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은 지난 1981년 제일교포들의 중심으로 설립한 은행으로 1982년 3개의 점포로 시작했다. 이어 1999년에 (주)충북은행 및 (주)강원은행과 합병하고 몇 개의 은행과 몇 개의 금융회사를 인수하면서 2001년 9월, 신한금융지주회사를 설립했다. 2006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은행인 (주)조흥은행과 합병하고 거대금융지주회사로 발돋움했다.
동지에서 적으로
그동안 신한금융지주는 라응찬 회장을 중심으로 현 신한금융지주 사장인 신상훈 전 행장, 이백순 현 행장으로 이어지는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자랑해왔다. 특히, 신 사장은 1982년 신한은행 창립 때부터 라 회장과 함께 신한금융을 키워오면서 조흥은행 합병을 함께 추진했다. 지난 2월 26일 이사회에서 라 회장 연임 안이 정기주총 승인 건으로 확정하고, 승인되면서 네 번째 연임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최고경영진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갈등은 결국 1980년대 후반에 오사카지점에서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었던 신 사장과 이 행장의 동지관계가 신한은행이 신 사장을 비롯해 사장급 3명과 본부장급 2명, 관련직원 1명, 차주 1명 등 7명을 배임과 횡령 혐의 고소함으로써 적으로 바뀌었다.
신한은행은 그룹에 미치는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사회를 열어 신 사장에 대한 해임안을 신속하게 의결할 계획이었지만, 사외이사들의 반기로 일정이 계속 늦춰지고 있는 상황이다.
라 회장과 신 사장, 이 행장 등은 일본 나고야를 방문해 재일동포 주주와 이사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했다.
이 설명회에서 ‘빅 3’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주주 및 사외이사들을 대상으로 신한금융 사태에 대해 각각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빅 3’ 모두 일본으로 간 것은 그동안 신 사장의 소명 절차가 없다는 지적에 따라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신 사장은 그동안 “불법 대출이나 횡령 등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혐의를 부인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설명회에서도 억울함을 호소했다.
라 회장·이 행장과 신 사장의 균열은 라 회장의 네 번째 연임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특히 지난 4월, 당시 한나라당 법제사법위원회의 주성영 의원이 이귀남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박연차 사건 발발 당시 라 회장의 돈 50억 원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된 계좌(차명 계좌)에서 박 회장에게 전달됐는데 왜 수사를 안했냐”는 한 질의에서 비롯됐다. 또한 주 의원은 “금융실명제법을 위반한 사람이 어떻게 금융계 수장의 자리를 그렇게 오래도록 지킬 수 있느냐”고 파고들었다.
신한금융지주 박연차 관련 설(?)
주 의원의 발언 파장은 신한 내부에서 크게 소용돌이가 친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라 회장측이 라 회장의 박연차 게이트 건을 신 사장의 내부고발로 지목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신 사장은 내부고발자로 지목된 것으로 판단하자 라 회장 구하기에 급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내용은 민주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한 라디오 방송에서 “라 회장의 차명계좌 문제가 불거졌을 당시 신 사장이 라 회장 구명을 위해 세 번인가 시도했다”고 말하면서 밝혀졌다. 또한 박 대표는 “현 정권이 KB금융에 이어 한국을 대표하는 신한은행까지 손아귀에 넣기 위한 일종의 권력투쟁”고 말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이 라 회장의 금융실명제법 위반을 조사하기 위한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고 언론보도가 있었다. 정부가 신한금융지주의 국내 여신이 20여%를 차지하고 있어 자칫 제2금융대란이 올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나선 것으로 금융관계자들이 판단하고 있지만 금감위가 뒤늦게 하필 신 사장의 고발이 있은 뒤 이루어졌느냐는 의문이 앞서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 현 정권으로부터 전라도 출신인 신 사장이 미움을 받았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지만 라 회장의 후계구도와 관련이 있는 신한금융지주 최고경영자 사이의 내부 갈등이라는 분석이 가장 큰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경영진의 권력 암투설이 물위로 떠오르면서 특히, 라 회장의 장기집권으로 내부 불만이 많아지고, 라 회장이 박연차 게이트로 인해 심신이 피로하여 힘을 못쓰고 있는 상황에서 라 회장 못지않게 금융계의 신망이 두텁고, 신한은행 발전의 공로는 컷 던 신 사장에게 라 회장의 권력이 넘어갈 것이라 보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이 행장이 신한금융지주회사 사장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쿠테타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 행장이 신 사장의 흠집내기의 일환이 시작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신상훈 라인 VS 이백순 라인
또한, 내부에서는 속칭 신상훈 라인과 이백순 라인으로 대결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신 사장의 군상상고 라인과 이 행장의 덕수상고 라인이 은행 내부에 포진하고 있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내부 임원진에는 덕수상고 출신이 300여 명이고, 군산상고 출신은 80여 명이다. 이 때문에 군산상고 출신이 지주회사 사장을 맡고 있다는 것이 덕수상고 라인에게는 눈엣가시로 보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되자 이번 일로 잠자고 있었던 옛 신한은행과 옛 조흥은행 사이의 편 가르기도 재연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하지만 또다른 일각에서는 지난 2005년 옛 신한은행과 조흥은행의 합병 방식을 ‘점진적 합병’을 주장했던 최영휘 당시 신한금융지주 사장이 경영진 내부의 의견 대립으로 갈등이 커지자 전격 경질된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신 사장의 고소는 라 회장의 ‘2인자 숙청’이라는 설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큰 사태에도 불구하고 함구하고 있다. 정치권의 함구는 조흥은행 합병 당시 신 사장 로비가 여야를 막론하고 모든 정치권에 뻗쳤다는 설이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경영진 갈등은 신 사장의 해임안 보다 내부 권력다툼으로 커질 양상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신상훈 라인과 이백순 라인 대결과 함께 옛 신한은행과 옛 조흥은행 출신 라인의 갈등도 클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정부 개입설은 또다른 신한사태 국면을 초래할 것인지 아니면 해결국면으로 접어들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