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부삼 기자] 세월호 침몰 사고 여파가 정치권의 모든 일정까지 전면 중단시켜 버렸다. 6.4지방선거를 불과 50여일도 남겨 놓지 않은 시점이지만, 여야 정치권은 침통함에 빠져 있는 국민적 정서를 거스르지 못하고 그 어떤 정치적 활동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여야 모두 아직 후보자 공천도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해 놓은 상태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 크다. 당내 경선과 공천 과정을 거쳐 선거운동까지 펼쳐야 할 시간을 계산하면, 지방선거가 제대로 치러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지방선거 연기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오는 7.30재보궐선거와 함께 치르자는 주장인데, 지금껏 선거일을 연기한 전례가 없었던 이유에서 실현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인 상황이다.
◆여야 모두 ‘선거운동 모두 중단하라’ 지침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난 16일, 이른 오전까지만 하더라도 여야 정치권은 승객 전원이 무사 구조됐다는 잘못된 정보를 듣고 이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하지만 오후가 되면서 정보가 모두 잘못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파문은 확산됐고, 정치권도 촉각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리고 곧바로 여야는 모두 모든 정치일정을 중단하겠다는 선언을 하고 나섰다.
새누리당은 이날 새정치민주연합에 모든 정쟁을 중단할 것을 공개 제안했다. 민현주 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새누리당은 철저한 사고 원인 규명과 신속한 구조 및 사고 수습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또한 새누리당은 지금 이 순간부터 여야 간 모든 정쟁을 중단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민 대변인은 “새정치민주연합도 이에 동참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며 “아울러 새누리당은 17일 예정된 서울시장 경선 후보 TV토론도 무기한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또, 새누리당은 이날 당 차원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 대책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장에는 심재철-유수택 최고위원이 공동으로 맡기로 했으며, 안효대 당 재해대책위원회 위원장이 간사를 맡았다.
새정치민주연합도 이날 오전 대변인단 명의로 당 출입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오후 들어 속속 확인되는 ‘세월호’ 사고 소식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며 “이에 오후 브리핑은 본 사고 관련 외에 주요 현안 브리핑은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전달했었다.
그리고 오후 세월호 관련 긴급대책회의를 개최하고, 17일 예정돼 있던 당대표 방송기자 초청 토론회 등 주요 일정을 취소하기로 했다. 특히,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임에도 광역단체장 후보 텔레비전 토론 등 경선 일정까지 중단 또는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한정애 대변인은 이와 관련한 브리핑에서 “현재는 무엇보다 인명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마음으로, 실제 현장에 계신 분들은 모두 함께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시점”이라며 “국민여러분과 함께 실종된 학생들과 시민들의 무사귀환을 간절히 기원한다”고 밝혔다.
새정치연합은 또, 당내 사고대책단을 구성했다. 국회 농해수위와 안행위, 교문위 위원들을 중심으로 구성했으며, 사고대책단장은 최규성 농해수위 위원장이 맡았다. 부단장은 교문위 유기홍 간사와 안행위 이찬열 간사가 맡게 됐다. 한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오늘과 내일은 굉장히 귀중한 시간이 될 것 같다”며 “우리당은 사고 수습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17일까지는 해당 상임위 개최는 자제하고, 18일부터 원내 차원에서 해당 상임위를 통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책 수립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고 규모가 예상보다 훨씬 커지자, 여야 양당은 이튿날인 지난 17일 중앙당 차원에서 6.4지방선거 출마 예비후보자들에게 선거 일정을 전면 중단하라는 지침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황우여 대표는 “새누리당 후보들은 별도 연락이 있을 때까지 선거운동을 중지해달라”며 “국민과 함께 이 힘든 때를 같이 해주시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홍문종 사무총장도 황 대표의 말을 받아 “새누리당은 모든 선거일정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최경환 원내대표도 “정부와 관계당국은 한분이라도 실종자가 빨리 구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실 것을 당부 드린다”면서 “국회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해나가도록 하겠다”고 적극적 협조 의지를 밝혔다.
새정치민주연합 역시 이날 오전 ‘여객선침몰사고 대책회의’를 열고 6.4지방선거 관련 일정을 잠정 중단하고 연기하도록 했다. 박광온 대변인은 이와 관련한 브리핑에서 “선거 관련 일체의 일정은 중단되고 있다”며 “노웅래 사무총장 이름으로 지역위원회와 시도당에 공지를 다시 했다”고 밝혔다.
박 대변인은 “따라서 중앙당 차원에서 이뤄지거나, 시도당 차원에서 이뤄지는 선거관련 토론이나 후보자 개소식은 물론이고 개별 후보가 파란색 점퍼를 입고 거리에서 하는 일체의 선거운동을 모두 중단하도록 다시 한 번 조치했다”고 강조했다. 다만, 불가피하게 서류상으로 진행되는 절차들은 법적 시한의 문제로 진행하기로 했다. 박 대변인은 “사람이 움직이면서 이뤄지는 모든 선거관련 행위는 중단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방선거 연기 불투명, 조용한 선거준비
한편, 이 같은 분위기 속에 지방선거를 제대로 치를 수 있겠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지방선거 연기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지방선거 연기가 불확실한 상황에 예비후보자들이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이 때문에 예비후보들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물밑에서 조용한 선거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방선거 연기론’에 대해서는 여야 모두 일축하고 있다. 여야가 합의해 현 선거법을 개정해 부칙을 신설하면 이번 선거 일정을 미룰 수 있지만,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이 같은 논의조차 꺼내기 조심스럽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와 관련, 새누리당 함진규 대변인은 “선거의 ‘ㅅ’자도 못 꺼내는 분위기다. 지금 선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일단 구조가 우선 아닌가”라며 “여야 모두 시간이 촉박한 건 마찬가지라 똑같은 상황 아닌가. (선거연기론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정성호 원내수석부대표도 “지금은 국가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데 대해 정치권도 반성하고 피해자 지원과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며 “지금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서 선거를 연기하자고 주장할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