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뉴스 이기연기자 ] 날카로운 눈매, 게다가 전작이 '도가니'다.
어두운 이면을 파헤쳐 경종을 울린 황동혁(43) 감독은 냉철한 인물이라는 선입관이 있다. 그러나 황 감독은 "연출 못한다는 말보다 안 웃긴다는 말이 더 싫어요. 이런 게 바로 반전의 묘미죠"라며 웃었다.
'도가니' 이후 3년 만에 선보인 작품이 가족 코미디 영화 '수상한 그녀'다. 74세 욕쟁이 할머니 '오말순'(나문희)이 스무살 처녀 '오두리'(심은경)의 젊은 몸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유쾌한 스토리와 신선한 얼굴, 탄탄한 연출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처음에는 이걸 왜 만드느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도가니' 스태프들과 이 작품을 함께 했는데 대부분 첫 반응이 '왜 이런 영화를 해요?'였죠. 하지만 코미디 영화는 꼭 해보고 싶었어요. 개인적으로 농담도 많이 하고 웃기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보통사람보다 술자리에 가면 헛소리도 많이 하죠. 친한 친구들은 오히려 '도가니'나 '마이 파더'를 만든 걸 이상하게 생각해요."
이어 "나를 위한 힐링 영화"라고 규정했다. '도가니'는 관객 460만명을 모았고 사회적 파장도 컸다. 2005년 광주광역시 청각장애학교에서 발생한 사건을 토대로 해 '도가니법' 등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 반면, 어린 배우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비난도 들어야했다.
"너무 힘들었어요. 개봉 후 큰 논란이 있었던 만큼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죠. 피해 학생들을 찾아가는 과도한 취재경쟁도 그렇고, 아이들을 소재로 돈을 벌어먹는다는 안 좋은 시선도 있었고요. 기독교를 왜곡했다는 반응도 그렇고…. 심지어 '사탄설'도 있었어요. 그때 이후로 잠을 깊이 못 자게 됐죠."
황 감독은 "작품에서 빠져나오는 시간이 길어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 시간 글을 쓰고, 후반작업까지 한다. 촬영할 때도 감정신에는 같이 예민해진다. 배우도 그렇지만 감독도 촬영 전부터 힘들어진다. 똑같은 감정에 휩싸여 불안해지기도 한다. 더구나 배우들까지 통제하려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정신적으로 많이 피폐해졌다. 그래서 꼭 유쾌한 영화를 찍고 싶었다. 쓰면서도 재미있고 아이디어도 많았다. '도가니'보다는 훨씬 즐겁게 촬영한 것 같다"며 즐거워했다. "촬영이 주는 기본적인 스트레스는 물론 있죠. 하지만 눈을 치켜뜨고 '도가니'를 봤다면 '수상한 그녀'는 마음이 편했어요. '도가니' 보고 너무 힘들어서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관객을 위해서라도 즐겁고 유쾌하게 만들고자 했습니다"는 마음이다.
'수상한 그녀'는 아역탤런트 출신 심은경이 원톱 주연으로 나선 영화다. 앞서 '광해, 왕이된 남자' '써니' 등에서 안정감 있는 연기를 보여줬지만, 주연으로는 모험이었다. 청춘스타도, 누구나 인정할 만한 티켓파워를 지닌 배우도 이 영화에는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런데 황 감독은 "이번만큼 뜨거운 배우들과 연기한 적이 없다"면서 "다 1순위 배우들이었어요. 연기력으로 인정받은 사람들이었고요. 스타캐스팅이라고 생각했는데요?"라고 반문했다.
"따지고 보면 안전한 영화는 없어요. 돈을 아무리 많이 써도 안 되는 작품이 있고, 또 누구나 인정하는 배우가 나온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도 아니거든요. 배우가 인지도가 있으면 도움은 되지만 결국은 영화예요. 잘 만들어져야 손님이 드는 법이죠."
황 감독이 심은경을 더더욱 고집한 이유다. "꽃미녀 스타일의 청춘스타도 아니고, 또 원톱으로 주연해본 적도 없는 배우지만 심은경을 믿었다"는 것이다. "은경이가 아역일 때부터 눈여겨봤다. 처음 시나리오에는 주인공이 섹시미녀였는데 재미있게 수정하다 보니 은경이가 떠올랐다. 순발력도 뛰어나고 감정도 풍부한 친구다. 연기력만 보면 20대 여배우 중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황 감독은 "코미디를 끝냈으니 다른 장르에 도전해야죠"라고 전했다. "같은 장르는 매력이 없어요, 또 힐링이 필요하면 그때 다시 코미디로 돌아오겠죠"라며 여지는 남겼다.
관객들에게도 한 마디 던졌다. "'도가니'때 팝콘을 못 드신 관객들, 이번에는 맛있게 드시면서 영화를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