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동훈 기자] “이 뜀박질이 남북통일과 인류평화의 조그마한 헌사가 됐으면 좋겠었요.”
서울에서 1만6000km 떨어진 네덜란드 헤이그. 110년전 망국의 한(恨)을 품고 순국한 이준 열사의 얼이 서린 이 머나먼 타국에서 오로지 인류평화와 남북평화통일을 위해 고국까지 달려오겠다는 황당한 남자가 있다.
아마추어 마라토너 강명구 선수, 61세란 적지 않은 나이지만 이미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 대륙 5000km를 단독 횡단해 세계를 놀라게한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그는 이준 열사가 숨을 거둔 9월1일 네델란드의 헤이그에서 공식적인 출발을 시작한다. 독일 체코 심지어 내란의 불씨가 꺼지지 않은 세르비아 등 유라시아 16개국을 관통하게 된다
심지어 중국의 단둥(미정)에서 북한 신의주(미정) 땅을 지나 내년 10월 서울로 귀환할 예정이다. 죽음조차 넘어선 불굴의 고집… 만일 실현돼 경색된 남북교류의 숨통이 트인다면 세계 평화도 꿈이 아니다.
이에 본지는 <평화마라토너 강명구와 함께 달리는 유라시아대륙횡단 평화마라톤> 연속 시리즈의 첫 번째 순서로 강명구 선수와의 서울-헤이그발 원격 통신 인터뷰를 싣는다.
■ <유라시아평화마라톤>의 취지를 소개해주세요.
주최측으로부터 남북평화통일을 염원하는 평화의 메시지를 전세계에 전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1년 2개월간 16개국 1만6000km를 달리는 것으로
네델란드의 헤이그에서 출발해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 세르비아 불가리아 등 서부유럽과 동부유럽을 거쳐 터키 이란의 중동과 중앙아시아의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키즈스탄 그리고 중국과 북한을 넘어 내년 10월 서울로 돌아올 겁니다.
■ 세르비아는 인종적 갈등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곳으로 아는데요.
치안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터키도 북쪽 언제든 총성이 울려도 이상하지 않은 쿠르드 족 지역, 중국의 위그르 땅도 지날 겁니다. 사실 헤이그 유스호스텔(인터뷰 시각 헤이그 기준 29일 새벽)에서 만난 영국인과 아일랜드 인들도 무척 놀라더군요. 위험하지 않냐고.
그런데 위험이란 것은 미국 대륙 횡단 때도 느껴지만 상대적인 것이기에 두렵지 않습니다. 사실 레이스 도중 총알 한두 방 소리는 듣겠다고 각오하고 있습니다.(웃음)
(*세르비아는 유고슬라비아 내전과 코소보 독립운동으로 알려진 인종학살이 펼쳐졌던 나라이다. 세르비아 알바니아계 마피아는 동유럽서 가장 악명이 높다.)
■ 건강 문제도 있고, 신변 위험 문제도 있는데 동행이 있으세요.
아뇨. 분.명. 혼자 달립니다. (지원차량을 묻는 기자의 말에) 지원차량도 없습니다. 제 주변에는 70kg의 물품을 실은 유모차 그리고 응원해주시는 여러분과의 소통로인 ‘스마트 폰’하나입니다.
그러니 응원 메시지 많이 날려주세요. 달리는 도중 혹은 배터리 사정상 답장 못해도 꼭 볼겁니다. 그리고 힘낼게요.
(*강명구 선수는 미대륙 횡단 외에도 남한일주마라톤, 네팔지진피해자돕기 마라톤, 제주 강정에서 서울까지 평화마라톤 등 달리기를 통해 통일과 평화 기부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 주최 측으로부터 기업 후원 전혀 못받았다고 들었는데요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상관있나요? 프랑스와 미국 등 해외 교포분들, 한국의 시민단체와 마라톤동호인 일반시민 등 많은 분들이 후원해주셨습니다. 또한 송영길 북방경제협력위원장과 그 사모님도 큰 도움을 주셨고요.
<유라시아평화마라톤>취지가 결국 남북평화통일을 통한 세계평화 이바지란 원대한 목표에 있는 만큼 수많은 국내외 응원자들이 생긴 것이 가장 큰 보람이 아닐까요. 그래서 제가 달릴 수 있는 거고요.
■ 마라톤은 왜 하시게 된거에요. 성공한 사업가로 아는데요.
에.. 성공한 사업가 아닌데요. 단지 40대 중반 뉴욕에서의 일이 잘돼 먹고 사는 걱정은 없었던 것 같아요. 사실 마라톤은 첫사랑의 쿵쾅거림 같았습니다.
국내일간지 모 기자와 인터뷰를 끝내고, 좋아하는 운동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기자 분이 갑자기 마라톤을 강력하게 추천하더군요. 마지못해 한 번 해보겠다고 한 것이, 그만 정신차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처음 달릴 때를 못 잊어요. 레이스 도중 헐떡임, 그 헐떡임을 넘어 몸이 그 고통을 극복할 때 비로소 느껴지던 자유 그리고 풍광의 속삭임… 지금도 마라톤을 할 때면 그 때의 희열이 나를 몇 번이고 살아 움직이게 합니다.
■ 북한을 통과할 예정으로 알려져 각계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요.
현재 주최측이 내년 9월 일정을 맞춰 국제단체를 통해 북한에 계속 타진 중인걸로 압니다. 그 자체만으로 이미 민간차원에서 남북 교류의 물꼬를 트는 시도를 하는 것이죠. 나를 달리게 하는 이유이고요.
만일 실현돼 북쪽 땅을 달리게 되면 무척 감격할 것 같아요. 그 땅의 모래를 서울로 가져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를 가지게 될 것 같아요.
또 저는 실향민 2세라 어릴적부터 아버님과 할머님이 북쪽 고향땅을 무척 그리워했던 것을 지켜봐왔었요. 무엇보다 하늘에 계신 아버님께 칭찬받을 거리가 생겨 자랑스러울 것 같아요.
분명 “잘했다 명구야”라는 박수 소리가 내 귓전에 울릴거에요.
(*그의 아버지는 황해도 출신으로 대동강의 소나무 숲을 노래하던 시인이었다.)
■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이번 <유라시아평화마라톤>은 남북평화통일 뿐만 아닌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공존하는 건강한 사회를 위한 초석이 됐음 하는 바람이기도 합니다.
많은 나라와 민족을 보고 오겠습니다. 서로 다른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가 모여서 웅장한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듯 세계평화도 서로간의 공존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분명 앞당겨 지리라 봅니다.
이는 자유와 평등이 충돌하여 일으키는 균열을 넘어 단군왕검이 제시한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정신을 펼치는 우리민족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부디 많은 응원 바랍니다.
*2017년 남북관계는 1907년의 조국처럼 열강의 약육강식에 이리저리 춤을 추고 있다. 그렇기에 이번 강명구 선수의 1만6000km 대장정은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오로지 그의 행보가 DMZ 철조망을 끊어버리는 계기가 될지, 헤이그에서 서울까지의 여정을 끝까지 지켜보고픈 심정일 뿐이다.
내년 10월 판문점을 통과하는 순간 그의 번쩍 든 두 팔을 볼 수 있기를 고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