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임택 기자] "한국경제 상황은 고장난 자동차와 같다. 엔진이 덜덜거리는데 도로에서 차가 멈춰서면 손쓸 방도가 없다. 지금 당장 수리를 맡기거나 새 차로 갈아타야 한다." 우리나라의 지속적인 잠재성장률 하락은 한국경제가 성장을 멈추고 있다는 증거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지난 10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경제를 '고장난 자동차'에 비유하며 "4가지 경고음'을 거론했다.
권 원장은 첫번째 경고음으로 '잠재성장률 하락의 장기화, 고착화 징후'를 들었다.
그에 따르면 현재 추세대로라면 지난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조만간 1%대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게다가 이러한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되고 있는 점을 권 원장은 경고했다. 권 원장은 지난해 2분기와 3분기를 제외하면 2011년부터 12분기 가량 전분기 대비 0% 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전망은 더 암울하다. OECD는 한국이 OECD 국가 중 잠재성장률 하락 속도가 가장 빠른 편이며, 2038년에는 잠재성장률이 0% 대로 추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잠재성장률 저하의 원인으로 권 원장은 "인적자원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점을 들었다. 투입요소별 잠재성장 기여도를 보면, 노동투입의 기여도(10년 단위로 측정)가 점점 낮아지고 있는데 이마저 2011년 이후부터는 마이너스로 돌아설 전망이다.
우리나라 전체 실업률 대비 청년실업률 비율도 지난해 2.58배로 OECD 평균 2.3배보다 높다. 특히 구직포기청년실업자인 '니트족(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이 청년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6%로 OECD 33개국 중 5위다
두 번째 경고음으로는 '중국 리스크 징후'를 지적했다.
그동안 중국은 성장 목표치를 실제 성장률보다 낮게 잡는 경향을 보여 왔다. 하지만 최근 중국정부의 미니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성장률이 2분기 7.5%에서 3분기 7.3%로 하락하면서 올해는 성장목표에 미달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권 원장은 "중국정부의 경기부양 능력이 한계에 도달했을 수 있다"면서 "큰 우려는 사회주의 정부가 시장경제를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이 진행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같은 시스템 리스크를 중국경제의 경착륙이 우려되는 징후로 분석하면서 "조만간 현실화 될지 모르는 중국경제 위험상황을 예의주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 원장은 '엔저와 일본기업의 역습, 중국과의 기술격차 축소'를 세번째 경고음으로 들었다.
그는 "상대적으로 부가가치 있는 산업은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기업에 당하고, 노동집약적 산업은 중국에 밀리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권 원장은 우리와 경합하는 수출시장에서는 가격경쟁력을 회복한 일본기업의 역습이, 산업경쟁력에 있어서는 최근 중국기업의 추격이 화두가 된 상황이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과의 기술격차는 여전히 10%p 이상 벌어져 있고, 중국과는 4년전 17.8%p 차이에서 12.5%p로 격차가 좁혀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권 원장은 '세계 최하위권 노사협력'이 경고음이라고 주장했다.
국가경쟁력보고서의 노사협력 세계 순위가 2008년 95위에서 2009년에 131위로 떨어진 후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안 보인다는 점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그는 "노사가 서로 손발이 안맞는 산업현장이 국가 경쟁력 순위를 떨어트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권 원장은 노사관계를 가늠할 척도 중 하나인 노사협상 기간만 단축해도 영업이익을 높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경연 연구결과에 따르면, 노사협상기간이 4일 단축되면 해당 기업의 매출영업이익률이 2%에서 최대 4%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체교섭 교섭 빈도수만 두고 일본과 비교해보면, 일본은 전체 사업장 기준 약 49.6%가 1회에서 4회 정도 교섭을 진행하는데 반해, 한국은 70.5%가 10회 이상 진행된다.
권 원장은 "임금· 단체협약 유효기간이 1년이어서 임단협에 드는 기회비용이 매년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위기상황을 타파할 해법으로는 수도권 규제, 대기업 규제, 과도한 환경규제 등 기업의 발목을 잡는 핵심규제에 대한 재검토를 제시했다.
그는 "아베노믹스가 실패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규제개혁과 성장전략'을 골자로 하는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은 벤치마킹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조업 위기에 대한 특단의 조치도 주문했다. 정부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산업경쟁력강화법(일명 '원샷법')'을 한시적으로라도 도입하자는 것이다. 샌드위치 신세가 된 제조업을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란 주장이다.
권 원장은 "2000년대에 일본도 산업재생법을 통해 수많은 사업재편이 일어나고 제조업이 활력을 찾았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