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박용근 기자]검찰이 12일 유병언(73·사망) 전 세모그룹 회장에 대해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린 가운데, 유 전 회장의 매제인 오갑렬(60) 전 체코 대사가 유 전 회장의 도피를 총괄 기획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유 전 회장 일가 비리를 수사 중인 인천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헌상 2차장검사)은 이날 오 전 대사를 유 전 회장 도피 지원 총책으로 지목하고 범인도피교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1450억원대 횡령·배임·조세포탈 혐의를 받는 유 전 회장처럼 벌금 이상의 형(刑)에 해당하는 범죄인을 은닉, 도피하게 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하지만 친족특례조항에 따라 유 전 회장의 가족이나 친척이 은닉해 준 경우에는 법적 처벌을 면할 수 있기 때문에 범인도피교사 혐의가 적용된 것이다.
검찰은 다만 같은 혐의를 받고 있는 오 전 대사의 부인이자 유 전 회장의 여동생인 유경희(56)씨에 대해서는 기소 유예 처분했다.
검찰은 오 전 대사 부부가 이재옥(49·구속기소) 헤마토센트릭라이프재단 이사장과 함께 유 전 회장의 도피를 총괄 기획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오 전 대사 부부는 지난 4월 말부터 5월10일까지 유 전 회장에게 수시로 편지를 보내 수사 상황과 여론 동향 등을 보고한 혐의를 받고 있다.
편지에는 검·경의 수사 상황과 여론 동향뿐만 아니라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의 도피지원 계획 및 신도들의 내부 동향 등도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유 전 회장은 도피 중에도 자신을 돕는 '도피 조직'을 통해 주요 측근들에 대한 검찰의 수사 상황과 자신의 범죄 혐의, 언론 동향 등을 입수할 수 있었다.
오 전 대사 부부와 이 이사장은 유 전 회장으로부터 수시로 지시 사항을 전달받아 도피처를 물색하는 등 도피 조직을 이끌었다.
검찰 관계자는“"오 전 대사와 이 이사장 중 역할 상 누가 높다고 하기는 어렵다”며 “두 사람 모두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오 전 대사를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긴 이유에 대해서는 "오 전 대사는 유 전 회장과 친인척 관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兪, 조직적 지원 등에 업고 3차례 도주
검찰에 따르면 유 전 회장과 장남 유대균(44·구속기소)씨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3일 만인 지난 4월19일 수사망을 피해 도피하려는 결정을 내렸다.
이날은 대균씨가 해외로 출국하려다 검·경 합동수사본부의 출국금지 조치 때문에 출국하지 못하고 되돌아 온 날이다.
같은 날 유 전 회장과 측근들은 금수원에 모여 향후 대응방향을 모색했다. 검찰은 이 자리에서 유 전 회장 일가가 사실상 도피를 결정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바로 다음날인 4월20일 유 전 회장 일가에 대한 수사착수를 공식 발표하고 4월23일 오전 10시 범죄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찾기 위해 유 전 회장 자택과 금수원 등 10여곳을 압수수색했다.
도피를 위해 미리 짐을 꾸려놓고 있었던 유 전 회장은 4월23일 새벽 금수원 압수수색이 실시되고 있는지를 묻는 언론사 기자의 확인전화가 걸려오자마자 곧바로 구원파 신도 '신엄마' 신명희(64·여·구속기소)씨의 언니 집으로 1차 도피했다.
1차 도피 당시 오 전 대사 부부, 구원파 신도 '김엄마' 김명숙(59·여)씨 등 측근들도 동행했다.
유 전 회장은 다음날인 4월24일 구원파 신도 한모(49·구속기소)씨 부부의 집으로 이동, 2차 도피를 감행했다. 이후 5월4일 이 이사장 등과 함께 전남 순천 송치재 휴게소 인근의 별장 '숲속의 추억'으로 3차 도피한 사실이 확인됐다.
특히 이 이사장은 '정부가 구원파를 세월호 참사의 희생양으로 삼으려한다'는 음모론을 신도들에게 유포시키는 등 유 전 회장의 도피를 정당화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울러 유 전 회장을 순천 별장으로 이동시킨 뒤 3차례에 걸쳐 별장에 들러 주요 상황을 보고하고 교회 임원 교체 등에 대해 유 전 회장으로부터 관련 내용을 지시 받아 신도들에게 이를 전달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 이사장은 지난 5월 말에는 유 전 회장의 새로운 은신처를 물색, 전남 목포 소재의 구원파 신도 자택을 섭외한 것으로 조사됐다. 유 전 회장이 순천 별장을 안전하게 빠져나왔다면 목포 지역으로 숨어들었을 가능성을 점쳐지는 대목이다.
한편 지난 5월25일 순천 별장에서 체포된 유 전 회장의 여비서 신모(33·구속기소)씨는 4월23일부터 체포 직전까지 3곳의 은신처에서 유 전 회장과 함께 지내면서 그를 근접 수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신엄마' 신씨와 한씨 등 구원파 신도 5명은 유 전 회장이 3차례에 걸쳐 도피처를 옮길 당시 은신처를 마련해 주는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신씨는 유 전 회장의 은신처로 사용할 경기 안성 소재 단독주택을 마련하는 자금을 제공했으며, 한씨는 유 전 회장의 운전기사 양회정(55)씨와 함께 순천 별장을 은신처로 개조한 것으로 조사됐다.
◆양회정, ‘김엄마’ 추가 수사…권총 5정 주목
검찰은 유 전 회장의 운전기사, 은신처 지원, 수사 동향 전달 등 유 전 회장의 도피를 도운 혐의를 받고 있는 운전기사 양씨에 대해서도 조만간 사법처리 방향을 결정할 방침이다.
양씨는 차명 부동산 등 유 전 회장 일가의 차명 재산을 대신 관리해 준 혐의도 받고 있다.
또한 양씨와 함께 유 전 회장의 도피를 적극적으로 도운 혐의를 받고 있는 '김엄마' 김씨에 대해서도 차명 재산 관리 혐의 등을 보강 수사한 뒤 재판에 넘길 방침이다.
검찰은 양씨와 김씨에 대한 조사 내용을 검토한 뒤 범인도피 혐의 외에 추가 혐의가 드러날 경우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김씨 친척 자택에서 권총 5정과 현금 15억원이 추가로 발견되면서 이에 대한 향후 조사 결과가 주목된다.
앞서 검찰은 최근 김씨 친척 A씨의 수도권 소재 자택을 압수수색해 권총 5정과 현금 15억원을 확보했다.
발견된 5정은 가스총 2정, 권총 2정, 공기권총 1정이다. 발견 당시 실탄은 장전돼있지 않았지만 실탄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 구슬 형태의 탄환과 납덩어리 수십 개가 함께 발견됐다고 검찰은 전했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가 권총과 현금 가방 등에 대해 직접 실토해 임의제출 형식으로 현장에서 압수했다”고 말했다.
현금 15억원과 권총 5정 등이 발견된 2, 3, 6, 7, 8번 띠지가 붙어 있는 가방 5개에 대해 김씨는 “유 전 회장이 순천 별장으로 내려가기 전 가방을 맡겼으며 이를 열어보지도 않고 친척집에 맡겨둔 것”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당시 가방이 밀봉 상태였으며 실제로 김씨가 내용물을 확인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A씨 집에서 발견된 5개의 가방과 지난 5월27일 순천 별장에서 발견한 4, 5번 가방 외에 나머지 가방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검찰은 지난 5월27일 유 전 회장의 마지막 은신처로 추정되는 전남 순천 송치재 인근 별장 '숲속의 추억'에서 4번, 5번이라고 적힌 띠지와 함께 현금 8억3000만원과 미화 16만달러 등이 들어있는 가방 2개를 발견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2~8번 띠지가 붙어 있는 가방 7개가 발견된 만큼 '1번' 가방이 남아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울러 A씨 자택에서 발견된 권총 5정의 진위 여부, 종류, 입수 경위 등도 검찰이 풀어야 할 과제로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