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정영창 기자]경기 안양 A씨(20·여) 실종 사건의 살해 피의자인 동거남 이모(35)씨는 범행 후 한 달 가까이 경찰수사에 혼선을 주는 등 완전범죄를 노리며 용의주도했다.
경찰은 군 장교 출신인 이씨의 주도면밀한 알리바이에 실종 신고 한 달 가까이 애를 먹었다.
15일 안양동안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2월17일 오전 9시21분께 숨진 A씨 언니로부터 "안양에 사는 여동생이 15일부터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실종 신고가 접수됐다.
A씨는 지난해 10월 교제를 시작한 피의자 이씨와 지난 1월부터 이씨 거주지인 안양시 동안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동거해왔다.
피의자 이씨는 실종 신고 나흘 전인 2월13일 오후 5시께 A씨와 다툰 후 A씨를 목 졸라 살해했다. A씨는 숨지기 전날인 12일 자정(0시15분께) 이씨 오피스텔로 들어간 모습이 CC(폐쇄회로)TV를 통해 확인됐다.
이후 이씨가 14일 오전 1시25분께 대형 종이박스를 카트에 싣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1층으로 나가는 장면을 확인했다.
종이박스는 가로세로 약 60~70㎝ 정도로 박스 중간에는 테이프가 감겨 있었다.
경찰은 또 이씨가 렌터카에 박스를 싣고 광명시로 이동한 정황도 포착했다.
경찰은 A씨가 실종 신고 이후 나흘(20일)이 지나도록 휴대전화 통화나 신용카드사용 등 '생활반응(살아 있다는 증거)' 없었던 점, 동거남 이씨의 의심행동 등에 주목하고 그를 용의 선상에 올렸다.
하지만 동거남 이씨는 경찰의 의심을 따돌리기 위해 이미 치밀한 계획을 세운 뒤였다.
이씨는 A씨를 살해한 이틀 후인 지난달 15일 A씨 휴대전화로 A씨 언니에게 "홍대로 간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등 범행 후 A씨의 단순 가출로 치밀하게 위장했다.
이씨는 또 경찰에 다른 곳에 있던 자신의 사무실 짐을 옮기면서 "(박스는) 안 쓰는 전선을 모아 버린 것"이라고 했고, "12일 여자친구(A씨)와 언쟁을 했는데 짐을 싸서 나가더니 이후에는 보이지 않았다"고 일관되게 둘러댔다.
이씨는 IT 관련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개인 사무실을 차리고 컴퓨터 관련 사업을 해왔다.
이씨는 2월24일 경찰의 자택 압수수색에도 태연하게 응했다.
경찰 관계자는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하고 집 안을 둘러보겠다는 말에 '영장 없이도 볼 수 있습니다'라면서 태연하게 문을 열어줬다. 범행을 한 사람이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침착하고, 수사에 적극 협조하는 모습을 보였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경찰은 이씨 오피스텔과 렌터카에서 혈흔 반응 등 범행을 의심할만한 결정적인 단서를 찾지 못했다.
이씨는 새벽이나 밤늦은 경찰의 전화에도 적극적으로 응대했다.
그는 특히 오피스텔 CCTV에 찍힌 다른 여성을 A씨라고 주장하는 등 경찰수사에 혼선을 줬다. 경찰은 CCTV에 찍힌 8명 가운데 이씨가 지목하거나, A씨와 인상착의가 흡사한 여성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 시간을 허비했다.
경찰은 이씨를 2월26일, 28일 두 차례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 한 뒤 풀어줬다.
결국 경찰은 알리바이를 깰 결정적인 증거 확보를 위해 우회적으로 수사를 보강했다.
이씨가 진술한 내용 가운데 ▲A씨가 다투고 나간 날짜를 12일에서 13일로 번복한 점 ▲A씨가 나간 후 친구와 당구장에 들렀다는 데 혼자 간 점 ▲사무실 이사에 필요하지 않은 시멘트 등을 산 점 등 범행 정황을 확보했다.
하지만, 이씨는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29일 잠적했다.
이씨는 결국 도피 보름만인 14일 오후 9시10분께 대구 중구 반월당의 한 찜질방에서 은신하던 중 대구 경찰에 붙잡혀 안양동안경찰서로 압송됐다.
압송된 이씨는 경찰에서 "A씨와 말다툼 후 목 졸라 살해했다. 시신은 광명의 한 공터에 암매장했다"고 털어놨다.
경찰은 이날 오전 6시께 광명시의 한 외곽 마을 공터에서 A씨가 숨져 암매장된 것을 발견했다.
A씨의 시신은 땅속 약 50㎝ 정도의 깊이에 암매장됐으며, 위에는 시멘트 성분으로 뒤덮여 있었다.
A씨는 발견 당시 옷을 모두 입은 상태로 오른쪽으로 웅크리고 있었다.
경찰은 A씨의 시신을 수습하고 정확한 사인을 가리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경찰은 이씨를 상대로 정확한 범행 동기 등을 캐는 한편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