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종근 기자]프로바둑 9단 이세돌(33)이 구글 딥마인드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가 )에게 충격의 패배를 당했다. 알파고는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1국에서 중후반 몇 차례 악수를 극복하고 186수 만에 백 불계승을 거뒀다.
불계승은 바둑에서 계가를 하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상대가 기권을 했을 경우에 이뤄진다.
전투형 기사인 이 9단은 이전의 기전에서는 거의 보지 못한 새로운 수를 선보이면서 초반부터 강하게 압박했다. 하지만 알파고도 주도권을 내주지 않고 전투적 기풍을 보였다. 전반적으로 알파고의 냉정한 형세 판단이 돋보인 바둑이었다. 초반에 결정적인 실수를 했지만, 중후반으로갈수록 알파고는 얄미울 정도로 정확했다.
알파고는 백102로 승부수를 띄웠다. 우상귀에서 착실하게 실리를 챙기고 선수까지 잡으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결정적으로 백150을 두며 알파고의 승리가 확정됐다.
두 기사의 시간 사용만 봐도 이 바둑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다. 엇비슷하게 나가다가 후반 들어 알파고의 시간 사용이 많았다. 이세돌이 돌을 던진 시점에서 알파고는 5분30초, 이세돌은 28분28초를 남겼다.
이9단이 알파고 알고리즘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이 패배 원인으로 분석된다. 한 판을 내준만큼 심기일전하는 각오로 신중한 대국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알파고가 백을 잡은 것도 승리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날 이세돌 9단은 돌가리기를 통해 흑을 잡았다.
대국은 백을 잡은 기사에게 덤 7집 반을 주는 중국식 규칙에 따라 진행된다. 알파고는 중국 룰로 설정돼 있어 한국 룰로 진행하기 어렵다고 구글 측이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바둑은 흑이 먼저 두는데, 먼저 두는 쪽(흑)이 유리하기 때문에 나중에 둔 쪽(백)에 불리함을 보상해 주기 위해 이 같은 규칙이 만들어졌다. 중국 바둑은 덤이 한국보다 1집 많은 7집 반으로, 백이 유리하다. 백돌을 선택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이 9단은 흑돌을 선택했다. 포석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도였으나, 이것이 승부에 영향을 미쳤다.
◆“이세돌 이길 줄 알았는데”…바둑계 ‘충격’
인공지능(AI) '알파고'는 이날 1국에서 이세돌 9단을 상대로 186수만에 백 불계승을 거뒀다.
당초 바둑계는 이세돌의 일방적 승리를 예상했다. 하지만 알파고는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뛰어난 계산과 수읽기로 주도권을 내주지 않고 전투적 기풍을 보였다. 끝내 승리를 가져가면서 모두를 충격에 빠트렸다.
대국 종료 후 이 9단은“알파고에 너무 놀랐다”며“진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늘 바둑은 초반의 실패가 끝까지 이어진 것 같다.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들에게 깊은 존경심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날 대국 현장에서 공개 해설을 맡은 김성룡 9단은 “이세돌 9단도 충격을 받았지만 프로기사 모두가 충격적인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해설하면서 분명 프로기사가 느끼는 것과 다른 스타일을 느꼈다. 알파고는 실수를 했어도 시종일관 냉정을 유지한 것이 특이하다. 알파고의 승리 원인은 냉정함인 것 같다”고 평했다.
KBS 2TV 중계방송을 해설한 박정상(32) 9단은 “생각보다 알파고가 만만치 않다.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되겠다”고 전했다. 그는 “기사 입장에서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다. 부분적 수 읽기에 대해선 이세돌 9단도 세계 최고의 선수다. 하지만 인공지능 최고의 장점도 바로 그 부분이었다”고 말했다.
바둑TV를 통해 해설한 유창혁(50) 9단은 이 9단이 패배할 가능성이 짙어지자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유 9단은 “이세돌답지 않게 실수가 많았다”며 “이세돌이 정상 컨디션이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한 번 지고 나면 다음 대국 때에는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에, 내일 대국에선 기량 발휘를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세돌“이제 승률은 50 대 50…2국은 자신있다”
이세돌 9단이 자신의 승률을 50%로 전망했다. 이세돌 9단은 이날 오후 알파고 첫 대국을 마친 뒤 “이제는 승률이 50%대50%이 아닌가 싶다”며 “오늘은 비록 졌지만 내일 2차 대국은 자신있다”고 말했다.
그는 첫 대국에서의 패배가 남은 4경기에 영향을 미칠지 여부에 대해 “패배가 충격적이긴 하지만 알파고와의 바둑은 굉장히 즐겁게 임했다”며 “대국을 받아들인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으며 오늘 결과가 안 좋았기 때문에 남은 경기에서 오히려 승산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구글 딥마인드의 하사비스 대표는 “아직 4번의 대국이 남아있고 이세돌 9단도 새로운 전략과 시도를 하리라 생각한다”며“그것에 대해 알파고가 어떻게 대응하는지는 실제 경기가 시작되고 나서야 알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세돌과 알파고의 '세기의 매치'는 15일까지 포시즌스호텔 서울 특별대국장에서 5회에 걸쳐 치러진다. 매일 오후 1시에 대국이 시작된다. 우승자에게는 100만 달러(약 12억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알파고가 승리하는 경우 상금은 유니세프와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교육 및 바둑 관련 자선단체에 기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