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전 세계가 ‘가짜 뉴스’와 전쟁 중이다. 미국의 대선에서도 ‘교황이 트럼프를 지지했다’ ‘힐러리가 IS에 무기를 팔았다’ 등의 ‘가짜 뉴스’가 쏟아지면서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 난민과 관련된 대량의 ‘페이크 뉴스’에 몸살을 앓아왔던 독일 정부는 9월 총선을 앞두고 러시아발 ‘가짜 뉴스’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국내에서는 최근 몇 년간 언론의 신뢰가 상실되면서 ‘가짜 뉴스’가 기승을 부렸다. 최근에는 박 대통령의 탄핵을 둘러싸고 반대자들이 생산한 ‘가짜 뉴스’가 쏟아지면서 그 심각성이 극단적 수준에 이르렀다.
경찰 수사의 모니터링 결과 일간베스트 등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가짜 뉴스’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각하 요구 여론이 80%’ 등의 허위 자막을 단 것에서부터 ‘유력 대선후보 테마주’를 빙자한 기사 형식의 게시글 등이 있었다.
미국 CNN 방송 화면을 캡처한 뒤 ‘북한군이 청와대로 진격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라도와는 얘기 안 한다고 했다’ 등의 한글 자막이 포함된 게시글 등 외신을 조작한 ‘가짜 뉴스’가 특히 많았다.
최순실 게이트는 언론불신을 최고조에 이르게 했다. 대통령의 엄청난 비리 규모는 기존 언론들이 진실에 대해 얼마나 침묵해왔는지 입증된 사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무엇도 믿을 수 없는 현실은 ‘가짜 뉴스’의 양산 환경이 됐다.
특정 이익 집단이 반대 개인이나 집단의 가치를 훼손하고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만드는 ‘페이크 뉴스’는 사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대중 심리와 결탁해 빚어진 현상이다. 출처를 확인하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은 어설픈 가짜에 대해서도 쉽게 믿음을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은 이 같은 배경을 뒷받침한다. 정보 과잉 시대의 올바른 정보의 식별이란 피로를 회피하고 자신의 편견과 선입견 또는 이익에 기대 합리화하는 도구로 대중이 ‘가짜 뉴스’를 받아들이고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집단 결속력 다지기 위한 수단
뉴스의 유통 구조가 변한 것도 ‘가짜 뉴스’가 증가한 원인 중 하나다. 최근 열린 ‘가짜 뉴스 문제점과 대응방안 토론회’에서 이재진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기존은 생산자가 뉴스의 신뢰성, 진실성에 대한 책임을 졌다”며, “하지만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이용자가 자신이 원하는 기사를 소비하는 상황에서는 생산자가 누구인가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가짜 뉴스’는 가치관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사용되는 경향이 많은 것도 특이점이다. 이 교수는 “조사 결과 우리나라의 경우 가까운 지인들끼리 스마트폰 메시지를 통한 쪽지형 지라시나 짤방 형태의 유통이 활발한 경향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가짜 뉴스’는 기업이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으며, 선거에서 흑색선전에 이용될 수 있어 유권자의 합리적 선택을 방해한다.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리고 혐오와 집단 갈등을 부추기는 등 악영향이 크다. 특히 언론이 재인용하면서 확대 재생산되면 큰 사회적 혼란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가짜 뉴스’의 사회적 피해액이 연간 30조원을 초과한다고 분석했다. 이 중 당사자 피해 금액은 22조7700억원, 사회적 피해 금액은 7조3200억원이다. 개인 중에는 정치인이 받는 피해액이 3720억원으로 가장 크고, 이어 연예인·운동선수(1240억원), 일반인(440억원) 순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5년 기준 우리나라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1559조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가짜 뉴스’에 따른 연간 피해액은 명목 GDP의 2% 수준에 달한다.
‘사실 확인’ 전문기관 필요성 커져
‘팩트 체킹(Fact Checking)’ 시스템의 도입은 가짜뉴스를 막기 위한 대표적 대안이다. 기존 언론이 사실을 확인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팩트 체크’는 심층 분석해 판정을 내리는 저널리즘의 새로운 영역이다.
‘가짜 뉴스’의 법적 제재와 제도적 장치는 꼭 필요하지만 한계가 있다. ‘팩트 체크’는 이 같은 한계를 보완하는 수단이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저커버그 또한 “우리는 그릇된 정보를 금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팩트 체크 등 풍부한 시각과 정보를 올리는 데 주안점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페이스북은 ‘가짜뉴스 필터링 서비스’를 도입·확대하고 있다. 미국 독일을 시작으로 앞으로 점차 다른 나라까지 확대해 나갈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페이스북의 가짜뉴스 필터링 서비스는 이용자들로부터 가짜 뉴스로 의심되는 신고가 들어오면 이를 비영리 탐사매체인 코렉티브(Correctiv)로 전송해 사실여부를 확인하는 시스템이다. 코렉티브의 사실 확인 작업을 거쳐 가짜 뉴스로 판명될 경우 해당 뉴스를 클릭할 때마다 ‘논란의 여지가 있음(Disputed)’이라는 경고창을 띄운다. 또한 페이스북 뉴스피드 알고리즘의 우선순위에서 제거된다.
이와 유사하게 영국의 팩트 체크 전문기관 풀팩트(Full Fact)는 뉴스를 검색하면 사실 여부를 판별해주는 모바일 앱을 개발 중이며, 프랑스는 구글과 기존 언론사와 협업으로 거짓 정보를 걸러내는 ‘크로스체크 프로젝트(CrossCheck)’를 시행했다.
오세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가장 중요한 것은 언론의 신뢰 회복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한국언론학회 주최로 열린 ‘언론보도, 사실확인(Fact Checking) 어떻게 할 것인가?’ 세미나에서 오 연구위원은 “페이크 뉴스는 그동안 ‘사실’을 전달해 온 언론의 위상을 다시 확인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동시에 ‘사실 확인’에서조차 신뢰를 얻지 못하면 언론이 페이크 뉴스가 되는 현상을 불러올 수도 있다”며 언론의 역할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