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싱글 라이프가 대중문화의 대세가 된지는 이미 오래지만, 여전히 진행 중이며 확장 중이고 번식 중이다. MBC ‘나 혼자 산다’ 이후 예능과 드라마에는 1인가구의 삶을 반영한 프로그램들이 쏟아졌고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싱글들은 때로 JTBC ‘냉장고를 부탁해’를 통해 고급 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자취방 요리의 즐거움에 젖어들기도 하고, 때로 JTBC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의 인테리어를 흉내 내며 혼자만의 공간을 만끽했다. 하지만 그들은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절대 쾌감의 세계 VS 현실에 대한 소소한 위로
2030 세대는 혼자에 익숙하다. 실제로 독립해 1인가구의 삶을 사는 인구가 늘어나기도 했지만, 가구의 형태와 관계없이 혼자 무엇을 하는 것에 편안함을 느끼는 라이프 스타일이 대세가 됐다. 혼자 밥 먹는 ‘혼밥’, 혼자 술 마시는 ‘혼술’, 혼자 여행하는 ‘혼행’, 혼자 노는 ‘혼놀’ 등의 용어로 대표되는 트렌드는 ‘N포 세대’의 정서를 잘 보여준다. 결혼과 연애를 포기하고 집장만 등 큰 삶의 목적을 잃은 그들은 혼자서 소소한 즐거움을 찾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규격화된 삶에서 벗어나다보니 사회적 관계에 대한 스트레스가 커졌다. 대인관계의 피로감은 공동체에 대한 환멸을 가져왔다. 혼자를 즐기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다른 사람 눈치 안보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어서’ ‘타인의 취향과 조건을 맞추지 않아도 돼서’ 좋다고 말한다.
일본의 경우 이 같은 트렌드는 우리보다 10여년 앞서 시작됐다. 2000년대 들어 일본 대중문화에는 혼자 사는 삶이 과거의 인식과는 달리 더 이상 초라하지도 외롭지 않다는 논조가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기본적 인식은 우리와 비슷한데, 대중문화에 나타난 정서의 결은 조금 다르다. 일본 미식 드라마의 대명사 ‘고독한 미식가’와 일본판 ‘혼술남녀’라고 할 수 있는 ‘와카코와 술’은 인간관계 자체가 삭제된다. 인간관계나 일은 어떤 음식을 먹거나 술을 마시기 위한 부수적 장치에 불과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 앞에 있는 작지만 소중한 즐길거리와 그 순간에 대한 탐닉뿐이다. 고독이나 현실적 문제에 대한 고뇌는 없는 세계며,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혼자만의 그 순간은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하지만 한국의 대중문화에서 싱글라이프는 마냥 즐겁기만 하지도 않으며 그렇게까지 탐닉적이지 않다. 혼자만의 시간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찾기는 하지만 그순간이 현실에 대한 막막함과 씁쓸함이 없는 절대적 쾌감의 세계는 아니다. tvN ‘혼술남녀’의 주인공들은 일본 드라마처럼 술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돈과 시간 정신적 여유가 부족하다던가하는 다양한 이유가 존재한다. 술은 고단한 인생을 위한 위로이자 인간관계의 매개체이지 그 자체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점에서 일본의 대중문화와는 상당한 차이를 지닌다.
tvN ‘식샤를 합시다’도 마찬가지다. 1인가구의 유쾌한 삶을 그린 이 드라마에서도 캐릭터들은 소소한 식사로 초라하고 미래가 불투명한 삶속에서 작은 행복을 찾지만, 그들을 진정으로 위로하는 것은 ‘이웃과의 따뜻한 한 끼’다.
기존 트렌드를 뒤집다
싱글 라이프에 대한 복합적 정서는 예능에서도 드러난다. SBS 예능 ‘미운 우리 새끼’는 ‘나 혼자 산다’의 ‘엄마가 지켜보고 있다’ 판이다. 혼자 사는 남성 연예인들의 일상을 엿보는 것은 ‘나 혼자 산다’와 같은 포맷이다. ‘미운 우리 새끼’는 여기에 ‘엄마’를 스튜디오 패널로 참가시키는 가벼운 변화만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출연자의 어머니들은 독신자 아들에 대한 전형적인 부모세대의 가치관을 드러낸다. 결혼 하지 않고 늙어가는 자식에 대한 안타까움과 걱정, 한탄과 충고 등은 이 프로그램의 재미 포인트다.
흥미로운 점은, ‘미운 우리 새끼’는 바로 이 지점에서 가장 한국적 정서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싱글 라이프에 대한 로망과 현실, 신세대와 구세대 등 양가적이고 이중적인 정서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던 이 예능에서는 고스란히 드러난다. ‘혼자 즐기면서 사는 인생도 좋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다고만 할 수는 없는 감정’ 정도로 정리할 수 있는 대중정서는 늘 존재했지만 이 예능처럼 노골적으로 표현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JTBC의 ‘한끼줍쇼’도 ‘혼밥’ 트렌드에 역행하는 예능이다. 다큐멘터리에 가깝다는 점에서 ‘한끼줍쇼’는 tvN ‘삼시세끼’와 같은 지점에 있다. 하지만, ‘삼시세끼’보다 더욱 본격적인 다큐멘터리며 최근에는 보기 드문 일반인이 출연하는 예능이다. 이 프로그램은 ‘혼밥’과 ‘쿡방’ 트렌드에 지쳐서 등장한 느낌을 준다. 쉐프들이 출연하는 화려한 ‘쿡방’도 아니고, 연예인들이 맛집에 가서 혹은 여행지에서, 스튜디오에서 혼자 음식을 먹는 프로그램과도 반대된다.
현실의 집밥, 가정에서의 저녁식사가 궁극적으로 카메라가 향하는 곳이다. 서울의 서민 동네만 찾아 방문하는 것은 ‘한끼줍쇼’가 얼마나 화려한 싱글라이프와 우아한 ‘쿡방’에 반기를 들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연예인이 일반 가정집에 찾아가 함께 식사를 하는 콘셉트는 ‘혼밥’에 대한 무의식적인 거부다.
어쩌면 가족관계가 해체되고 새로운 가정을 꿈꾸기도 힘든 고단한 현실에서 ‘화려한 싱글’이라는 ‘기만’을 대중들이 거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소소한 혼자의 시간을 즐기고, 때로는 함께이고 싶은 현대인의 양가감정을 대중문화가 적극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