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조사서 부사관 71% "그냥 참았다"
"지휘계통 보고했다" 응답 20% 미만
고충 제기 시 누설하거나 오히려 질책
[시사뉴스 강민재 기자] 성추행 피해를 당한 여성 중사들이 잇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군부대에서 부사관들이 겪는 고충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부사관은 장교와 병 사이 중간계층에서 가교 역할을 하면서 부대관리와 병력관리에 기여하고 있지만 장교와 병사들로부터 인권침해를 당하거나 차별대우를 받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김의식 용인대 군사학과 교수가 2018년 7월26일부터 9월17일까지 육·해·공군, 해병대 예하 사단급 18개 부대 소속 장병 1525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부사관이 지휘관이나 장교 혹은 선임 부사관으로부터 인권 침해를 당했을 때 어떻게 대응했느냐'는 질문에 부사관 응답자 중 71.0%는 '그냥 참고 지나갔다'고 답했다.
'지휘계통에 보고했다'고 응답한 부사관 응답자는 20% 미만이었다.
이는 부사관들이 인권침해 피해를 당하더라도 소속부대가 시끄러워지는 것이 싫거나 혹은 문제를 제기했다가 진급과 근무평정에서 불이익을 받을까봐 우려해서 피해구제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권침해를 참고 지나간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시정요구가 소용없다'는 답이 많았다.
'부사관이 인권침해나 차별피해를 입고 지휘관에게 고충을 제기했을 때 지휘관이 어떻게 반응하거나 해결했느냐'는 질문에는 부정적인 답변 사례가 많았다.
제기된 내용을 선임 부사관이나 담당 참모부서로 인계함으로써 고충을 제기한 사실이 다른 사람들에게 누설될 가능성이 증가됐다는 증언이 나왔다.
또 고충사항이 부대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고충 제기자를 설득하고 이해시키려는 행동을 했다는 응답도 있었다. 고충을 제기한 사람의 문제점을 찾아내서 오히려 질책한 사례도 있었다.
여성 부사관이 고충 제기 후 불만을 느끼는 사례가 더 많았다.
부대 근무 중 고충을 제기했던 경험이 있는 남성 부사관 209명과 여성 부사관 51명에게 '인권침해나 차별피해를 당하고 지휘관이나 상급자에게 시정을 요구한 다음 후속 처리결과에 대한 만족도'를 질문한 결과 남성 부사관은 68.5%가 만족했다고 답했지만 여성 부사관은 45.5%만 만족했다고 밝혔다.
여성 부사관들의 건의사항이 육아지원시설 확충, 육아휴직 대리 근무자 수당 인상 등 소속부대 지휘관이 조치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법적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한 사항이 다수였기 때문이라고 김 교수는 분석했다.
전국 각지에서 일하는 부사관들은 고용 불안정으로 인한 불안감에 노출돼있다. 타 직렬 공무원들과는 다르게 부사관은 자동적으로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다. 임관 후 장기복무선발 전형에 합격해야 장기간 군에서 복무할 수 있다. 육군의 경우 2018년 기준 부사관 임관 인원 대비 장기복무자는 약 40% 수준이다.
부사관은 연령정년이 적용된다. 상사가 53세, 중·하사는 각각 45·40세다. 부사관 최고 계급인 원사는 55세다. 일반직 공무원이 57세∼60세에 은퇴하고 교육공무원은 62세에, 교수는 65세에 은퇴하는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이른 퇴직이다.
한 전직 국방부 관계자는 "임관 직후 초급 간부들은 단순히 계급만 차이가 나는 게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상 격차가 있다"며 "상관들은 근무성적 평정을 통해 부하들의 장기 선발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 나이 어린 여군이 동료가 아닌 성적 대상으로 취급되기 쉬운 구조"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