2년째 검찰조사를 받던 고(故) 조진래 전 한나라당 의원이 근래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문재인 정부 들어 피의자 신분으로 자살한 인물은 수 명에 이르고 있다.

강 의원에 대한 정부·여당의 ‘합공’을 두고 야권에서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5월 3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기밀유지, 보안관리를 엉망진창으로 한 강경화 외교장관, 조윤제 주미(駐美)대사의 관리감독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 그런 후에 야당 책임을 따지는 게 합당한 태도”라고 강조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전날 MBC라디오 ‘심인보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문 대통령이 (정부) 기강을 확립하지 않으면 나머지 3년이 어렵다”며 ‘집안단속’ 에 먼저 집중할 것을 촉구했다.

‘합치’를 촉구하면서 장외투쟁에 나섰던 한국당에 대한 비판도 일각에서 존재한다. 정부·여당 행보에 설사 오점이 있다 하더라도 국회에서 이에 맞서면서 의정(議政)이라는 본연의 임무는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당의 장외투쟁이 시작되면서 국회는 산적한 민생법안들을 뒤로 한 채 사실상의 ‘셧다운(Shut Down. 부분 폐쇄)’ 상태에 돌입했다. 여당은 6월 임시국회 단독소집 검토에 나섰으며 사회 일각에서는 국회에 출석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에게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국격(國格) 훼손 여지가 있는 과격한 목소리는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5월 2일 김무성 의원은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한 집회에서 “문재인 청와대를 폭파하자”고 말해 물의를 일으켰다. 발언 요지가 ‘정권 타도’가 아닌 ‘물리적인 청와대 파괴’일 경우 국민 혈세로 세워지고 유지되는 대한민국 행정 컨트롤타워에 ‘테러’를 가하자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 날의 정신’ 이제는 되살릴 때

정쟁(政爭)이 격화되면서 ‘민주주의’ ‘합치’라는 국민 염원이 담겼던 ‘6월 항쟁’의 정신은 빛이 바래지고 있다. ‘민주주의(民主主義)’ 사상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가 대원칙이다. 그러나 정작 국민의 삶은 나날이 피폐해지고 한숨은 늘어만 가고 있다.

‘6월 항쟁’ 모토는 ‘합치’였다. 누군가의 독주를 막고 여야 간 건전한 견제를 이뤄 민주주의를 완성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많은 국민이 보기에 ‘6월 항쟁’은 ‘과거완료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그 날의 함성이 대한민국 정치권에 주는 교훈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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