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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충격, 민주주의의 후퇴로 물든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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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한해를 정리하다 보면 “다사다난했다”는 말을 곧잘 하곤 한다. 하지만 올해처럼 그 말이 딱 맞을까 싶다. 2009년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격동의 한 해’였다. 국내외적으로 정치 경제 사회에 걸쳐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제적으로 참 힘든 시기였다. 시사뉴스는 2009년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올해의 10대 뉴스’를 선정했다.
그래도 매년 굵직한 이슈 중에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이 함께 했건만, 올해엔 유독 기쁨보다 슬픔이 더 많은 한 해였다. 특히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수환 추기경, 마이클잭슨 등 386세대의 우상으로 꼽히는 이들의 잇따른 죽음이 눈에 띈다. 나로호 발사 실패, 북한 미사일 공격, 쌍용차 파업 등 비록 순위에는 들지 못했지만, 대한민국을 뒤흔든 사건들이 후보에 머물렀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올해의 가장 큰 이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다. 무엇보다 전직 대통령 초유의 ‘자살’이라는 점에서 국가적 충격은 상당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5월23일 오전 6시40분께 봉하마을 뒷산에서 자살, 결국 안타까운 생을 마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중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600만 달러의 ‘포괄적 뇌물수수’ 혐의를 받아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조사를 받고 있었다.
이 사건으로 그가 재임시 중요한 가치로 내세운 도덕성에 크게 흠집이 났고, 정신적으로 심한 압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검찰의 몰아붙이기식 수사는, 전직 대통령의 죽음으로 내몬 결정타가 되었고 이는 ‘정치보복을 위한 표적수사’라는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했다.
한때 ‘자살’과 ‘타살’설이 나돌았지만, 유서가 발견되면서 ‘자살’로 확인됐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노동현장의 투사에서 대통령의 자리까지 오른 인생역전의 주인공. 하지만 퇴임후 검찰출두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63세의 짧은 일기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노 전 대통령의 삶은 한국 민주화의 희비를 고스란히 담는 한편의 서사시였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서민적인 모습으로 친근한 이미지를 가졌던 대통령의 갑작스런 비보는 온 나라를 충격으로 몰아넣었고 슬픔은 컸다. 국민들은 그의 죽음에 진심으로 애통했고 추모물결은 사상 유례없는 장관을 연출했다. 온라인에선 많은 포털과 언론사가 ‘추모게시판’을 운영한 가운데 네티즌들은 추모곡을 만들고 관련 UCC를 제작하는 등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했다.
노 전 대통령의 장례는 최규하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로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전국 102곳의 정부 분향소에는 약 100만명이 조문하고, 서거 이후 안장식까지 봉하마을 분향소와 묘역에는 160만명 가량이 다녀갔을 정도로 추모 열기는 뜨거웠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박연차 수사는 6월12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검찰은 수사배경과 과정만을 설명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아, 이 사건은 ‘영구 미제’로 남게 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충격적인 서거로 채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잃는 슬픔을 동시에 겪는 한 해였다. 김대중(85) 전 대통령은 지난 8월18일 오후 1시42분 서울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 서거했다. 이로써 60년대부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세 사람이 현실정치의 중심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이른바 ‘3김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됐다.
김 전 대통령은 ‘인동초’에 비유됐던 85년의 험난한 일생을 접고, 대통령으로서 남긴 업적과 못다 이룬 일들을 뒤로 하고, 국민의 슬픔과 애도 속에 역사에 남게 됐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 투쟁과 인권신장, 통일운동에 평생을 헌신해 독재 종식과 민주주의 정착, 한반도 평화 조성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정치계와 국민들의 존경을 받아왔다.
특히 대통령 재임 기간, 6.25 전쟁 후 최대 국난이었던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세계최고의 정보화 사회를 구현했으며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해방 후 첫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남북화해협력 시대를 열었고, 그 공로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외신들도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전하며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장례식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로 국장(國葬)으로 국민의 애도 속에 엄수됐다. 지방자치단체가 설치한 전국 184개 분향소에서 75만명의 추모객이 다녀갔고 정치권은 ‘조문정국’으로 이어졌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은 ‘용서와 화해’라는 고인의 뜻을 되새기는 자리가 됐다.
생전에 그렇게 염원했던 이념과 지역간 갈등해소 및 계층과 세대간 화해 가능성을 보았다. 전국적인 추모열기는 정파의 구분도, 계층과 지역의 차이도 없었다. 특히 죽음을 목전에 두고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극적인 화해는 22년간 계속돼 온 반목과 갈등에 마침표를 찍었다. 북한도 조문단을 파견해 남북 간 화해의 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용산 대참사
6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용산 참사 사건’은 2009년 새해 벽두를 요란하게 열었다. 새해의 희망을 품기도 전인 지난 1월20일 새벽, 서울 용산 재개발 지역 건물에서 강제 철거에 저항하며 농성을 벌이던 철거민들이 화재로 참사를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경찰의 무력 진압으로 점거시위를 하던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은 불에 타거나 질식해서 숨졌다. 사건 발생 후 정부와 경찰은 농성자들이 던진 화염병에 의한 화재였다며 책임을 떠넘겼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시위중인 철거민에게 경찰이 특공대까지 대동하여 무력 진압으로 맞서고 화재 참사까지 벌어진 것을 이해할 국민은 거의 없었다.
더구나 2009년 ‘특공대원 투입’과 ‘용산참사 e-메일 홍보지침’ 등의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정부와 경찰의 책임 문제가 제기됐다. 하지만 계절이 세 번 바뀔 동안 정부와 경찰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각종 언론의 보도와 진실을 밝히려는 사회 각곳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용산 참사 희생자들의 시신 5구는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냉동 창고에 보관돼 있고 유가족들은 생계를 뒤로 하고 진실규명을 위해 기약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 10월28일 1심 판결에서 법원은 농성자 전원에게 모두 징역과 집행유예 등의 중형을 내렸고 반면, 경찰에겐 무혐의를 내렸다. 이 사건은 ‘공권력의 남용’ ‘민주화의 역행’ ’공안통치의 참사’로 국민적 원성을 샀다. 정부와 경찰이 입을 다물고 있는 한,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재개발 사업의 구조적 문제점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신종플루’ 전세계 강타
지난 4월23일 멕시코에서부터 시작된 신종플루(인플루엔자 A·H1N1)는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으며 전 세계를 강타했다. 미국과 브라질, 멕시코 등에서 퍼지던 신종플루는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세계보건기구(WHO)는 신종플루의 전염병 경보 수준을 6단계 중 최고인 ‘대유행(pandemic)’ 으로 격상시켰다(6월11일).
한국은 지난 5월2일 국내 첫 신종플루 감염자가 나온 이후 5월23일 태국을 다녀온 55세 남성이 첫 사망자로 기록됐다. 이후 신종플루 감염자와 사망자가 날이 갈수록 증가하면서 정부는 위기단계를 ‘경계’에서 ‘심각’단계로 격상시켰다. 학교는 휴교령을 내리고 각종 행사를 취소하는 등 비상이 걸렸다.
‘신종플루 공포’가 확산되면서, 부작용도 속출했다. 일선 병겴퓻貶【?백신 투여요청이 잇따르고 타미플루 암거래가 횡행하는 등 사회적 혼란이 가중됐다. 또한 신종플루 대유행에 따라 ‘수능연기설’ ‘10월 대란설’ ‘부유층 확산설’ 등 근거 없는 괴담이 떠돌기도 했다. 돼지독감, 사스에 이어 신종플루까지 수년마다 반복되는 전염병 바이러스 출현에 ‘지구멸망설’부터 제약회사가 일부러 바이러스를 퍼트렸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내성 바이러스 환자가 발생하고, 신종플루 백신접종 후 사망사례까지 보고되면서 신종플루 공포는 더 이상 막을 수 없게 됐다. 하지만 12월을 넘어서면서 신종플루 유행이 조금씩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1월18일 현재 사망자는 82명으로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다.
한편 WHO는 지난 4월 이후 전 세계 206개 국가에서 신종플루 사망자가 6770명(11월15일 현재)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미디어법 졸속 처리
2009년 7월22일은 ‘민주주의의 위기’가 본격적인 ‘반민주 독재화’로 전개된 날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이날 한나라당은 미디어법 협상 결렬을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신문법과 방송법, IPTV법 등 미디어 3법을 단독 강행처리했다. 이로써 언론통폐합 이후 30년 만에 조중동 등 신문과 대기업이 방송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문을 터주게 됐다. 2008년 12월 미디어 관련법이 국회에 제출되고 극한 파행을 거듭한 끝에 7개월만이다. 민주당은 ‘언론장악 악법’ ‘정권연장을 위한 발판용’이라며 한나라당의 미디어 관련법을 반대해 왔다.
하지만 국민의 60% 이상이 반대하고 민주당 등 야당의 극한 대립 속에 일방적으로 통과된 미디어법 통과는 ‘졸속처리’라는 오명을 얻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과의 협상을 일방적으로 결렬하고 국회의장석 주변을 점거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이윤성 부의장을 내세워 방송법을 직권상정했고 처리과정에서 여야간 격렬한 몸싸움으로 국회는 난장판이 됐다.
1차 투표에서 정족수 미달로 부결됐지만 서둘러 재투표를 실시하여 억지 통과됐다. 의결정족수도 채우지 못해 ‘대리투표’까지 해서 강행 처리한 미디어법을 국민은 신뢰하지 못한다. 여야 의원들의 난투극으로 통과된 이 법안에는 그 어디에도 중소기업과 서민을 위한 내용은 없다. 방송산업은 자산 10조원 이상의 대기업과 거대언론들에게 우선순위가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공공재 성격이 짙은 방송이 지녀야 할 다양성이 무너질 우려가 높다.
국회의 본회의 방송법 통과를 놓고 민주당 등 야당은 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재표결은 국회법 위반으로 그 자체가 원천무효라는 것. 10월말 헌재가 미디어법 처리 절차의 불법성을 인정하면서도 법의 효력은 인정하는 애매한 선고를 내놓음으로써 미디어법 재개정 논의가 촉발됐다. 한편 민주당 최문순·천정배·장세환 의원은 미디어법 강행처리에 항의해 사퇴서를 제출하고 장외투쟁을 벌이며 미디어법 재논의를 촉구했다.

‘조두순 사건’ 파문
8살 여아를 성폭행하고 영구장애를 입힌 이른바 ‘조두순 사건’은 우리 사회의 아동 성폭행문제의 심각성과 실태를 고발한 충격적인 사건이다. 당시 이 아이는 화장실에서 성폭행을 당하고 끔찍한 신체적 영구장애를 입었으나, 검찰은 12년형만을 선고했다. 더구나 가해자(당시 56세)가 반성의 기미도 없이, 형량이 가혹하다며 항소했으나 대법원은 원심 그대로 확정했다. 범인의 엽기적인 행각과 재판에서의 뉘우침 없는 태도 국민들의 분노를 일으켰고 국회, 청와대 홈페이지에 항의글이 빗발치는 등 여론이 들끓었다. 대부분의 아동 성폭행 사건의 경우, 가해자의 최고형량이 ‘무기징역’인데도 법원은 가해자의 ‘심신미약’을 이유로 낮은 형량을 선고하고 있다. 이런 법원의 판결에 대해 형량이 지나치게 낮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사법체계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조두순 파문을 계기로 국내 아동 성범죄의 처벌제도가 크게 논란이 되면서, 사회적 경각심을 주고 사법부의 개선의 여지를 열어주었다는 점은 소정의 성과라 할 수 있다. 국정감사에선 조씨에 대해 항소하지 않은 검찰의 문제점을 꼬집었고 검찰도 시인했다. 법원은 여론의 눈치를 살펴 범인에게 낮은 형량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실제로 조두순 사건 이후 아동 성폭행 가해자의 선고는 예전보다 가볍지 않았다.

4대강 정비사업 논란
정부는 4대강 정비 사업 종합계획을 2009년 6월8일 확정, 발표했다. 핵심 과제로는 △물 부족에 대비한 수자원 확보 △200년 빈도 이상의 홍수에 대비한 홍수조절용량 확보 △본류 수질 평균 2급수로 개선 △하천의 다기능 복합공간 개조 △지역발전을 위한 연계사업 등 5개가 선정되었다. 4대강 정비사업과 관련해서는 물 부족에 대비한 수자원 확보와 수혜 예방을 위한 유기적 홍수 방어 대책 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과 함께 4대강 정비사업이 위장된 ‘대운하 사업’이며, 환경파괴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실제로 한반도 대운하 공약은 이명박 대통령의 주요 공약 중 가장 큰 쟁점이었다. 하지만 반대여론이 거세지면서 지난 6월19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민이 반대한다면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혀 사실상 폐기됐다. 그러나 대운하 사업의 경제성 조사를 진행하던 국책연구원의 박사가 포털사이트에 ‘4대강 정비사업’의 실체는 ‘대운하 사업’이라는 요지의 글을 올려 파문이 확산된 적이 있다.
4대강 정비사업 역시, 이명박 정부의 핵심사업으로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양상이다. 사업 추진과정에서 국민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다만 여야간 끊임없는 대립이 존재할 뿐이다. 국토부가 마련한 4대강 사업의 환경영향평가 방안을 환경부가 석달 만에 협의해주면서 사업을 서두르려고 졸속으로 진행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환경단체와 야당의 반발 속에, 지난 12월8일 3조5000억원에 이르는 4대강 예산이 통과됐다. 이날 예산안 의결은 표결 없이 위원장의 통과선언으로 이뤄졌다. 4대강 사업의 총규모는 정부가 발표한 30조원을 초과할 수 있다는 조사가 있다. 이런 대규모 예산을 더 다급한 ‘민생 안정’을 위해 쓰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무시할 수 없다.

김수환 추기경 선종
‘한국 종교계의 큰 별’ 김수환 추기경이 지난 2월16일 오후 6시12분 87세의 일기로 선종했다. 김 추기경의 선종 소식에 전국은 큰 슬픔에 잠겼고 명동성당은 전국 각지, 각계에서 온 추모객들의 애도행렬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소식은 이념과 사상, 종교를 뛰어넘어 ‘하나됨’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그는 분명 한국 가톨릭계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정신적 지주였다. 한국 현대사의 주역으로 나라의 중요한 고비마다 종교의 수장을 넘어서 민주화의 횃불을 들었다. 어려웠던 시절 고통을 함께 하는 ‘희망의 전령사’였고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역사를 바로잡고자 노력해 왔다.
평생을 ‘나눔과 사랑’을 실천해 온 삶은 종교와 이념을 떠나, 많은 이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의 그런 정신은 마지막 가는 날까지도 계속됐다. 생전 약속에 따라 두 안구를 기증했고 장례절차도 평소 뜻에 따라 일반 장례미사로 소박하고 검소하게 진행됐다. 김 추기경은 “고맙다”는 마지막 말을 남겼고, 임종 직전까지도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다”며 주변 사랑들에게 ‘사랑’을 강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계층에 상관없이 사랑과 미덕을 실천한 김 추기경의 마지막 가는 길은 외롭지 않았다. 정치권은 물론 종교와 계파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팝의 황제’ 마이클잭슨 사망
이제는 전설로 남은 ‘팝의 황제’ 마이클잭슨이 53세의 나이에 세상과 영원한 작별을 고했다. 마이클잭슨은 지난 6월25일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미국 LA자택에서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영국 런던에서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있었기에 팬들의 충격은 더욱 컸다.
그의 사망소식은 전세계에 생중계됐고 ‘전설적인 팝아티스트’의 죽음에 세계인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의 죽음을 믿기 어려워서일까. 그의 석연찮은 죽음을 두고 의혹이 난무하다. 양육권 분쟁부터 재산분할과 죽음을 둘러싼 공방까지 연일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인위적인 타살’이라는 주장에서부터 ‘목격담’과 ‘유령설’까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세기의 죽음’은 추모물결도 남달랐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물결이 전세계, 각지에서 이어졌고, 그의 영결식은 전 세계 수백만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인터넷 생중계 됐다.
미국 팝 100년사에 유일하게 ‘황제’로 불린 마이클 잭슨, 그는 떠나고 없지만 그는 세계인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숨쉬는 ‘팝의 전설’로 남았다. 다큐멘터리 영화 ‘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은 전 세계적으로 2억 달러를 넘는 흥행 수익을 거뒀고, 함께 발매된 유작 앨범도 400만 장 이상 팔렸다. 사망한 지 5개월이 지났지만 제37회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4관왕을 차지할 정도로 잭슨은 사후에도 음악계는 물론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김연아 신드롬 불패
지난해부터 불기 시작한 김연아 신드롬이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어려울 때 사람들은 ‘영웅’을 원한다. 10년 전 외환위기 때 ‘맨발의 투혼’을 보여준 박세리 선수에 환호했다면 지금은 ‘빙상위의 요정’ 김연아 선수에 열광한다.
지난 4대륙선수권대회(2월)를 시작으로 세계선수권대회(3월)와 그랑프리 파이널(12월)까지. ‘피겨 여왕’ 김연아(19)는 올해 출전한 5개 대회에서 모두 우승했다. 특히 세계선수권대회에선 여자 싱글 역대 최고점인 207.7점을 기록, 전국을 들썩이게 했다. 그녀의 아름다운 손짓과 매혹적인 표정연기, 화끈한 점프 기술은 대중을 압도했고, 그녀가 출전한 대회 중계는 시청률 ‘대박’을 터뜨렸다.
김연아의 인기에 힘입어 비인기종목이던 피겨 스케이팅에 대한 관심도 폭증했다. 김연아는 ‘신드롬’을 넘어서, 대한민국 스포츠의 대표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김연아 빵’, ‘김연아 귀걸이’, ‘김연아 트레이닝복’, ‘김연아 물’ 등 내놓은 상품마다 빅히트를 쳤다. 세계적인 불황에도 '김연아 마케팅'은 말 그대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굳게 닫힌 기업들의 지갑을 열고 있다. 이미 1년 계약 광고의 출연료가 7~10억원에 이르는 특A급 모델로 성장했고 김연아 브랜드 가치는 날로 상승하고 있다.
여느 배우와 달리 안티팬이 없으면서 무엇보다 ‘꿈꾸고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상징적 아이콘 이라는 점에서 ‘김연아의 경제적 가치는 무한대’로 평가된다. 김연아 신드롬은, 피겨의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에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김연아를 보면서, 세계경제의 불황 속에서도 희망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염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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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순의 아트&컬처] 다른 듯 닮은 남매 작가 윤석남 윤석구 첫 2인전 <뉴라이프 New Life>
한 가문에서 유명 작가가 여럿 나오기는 쉽지 않다. 국내 대표적인 여성주의 미술작가 윤석남(85)과 조각가 윤석구(77)는 한 뿌리에서 나고 자라난 남매 예술가다. 윤석남이 여성사를 발굴해 여성의 목소리를 되살리는 작업을 해왔다면, 윤석구는 물질만능주의와 자본주의를 성찰하고 생명에 애정을 보이는 작업을 해왔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에서 열리고 있는 윤석남 윤석구의 2인전 ‘뉴라이프 New Life’전은 두 남매가 함께 여는 첫전시다. 윤석남은 2000년대 초반 그린 드로잉 80여 점을, 윤석구는 미발표 신작 17점을 내놓았다. 두 사람이 미술로 함께 한 것은 2012년 전북 익산국제돌문화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한 조각이 유일하다. 이번 전시는 동생 윤석구의 조각 작품을 중심으로 윤석남의 2000년대 드로잉을 소개한다. #윤석구, 물질적 욕망 부추기는 자본주의 비판 “살아가면서 하나의 틀에서 출발하는데, 이러한 틀을 극복하지 못하는 우리의 삶에 대해 생각하며 ‘치유와 새 생명 탄생의 의미를 담은 작품을 하게 됐습니다.” 윤석구는 15년 전 독일 유학에서 돌아온 후 원광대학 미술대학에서 제자를 기르고 작업을 하면서 숙명적인 틀을 느꼈다고 한다. “비슷한 작업을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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