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오주한 기자] 신상진 자유한국당 신정치혁신특별위원장의 ‘총선 물갈이’ 발언을 두고 같은 당 홍문종 의원이 대한애국당행(行)을 시사한 가운데 발언 진의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신 위원장은 6월 12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친박(親朴) 학살이라는 말은 한 적이 없다”면서도 “단지 현역 의원 물갈이 폭은 과거보다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책임을 내년 21대 총선 공천에 반영할 것임을 시사했다.
한 발 물러선 모양새이지만 그는 이날에도 사실상 친박을 겨냥해 포문을 열었다. “20대 총선 당시 공천룰·규칙·규정이 있었는데 계파 간의 아주 꼴사나운 공천 전횡이 있었다”며 “원래 과반 의석을 충분히 얻을 것으로 누구나 예상했는데 120석박에 못 얻었다”고 지적했다.
신 위원장은 “국민이 그렇게 (물갈이를) 원하고 당 지지율이 바닥을 치는 상황에서 현역 의원들이 책임을 안 지면 누가 지느냐”며 “20대 현역 국회의원들에 대한 물갈이 분위기가 강하다”고 주장했다.
친박 출신으로 작년 12월 김병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서 당협위원장직을 상실한 홍문종 의원은 황교안 체제 출범 후 ‘복귀’를 노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지역을 책임지고 ‘표밭’을 일구는 역할을 하는 당협위원장직은 극히 일부 사례를 제외하고 ‘공천 입장권’ 역할을 한다.
그러나 황 대표는 취임 후인 올해 4월 21대 총선과 관련해 당내에 신정치혁신특별위원회와 산하 공천혁신소위원회를 설치하고 당협위원장 총사퇴 후 공천 방침을 내렸다. 사실상 현역 의원 대신 ‘뉴 페이스’를 대거 발탁하고 친·비박(非朴) 등 구시대 계파를 청산하겠다는 의도였다.
신정치혁신특별위 설치에 이어 신 위원장의 ‘물갈이’ 발언이 나오자 친박 출신들 사이에서는 사실상 ‘친박 학살’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홍 의원 반응은 특히 거셌다. 그는 6월 8일 서울 광화문광장 태극기집회에 참가해 대한애국당으로의 당적 변경을 시사했다. 6월 11일에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저는 한국당도 아는 이중당적자”라며 탈당을 재차 암시했다.
홍 의원은 황 대표에 대한 비난도 쏟아냈다. “(황 대표가) 굉장히 애매모호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오죽하면 말하는 것 마다 ‘황세모’라는 얘기를 하겠나”며 “5.18 때 막말했다고 우리는 징계하면서 왜 (김원봉) 서훈 얘기를 하는 그런 사람들은 더불어민주당에서 제명하라고 얘기 못하나”라고 말했다. 앞서 한국당은 ‘5.18 폄훼’ 논란에 휩싸인 이종명 의원을 제명하고 김순례 의원에게 당원권 정지 3개월, 김진태 의원에게 경고 처분을 내렸다.
‘지분’ 약한 洪, 탈당 카드로 공천 노리나
대한애국당 관계자는 본지에 “홍 의원이 탈당하고 우리 쪽으로 올 것으로 믿는다”며 “이미 홍 의원 측과 대한애국당이 접촉 중”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홍 의원 탈당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한국당 내에서 나온다. 다른 친박 출신 의원들이 거의 동조하지 않는 분위기인 가운데 ‘제1야당’을 박차고 ‘1석’ 군소정당에 입당할 경우 5선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색이 짙은 수도권(경기 의정부을)을 지역구로 둔 홍 의원은 애국당 입당 시 그나마 박근혜 전 대통령에 호의적 여론이 존재하는 대구·경북(TK)에서의 출마를 노릴 수밖에 없지만 TK 사수에 전력을 다할 한국당과 애국당 간 ‘조직력’ 차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TK 지역에 홍 의원 기반이 약하다는 점도 발목을 잡는다. 홍 의원은 경기 양주 출신이다.
이는 다른 친박 출신 의원들이 한국당 탈당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까닭이다. 김진태 의원은 6월 12일 국회의원회관 기자간담회에서 “태극기 세력도 끌어안아야 한다는 주장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방법론은 다를 수 있다”며 “우리 당에서 하실 일이 많다. (홍 의원은) 정말 신중히 판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당내 일각에서는 홍 의원이 정말로 탈당하려는 게 아니라 황 대표와 일종의 ‘빅딜’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 자신에 대한 공천 배제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에서 홍 의원이 탈당을 카드로 공천을 보장받으려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당 콘크리트 지지층인 태극기집회 참가자 등 다수 팬을 보유한 김진태 의원과 달리 당내 지분이 비교적 약한 홍 의원으로서는 ‘탈당’이 유일한 ‘공천 보장 카드’가 될 수밖에 없다.
“계파는 없다”고 선언했던 황 대표로서는 홍 의원의 애국당 입당 시 또다시 여당의 한국당에 대한 ‘계파정치 적폐’ 공세를 감당해야 한다. 20대 총선이 ‘옥새 런’ 등 계파 갈등에 따른 여론 악화로 대실패한 점을 감안하면 황 대표로서는 홍 의원 탈당은 정말로 피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계파 논란이 장기화 될 경우 유력 차기 대선주자인 황 대표 본인에게도 악재(惡材)로 작용한다.
홍 의원 탈당을 계기로 한국당에서 ‘탈당 릴레이’가 펼쳐져 애국당이 ‘친박신당’으로 변모해 한국당 의석수가 줄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의정(議政)에서는 애국당이 한국당에 협력할 여지가 크지만 21대 총선에서 ‘적’으로 만난 한국당, 애국당이 텃밭에서 혈투를 벌이는 사이 ‘TK 공략’을 노리는 범여권은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취할 수 있다.
‘구시대 청산’과 ‘당내 화합’ 어느 것도 선뜻 선택할 수 없는 황 대표는 지금 진퇴양난(進退兩難)이라는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다. 한 한국당 관계자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다”며 “정부 실정 (失政)에 주력해 여론 시선을 (정부로) 돌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