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조종림 기자] "1987년 발표한 정규 1집에 '안개 도시'라는 곡이 있습니다. 당시 재미교포 밴드로 나왔을 때죠. 김포공항에 내렸는데 모든 게 뿌옇더라고요. 사람들 옷 색부터 표정, 공기까지요. 28년이 지났습니다. 로커들의 하늘은 여전히 안개가 걷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희망을 품고 갑니다."(김준원·보컬)
28년이 지났지만, 로커들에게는 여전히 흐린 하늘이다. 헤비한 장르의 록을 선보이는 밴드들의 하늘은 더 그렇다. 시간 대부분을 지하 라이브 클럽에서 보내는 그들에게 '언더그라운드'는 비유가 아니라 현실이다. 밴드 'H2O'는 그럼에도 '그러나'라고 외친다.
"누가 들어주든 안 들어주든 꾸준히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거죠. 밴드 음악이 정체됐고 표류하는데 우리 음악을 통해 우리가 건재하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김영진·베이스)
H2O가 정규 6집 '스틸 포기…벗(Still foggy…but)'을 냈다. 1986년 싱글 '멀리서 본 지구'로 데뷔해 '시나위' '백두산' 등과 함께 한국 록의 전성기를 끌었던 '형님 밴드'의 귀환이다.
"그나마 상황이 많이 좋아졌어요. 2004년 4집을 냈을 때는 베테랑 밴드 음반에 별 관심 없었거든요. 그 정도로 음악 시장이 아이돌 위주로 돌아가고 있었어요. 저희는 그동안 계속 맴돌고 있었어요. 틈나는 대로 곡을 만들었고 그 결과물이 오랜만에 6집 정규 앨범이라는 형태로 나왔습니다."(김준원)
9년의 공백을 깨고 발표한 EP 앨범을 "언제 또 앨범을 낼지 몰라서" 정규 5집으로 명명한 덕에 '스틸 포기…벗'은 정규 6집이 됐다. 5집 앨범과 6집 앨범을 한데 묶어 2 CD로 구성됐다. 6집 앨범에는 네 곡의 신곡과 두 곡의 연주곡이 담겼다.
"작업하는 몇 달 동안,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있었어요. 나쁜 일이 좀 더 많았겠죠. 배가 가라앉은 일도 있었고요. 다들 같은 아픔 느끼고 겪는 와중에 발라드 넘버가 자연스럽게 탄생하게 됐어요."(타미김·기타)
타이틀곡은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며 만든 발라드곡 '별'이다. 앨범 발매와 함께 공개된 뮤직비디오 조회 수가 1만 건을 넘어서는 등 "오버그라운드와 언더그라운드 사이에 있는 밴드로서는 좋은 반응"이다.
모호한 포지션을 말하지만, H2O는 당시 드물게 '음반사에서 앨범을 내주는 록밴드'였다. 실력과 상품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처음 서울에 왔을 때 멤버 3명이 재미교포였어요. 그때 지향한 건 아이돌스타죠. 화장하고 머리를 세운 게 'HOT'가 처음이 아니었던 셈이죠. 2집 때부터는 마인드가 달라져서 화장을 벗고 평상복을 입고 밴드를 했어요. 그게 이어지고 있는 거죠."(김준원)
달라진 자세는 평론가들이 꼽은 '대중음악 100대 명반' 20위에 선정된 정규 3집 '오늘 나는'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재미있지 않은, 진심이 담기지 않은 음악을 해서 록이 외면받는다고 생각해요. 대중이 록을 즐기지 않는 건 우리가 잘하지 못해서 그런 겁니다. 진정성을 담아, 거창하지는 않지만, 생활 속에서 묻어나는 음악, 한국 사람들이 들어도 낯설지 않은 음악을 할 생각입니다."(장혁·드럼)
3집 이후 4집을 내는데 11년여의 세월, 다시 5집을 내는데 9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그런 면에서 5집 이후 1년 7개월 만에 발표된 6집은 반갑다. 실력파 '형님 밴드'의 음악을 자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세상을 떠난 신해철을 생각하면 마음이 한 좋아요. 그는 장기간 록 밴드를 끌어온 친구예요. 신해철이 그렇게 지켜온 거처럼 우리도 지켜가고 싶어요. 신해철은 훌륭한 뮤지션이고, 우리도 같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