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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ㆍ전자ㆍ통신ㆍ중화학

문화지평‧서울시 건축문화 활성화사업 <6> 천도교 중앙대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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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로 보는 민족 성금으로 지은 아르누보 양식 서울3대 건축물

 

서울시비영리민간단체 문화지평(대표 유성호)이 주관하고 서울시 건축문화과 후원으로 진행한 ‘2020서울시 건축문화 활성화사업’ 일환인 ‘서울의 종단별 첫 종교건축과물과 주변 근대 건축물 답사 및 아카이빙’이 30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번 사업은 천도교 중앙대교당을 비롯해 총 9곳, 11개 종교 건축물에 대한 3D 스캔 데이터를 통해 실감모형을 만들었다. 주요 종교건축물의 3D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고해상도 카메라와 드론으로 촬영 시 컬러체커를 이용, 실감모형 적용을 위한 정보를 얻었다. 이를 후작업에서 노이즈를 제거하고 컬러 값을 일정하게 하는 등 보정을 통해 매쉬를 생성하고 실감모형을 완성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3D 스캔작업은 전문업체인 테라픽스 정성혁 대표가 맡았다. <편집자주>

 

[ 시사뉴스 김정기 기자 ] 천도교 중앙대교당(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6호)은 일본인 나카무라 요시헤이 설계와 중국인 장시영이 시공해 1921년에 건립됐다. 일본인에게 설계를 맡긴 것은 당시 기술 있는 조선인 건축가가 없고 조선총독부 산하의 건축가를 고용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결정한 고육지책이었다. 그래서 ‘조선의 근대성을 실현하는 역량이 미흡한 현실을 역설적으로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도 있다.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우리나라 천도교의 총본산이다. 건축사적 의미도 크지만 민족사적인 측면에서 의미가 큰 건축물이다. 일제 식민통치권력은 천도교를 우리 민족의 민족종교로 인식했기 때문에 종교가 아닌 ‘유사종교’로 분류해 통제와 규제를 가했다. 그래서 천도교는 식민통치 말기로 갈수록 교세가 쇠퇴하는 비운을 맞았고 천도교 종교건축도 상당한 제약을 받았다.

 

천도교는 교세 확장에 따라 손병희는 종로구 송현동에 있던 천도교 본부를 이전하고 교당을 건립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조선총독부는 천도교의 건축계획을 초기에는 거부했다. 천도교측은 400평 규모의 대교당을 계획하고 1918년 건축 허가를 신청했으나 조선총독부는 ‘신축교당이 지나치게 크다’, ‘성금모금을 중지하고 받은 성금은 돌려줘라’, ‘중앙에 기둥이 없어 위험하다’ 등의 이유로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결국 절반으로 규모를 축소하여 허가를 받았다. 할 수 없이 절반 규모로 줄여서 허가를 받아 1919년 봄에 착공했지만 3·1운동 여파와 조선총독부의 방해 등 이유로 건립이 늦어져 1921년에야 완공됐다.

 

 

기초는 화강석으로 쌓았고 벽체는 붉은 벽돌, 지붕은 철근앵글로 지어 기둥을 쓰지 않아도 되게 했다. 화강석은 동대문구 창신동에서 채석한 것이다. 총 건평은 927.87m²(280.68평), 4층으로 후면에 강당을 연결한 형태의 건물이다. 약 800명에서 100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다. 30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다고 알려지기도 했지만 이는 바닥에 앉는 형태였기 때문에 편차가 큰 것으로 해석된다. 1930년대 들어서는 바닥에 일본식 다다미를 시공했고 1940년대에는 나무의자를 설치했다. 지금은 접이식 의자로 이동이 가능하도록 했다.

 

건축양식은 2층 사무실을 탑 모양의 바로크 풍으로 하는 등 복합적인 아르누보 형식을 띠고 있다. 공사비 30만원은 교인 1호당 10원씩 성금을 모은 것이다. 공사기간 중 시공자인 장시영이 구속되면서 벽돌수급이 어려워지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

 

총 소요된 건축비는 22만원, 사무실까지 합치면 27만 원이다. 나머지는 3·1운동자금으로 사용됐다. 보성사 이종일 사장이 이승훈에게 5000원을 받아 일제 고등계형사 신승희에게 준 자금 출처도 건축비서 남은 금액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당시 명동성당(1898), 조선총독부(1926)와 함께 서울의 3대 건축물로 손꼽혔다. 순수 우리 민족의 성금만으로 지은 건물로서는 가장 규모가 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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