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정호 기자]'트렁크 시신' 살인사건의 피의자 김일곤(48)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송치 전 경찰 조사 단계에서는 여죄가 드러나지 않았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아산의 한 대형마트 지하 주차장에서 쇼핑을 마치고 나오는 여성 운전자를 흉기로 위협, 피해자 차량을 이용해 납치한 후 목 졸라 살해한 김씨를 강도살인 등 혐의로 구속, 송치했다고 25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5월초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서 자신의 오토바이와 접촉사고 문제로 시비(쌍방폭행)가 붙은 20대 초반의 남성 K씨에게 앙심을 품고 복수극을 계획했다.
살해된 주모(35·여)씨는 K씨를 불러내기 위한 유인책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주씨가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K씨에게 전화해 일하기를 희망한다고 이야기한 뒤 K씨가 등장하면 살해할 마음이었다.
주씨는 지난 9일 오후 2시께 충남 아산시 소재 대형마트 지하주차장에서 주씨를 차량째 납치해 끌고 다니다가 2시간여 만에 살해했다.
김씨는 "차량과 휴대전화만 훔칠 생각이었지 처음부터 살해할 의도는 없었다"며 "여성이 계속 도망가고 차문을 두들기며 '사람 살려달라'는 소리를 질러서 목 졸라 죽였다"고 시인했다.
10일 삼척시 소재 공원 주차장에서 복수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분노감에 시신을 훼손한 김씨는 지난 11일 서울로 올라와 그날 오후 성동구의 한 빌라에서 차량에 불을 질렀다. 시신은 트렁크에 있었다.
화재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관에 의해 시신이 발견되자 경찰은 즉각 수사에 착수했다. 폐쇄회로(CC)TV 분석 등을 통해 피의자를 특정했지만 주도면밀하게 도피하는 김씨에 대한 수사망을 좁히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김씨가 잡힌 건 공개수배로 전환된 지 나흘만인 17일 오전이다. 동물병원에서 난동을 부린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지구대 경찰들은 김씨를 격투 끝에 제압했다. 시신이 발견된 지 8일만에 일이다.
경찰 조사결과 김씨는 동물용안락사 약을 구해 목숨을 끊으려고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도피생활을 하던 김씨가 K씨에 대한 복수를 끝내고 자살하기 위해서 약을 구입하려한 것 같다"며 "실제로 키우던 애완견은 없었다"고 전했다.
김씨에게서 K씨를 포함한 의사, 형사, 판사 등 28명의 이름과 직업 등이 적힌 메모지가 발견되기도 했다. 명단은 K씨와 쌍방폭행 이후인 6월초 작성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해당 명단에 대해 "그동안 자신에게 피해를 줬던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명단자들은 대부분 "김일곤을 모른다, 전혀 연관된 게 없는데 왜 내가 명단에 올랐는지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경찰이 해당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이들 전원과 연락한 결과 피해를 입은 사람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김씨가 범행 후 이동 경로상의 추가 범죄 및 범행 이전 다른 범죄 여부 등에 대해서도 조사했지만 여죄는 발견되지 않았다.
성폭행 여부에 대해서도 김씨는 "주씨를 이용하려고 한 마당에 성폭행을 하면 신뢰관계가 깨지기 때문에 시도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훼손된 시신 일부는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송치 후에도 검찰과 협의해 진술 내용과 CCTV 자료 등을 비교, 분석하는 등 정확한 시신 훼손 장소를 확인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한편 조사에 투입된 프로파일러는 "김씨가 살해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고 있다. 충동적인 성향으로 타인과의 공감 능력도 부족하다"는 의견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