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수 기자] 여야가 25일 내년도 예산안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인 누리과정 예산에 대해 ‘우회지원’을 하기로 큰 틀에서 합의를 이뤄냈다. 이로써 대략 한 달 간 이어져왔던 누리과정 예산 편성 혼란이 어느 정도 정리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아직도 시한폭탄은 안고 있다. 누리과정 예산을 국가가 모두 부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방교육청에서 어떤 식으로 나올 것인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또한 누리과정 예산 논란을 통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힘겨루기가 표출된 것도 박근혜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숨어져 있던 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누리과정에 대한 모든 것을 집중 조명해봤다.
당시 획기적 공약… 멈추지 않는 시한폭탄
여야가 누리과정 예산을 ‘우회지원’하기로 하면서 새해 예산안 심사 과정이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누리과정예산을 시·도교육청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부담하고 부족분은 지방채를 발행해 충당하되, 지방채 이자를 정부가 보전해주고 누리과정예산 편성으로 인한 지방재정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교육부 예산을 증액키로 한 것이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은 이날 국회에서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 원내수석부대표가 참석한 ‘3+3’ 회동을 하고 이같이 의견을 모았다.
3~5세에게 무상보육을 실시한다는 누리과정 정책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당시 내놓은 대표적인 공약이었다. 박 대통령은 대선 당시 ‘중산층 70% 재건 프로젝트’ 공약을 내걸었다. 그 중 하나로 ‘확실한 국가책임 보육, 만5세까지 국가 무상보육 및 무상유아교육’을 내세웠다. ‘0~2세 영아 보육료 국가 전액 지원 및 양육수당 증액’과 ‘3~5세 누리과정 지원비용 증액’이 골자다. 즉, 국가에서 3~5세 자녀의 보육을 담당하겠다는 것이다.
당시로서는 저출산 시대에 획기적인 공약이 아닐 수 없었다. 다만 이 공약을 뒷받침해줄 재원마련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었다. 더욱이 박 대통령은 당시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한 자신감을 표출했다. 이로 인해 ‘누리과정’은 당연히 실현되는 것으로 유권자들은 판단했다.
생색은 중앙정부가, 비용은 지방교육청이?
그런데 최근 정부가 시도교육청에게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시도 교육청은 누리과정 예산이 부족하다고 주장했고, 이에 중앙정부는 “무상급식에 들어가는 돈을 돌려 누리과정에 사용하라”는 입장을 표출했다. 그러자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아예 무상급식 예산을 지원할 수 없다고 주장했고, 이에 따라 이 문제가 중앙 정치권에게 퍼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데 그 공약을 실현시키는 예산은 지방정부가 충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지방정부가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중앙정부가 내놓은 공약을 왜 지방정부가 그 비용을 충당해야 하는 것이냐는 것이다. 생색은 중앙정부가 내고, 그 비용은 지방정부가 담당해야 하는 이 현실이 황당하다는 것이다.
이에 결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떠넘기기 논란이 발생한 것이다. 지방정부가 반발을 하면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힘겨루기가 이뤄지고 있는 모습이다. 중앙정부는 어떻게 하든지 지방정부에게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떠넘기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면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에게 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결국 돈 들어올 구석은 많지 않은데 돈 나갈 구석이 많아지면서 ‘공약 실현’에 꼼수(?)를 부리기 시작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문제는 지방정부가 이런 꼼수(?)에 동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생색은 중앙정부가 내면서 왜 지방정부가 그 비용을 부담하느냐는 것이다. 때문에 누리과정은 파행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예산 편성 놓고 불협화음
지난 20일 국회는 웃지못할 일이 발생했다.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놓고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날 황우여 교육부장관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당 간사인 신성범 의원과 야당 간사인 김태년 의원이 의원회관에서 만나 누리과정 예산 문제를 논의, 합의를 했는데 새누리당이 번복한 것이다.
이 과정 속에서 누리과정을 놓고 새누리당 내에 분열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와 최경환 경제부총리 모두 친박 핵심 인사들이다. 이 두 사람이 한나라당 시절부터 서로 견제하는 사이였다는 것은 정치권 인사들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때문에 이번 분란은 새삼스러운 것이 못된다. 하지만 두 사람이 이처럼 불협화음을 보인다는 것은 결국 친박의 분열을 의미한다.
누리과정 예산 편성은 증세 논란으로도 이어졌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법인세 인상 등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간접세보다는 직접세를 인상시켜야 복지를 실현시킬 수 있다면서 증세 논란에 불을 지폈다. 물론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증세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증세 없는 복지 가능한가?
아울러 재원마련 없는 보편적 복지는 결국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으로 복지의 패러다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미 사회 곳곳에서는 보편적 복지에 대한 깊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그 논의에 불을 지핀 것은 바로 누리과정 예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선별적 복지를 들고 나오면서 결국 복지 패러다임 논란을 새누리당이 또 다시 부추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혼란을 빚은 정부와 새누리당이 최소한 사과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이 조기 레임덕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도 내놓고 있다. 지방정부가 대놓고 파업을 할 경우 박 대통령에게 상당히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지방정부는 집단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앙정부의 요구를 더 이상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지방정부도 선출직이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누리과정 정책이 차기 대권 판도까지 변화를 줄 가능성이 높다. 이미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를 놓고 누가 어떤 내용을 갖고 어떤 이슈 주도권을 쥐느냐의 신경전이 시작됐다. 불과 얼마 전까지 보편적 복지가 대세적인 상황이었고, 재원마련 등은 아예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이제 누리과정 파동을 거치면서 보편적 복지로 갈 것이냐 선별적 복지로 갈 것이냐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됐고, 재원마련 등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을 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