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수정 기자] 서울에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지난 1월17일 출근길. 용산역 인근 버스를 기다리던 시민들은 초미세먼지를 염려한 듯 대부분 검은색과 흰색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버스 창문에 묻어 있는 누런 먼지가 섞인 빗방울 흔적들을 본 시민들은 버스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한 채 이동했다.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이 무료로 운행됐지만 이전보다 이용객이 많이 늘지는 않은 것으로 보였다.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김모씨(32)는 인근 건물 로비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주변에는 김씨와 같은 사람들이 3~4명 더 있었다. 큰 추위 없는 포근한 날씨지만 건물에 들어와 잠시라도 미세먼지를 피하려는 듯했다. 김씨는 “버스가 오려면 10분은 기다려야 한다”며 “밖에서 미세먼지에 차량 매연까지 들이마시기 싫어서 실내에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토로했다.
황모씨(28)는 두꺼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전날 미세먼지로 눈코가 시큼한 ‘매운맛’을 본 후 급히 구매했다. 황씨는 “약국에서 미세먼지를 잘 막아준다는 마스크로 달라고 해서 3000원을 주고 구입했다”며 “1000원짜리로 살까도 했지만 기관지가 좋지 않아 특별히 ‘전용 마스크’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에 시민들은 밖에 나가기조차 부담스러워했다. 서울 강남구에서 일하는 김모씨(32)는 “오늘 커피숍에서 외부 미팅이 있는데 미세먼지가 너무 심해 취소했다”며 “10분만 걸어도 거리의 먼지를 내가 다 마시는 기분이 든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마스크를 써도 매일 출·퇴근이 부담스럽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서울시 비상저감조치 글쎄?
서울 등 수도권이 미세먼지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고농도 초미세먼지가 지속됨에 따라 서울시는 시민참여형 차량 2부제와 출퇴근길 대중교통 무료운행을 골자로 하는 서울형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를 가동했다.
서울형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는 당일(새벽 0시~오후 4시) 초미세먼지 평균농도가 50㎍/㎥를 초과하고 이날 오후 5시 기준 다음날 예보가 나쁨(50㎍/㎥)이상일 때 발령된다. 비상저감조치 발령여부는 당일 오후 5시에 결정하고 5시15분을 기해 발표·전파된다. 적용시간은 다음날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다. 역대 첫번째 서울형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는 14일 내려졌다. 지난해 7월 이 제도를 시행한 이후 처음으로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됐다.
하지만 첫날부터 실효성 논란 등 후폭풍이 거셌다. 가장 큰 문제는 변화무쌍한 날씨였다. 15일 풍향이 바뀌면서 미세먼지가 한반도 남부로 이동한데다가 비까지 내리면서 미세먼지가 보통을 유지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비상저감조치가 해제된 오후 9시 이후 미세먼지 농도가 갑자기 치솟으면서 정작 16일에는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되지 않았다.
시민참여형 차량 2부제를 위한 일종의 유인책이었던 출퇴근시간 대중교통 무료운행은 포퓰리즘 논란에 휘말렸다. 수도권 미세먼지 대책 논의 과정에서 대중교통 무료운행에 반대해온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포퓰리즘적이고 미봉적이 아닌 근본적인 미세먼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박원순 서울시장을 몰아부쳤다. 여기에 도로 교통량 감소폭과 대중교통 승객 증가폭이 미미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서울시는 더 큰 비판에 직면했다.
서울 미세먼지대책 여전히 미흡
서울시가 시행하고 있는 미세먼지 대책이 미흡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영국 런던이 시행하고 있는 미세먼지 관련정책을 배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황인창 서울연구원 부연구위원이 최근 발표한 ‘서울시 미세먼지 관리정책 진단과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여러 대책에도 서울시의 미세먼지 농도는 여전히 전 세계 주요 도시 중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2012년 이후에는 초미세먼지 농도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시가 추진하고 있는 비상저감조치도 도마에 올랐다. 시의 차량 2부제와 대중교통이용 요금 지원은 오히려 시민들이 고농도의 미세먼지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하철은 평상시 미세먼지 농도가 주변 대기보다 높고 버스 승강장과 도로변의 미세먼지 농도 역시 주변 대기보다 높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시 미세먼지 배출량에서 비중이 커지고 있는 비도로이동오염원, 건물, 비산먼지에 대한 대응이 부족한 점은 지적할 만한 대목이라고 서울연구원은 밝혔다. 서울연구원은 앞으로는 건설장비, 주거용시설, 비산먼지 영역에 투자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비산먼지를 내뿜는 재건축에 대한 대책도 수립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서울연구원은 그러면서 영국 런던의 미세먼지 대책을 참고대상으로 제시했다. 영국은 자치구별로 미세먼지 고농도지역을 중심으로 대기질 관리지역을 설정하고 관리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이처럼 서울시도 도로주변과 배출시설 주변지역을 점검해 생활주변 미세먼지 노출위험지역을 선정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런던시는 평소 실측을 통해 공기 좋은 길 정보를 구축하고 이를 시민에게 제공하고 있다. 실제로 런던에서는 도보로 25분 걸리는 거리를 2가지 경로로 이동했을 경우 대기오염 누적 노출 정도를 비교한 결과 두 경로의 배출농도가 60% 정도 차이를 보였다. 서울시는 이 사례를 참고해 마을 또는 단위 지역별로 미세먼지 노출지도를 작성하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등을 활용해 시민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서울연구원은 말했다.
런던은 또 미세먼지 노출을 줄이기 위해 학교 등 시설물 주변에 녹색 방지막을 설치하고 있다. 런던 도로 주변 학교에 녹색방지막을 설치하고 1년 동안 측정한 결과 녹색방지막으로 인해 학교 안 운동장의 미세먼지 농도가 학교 밖보다 평균 30% 내외로 더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런던시는 '대기질 펀드'를 마련해 시민과 기업, 자치구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있다. 런던시는 2013년부터 2016년까지 4년간 600만 파운드 규모 대기질 펀드를 조성했다.
이렇게 마련된 자금으로 런던시는 학교 교육사업, 미세먼지 녹색방지막 사업, 공회전 시민감시단 운영, 이동식 측정기를 활용한 시민들의 자발적 대기질 측정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서울연구원은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