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영남취재본부 정상환 변호사 기고] 2월 21일이 무슨 날인지 아십니까? 1907년 2월 21일, 독립지사 서상돈, 김광제 선생 등의 제안으로 대구에서 처음 시작해 전국으로 번진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된 날입니다.
이 운동은 일제가 강요한 1,300만원의 나라 빚을 갚기 위해 전국민이 참여한 우리나라 ‘최초의 시민운동’이자 ‘최초의 여성운동’으로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소중한 대구의 자산이자 세계의 유산입니다.
당시 지식인들은 각종 단체ㆍ학회ㆍ학교ㆍ언론기관 등을 중심으로 적극 참여했고, 유림과 전ㆍ현직 하급관리들도 상민층과 함께 동참했습니다. 이 운동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많은 여성들이 각종 패물을 자발적으로 내 놓았고, 노동자ㆍ인력거꾼ㆍ기생ㆍ백정 등 각계각층이 적극 참여한 범국민적 운동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입니다.
대구시에서는 이 날을 기념하여 ‘대구시민의 날’로 지정하였습니다. 원래는 10월 8일인데 2020년 2월 21일부터 이 날로 변경하였습니다.
국채보상운동과 닮은 꼴이 ‘신국채보상운동’이라 불렸던 금모으기운동입니다. 금모으기운동은 1997년 외환위기(IMF)가 닥치자 국난극복을 위해 1998년 1월부터 시작된 범국민운동입니다. 이를 처음 제안하신 분이 이종왕 변호사였습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였던 그는 절체절명의 국난이 닥치자 화폐가치가 폭락하는 상황 속에서 전국민 금모으기운동을 통해 경제적으로는 위기에 빠진 국가를 구해내고, 정신적으로는 흐트러진 민심을 한데 모아 결집시키는 묘안을 제안하였습니다.
경산출신으로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한 대구사람인 그는, 1999년 대검 수사기획관으로 근무할 당시 이른바 '옷 로비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박주선 청와대 법무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지휘부가 받아들이지 않자 이에 맞서, 검사장 승진 0순위이던 보직을 버리고 과감하게 사표를 던진 분입니다.
맥주 한 잔 마시지 못하면서도 대검 대변인을 오래 역임하면서 최고의 대변인으로 칭송받았던 이유는 그분의 강직하면서도 진솔한 인품 덕이라는 세평이 지배적입니다. 그는 사퇴 이후에 출마하라는 정치권의 강한 권유를 뿌리쳤습니다.
그동안 필자는 수많은 검찰선배들을 만났지만 그분이 가장 선비의 풍모를 가진 검사라고 확신합니다. 안타깝게도 최근 그분이 작고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대구시민들이 국채보상운동과 금모으기운동을 시작했던 자랑스런 선배들의 빛나는 전통을 계속 이어가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