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민재 기자] 최순실 사태로 인해 국정이 혼란한 틈을 타 11월14일 한일 간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이 가서명됐다. 이날 가서명은 10월27일 GSOMIA 논의를 재개한다고 공식 발표한 뒤 약 18일만이다. 특히 온 국민의 관심이 최순실 사태에 쏠려 있는 틈을 타 적절한 의견수렴 절차 없이 속전 속결로 진행돼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한일정보협정, 지금 이 시점에 꼭 필요한가?
GSOMIA는 특정 국가들끼리 군사 기밀을 공유할 수 있게 하려고 맺는 협정이다. 협정에는 정보의 교환방법과 교환된 정보의 보호방법 등의 내용이 담기게 된 다. 한국은 이미 32개 국가와 협정을 맺거나 약정을 통해 군사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그간 한국과 일본은 직접적인 정보 공유 없이 미국을 통해 상호간 군사 기밀을 공유해 왔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11월1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GSOMIA는) 길게 보면 27년 된 사안이고 이번 4, 5차 핵실험에 따라 더이상 (체결을) 미루기 어려워졌다고 판단했다”며 “북한의 핵 위협이 가속화되기 때문에 지난 정부가 추진한 협의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는 정부간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 내부에서는 군사기술적인 측면을 주로 보는데 반해, 국민 일각에서는 한일간 역사와 관련된 현안이나 일본 우익세력의 행동을 비춰볼 때 보다 큰 틀에서 우려를 표명한 것 같다”며 “그러나 이것은 정보보호에 대한 하나의 절차이자 정보 관리방법을 규정하는 협정”이라고 강조했다. 윤 장관은 “북핵의 위협성을 알면 알수록 이 협정을 체결할 때가 됐다는 것에 대해서는 외교부나 다른 부처의 장관이나 이견이 없을 것”이라며 “북핵 위협이 고조된 시점에서 (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국가 안보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반면 국민적 감정은 차치하더라도, 그 실효성 부분에서 우리가 손해를 보는 불공정한 협정이라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특히 정체된 한일간 신뢰 때문에 긴밀한 협력을 기대하기에는 무리이며, 국방부의 예상과 달리 우리가 일본에서 받을 정보보다 우리의 신뢰도 높은 대북 정보를 일본에 더 많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우리의 국익보다는 일본의 국익에 더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체결 가능성은?
가서명 이후 양국은 협정문 체결을 위한 절차에 돌입한다. 한국은 법제처의 정식 심사 → 차관회의 →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부터는 외교부가 주관한다. 외교부는 이미 지난 11월9일 법제처에 사전심사를 의뢰한 바 있으며, 같은 달 17일 차관회의를 통과해 정부승인을 앞두고 있다.
한일 양국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6월에도 GSOMIA 체결 직전까지 갔지만, 국내에서 밀실협상 논란이 불거져 막판에 무산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가서명도 “밀실추진이 아니냐”는 비난이 나오고 있어 무산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러나 협정 체결에 국무회의 의결이라는 마지막 절차만을 남겨두고 있고,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여론에는 개의치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실제 체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거세지는 후폭풍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3당은 11월15일 한민구 국방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11월 말 제출하기로 했다. 김관영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야3당 회동 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가서명과 관련해서 야3당은 국무위원 한민구 해임건의안을 야3당 공동으로 제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11월15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우리가 (한 장관) 해임 또는 탄핵안을 추진하는 이유는 특정 장관을 물러나게 하겠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군사정보협정을 중단하란 취지”라며 “국민과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밀어붙인다면 정보보호협정 그 자체 문제를 넘어 국민적 저항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점을 경고한다”고 밝혔다.
한편 통일·외교·안보 전문가들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 등 통일·외교·안보 전문가 42명은 11월1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절차를 중단하고 모든 외치에 손을 떼라”고 압박했다.
이들은 시국선언문에서 “박 대통령은 내치든 외치든 국정을 이끌 능력과 정당성을 상실했으므로 마지막 남은 국민에 대한 의무로서 퇴진해야 마땅하다”면서 “나라의 혼란한 틈을 타서 나라의 미래가 걸린 한일 정보보호협정과도 같은 중요한 조약이나 협약을 추진하려는 모든 시도를 멈추고 다음 정부로 넘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더불어 시민사회 각계 인사 225명도 이날 시국선언문을 내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추진 중단을 촉구했다. 이들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온 국민이 충격과 분노에 휩싸인 상황에서 강행되고 있다”며 “국민이 부여한 헌법상의 책무를 스스로 부정하고 최소한의 신뢰마저 저버린 박근혜 정부는 이미 한일 군사정보보호 협정을 추진할 자격을 상실했다”며 “역설적으로 이번 협정 추진은 박 대통령이 내치 뿐만 아니라 외치에서도 손을 떼야 한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 10명 중 6명 한일정보보호협정 추진 반대
우리 정부가 일본과 군사정보를 공유하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추진하고 있는 것에 대한 반대 의견이 국민 10명 중 6명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갤럽은 11월18일 지난 15∼17일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이번 협정 체결 추진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59%는 ‘일본과 군사 협력을 강화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한국갤럽이 이번 군사정보보호협정 등 한일 군사 협력 추진에 대한 두 가지 주장을 제시하고 어느쪽에 더 동의하는지 물은 결과 우리 국민 31%는 ‘안보에 일본의 정보력이 도움 될 것이므로 협정 체결해야 한다’고 봤으나, 59%는 ‘과거사 반성 없는 일본과 군사적으로 협력을 강화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었으며 10%는 의견을 유보했다. 지지정당별로 보면 새누리당 지지층 55%가 ‘협정 체결’ 쪽에 동의했고 야3당 지지층의 약 70%는 ‘일본과 군사 협력을 강화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연령별로는 20~40대의 약 70%가 양국 군사 협력 강화에 반대했고, 50대 이상은 두 주장에 대한 동의가 엇비슷하게 갈렸다. 한편 이번 여론조사는 휴대전화 RDD 표본 프레임에서 무작위 추출 방식으로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7명, 표본오차 ±3.1%포인트(95% 신뢰수준), 응답률 24%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