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포크 음악의 대부이자 사회운동가인 피트 시거(94)가 별세했다.
시거의 손자인 키타마 케이힐 잭슨은 시거가 27일 오후 9시30분께(현지시간) 뉴욕 프레즈비티리언 병원에서 노환으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1919년 뉴욕에서 태어난 고인은 음악교수인 아버지와 바이올리니트스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릴 때부터 민요 등에 흥미를 지닌 그는 1938년 하버드대를 중퇴했다. 이후 미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민요와 노동자를 위한 노래 수집과 연구에 주력했다.
1948년 4인 포크그룹 '위버스'에서 활동하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1950년대 포크 전성기를 이끌면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진보 성향이 뚜렷한 시거는 사회운동에도 힘썼다. 1940년대 스페인 내전 당시부터 운동에 나선 시거는 1950년대 노동운동, 1960년대 베트남전 반대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매커시즘 열풍이 일던 1950년대 초반에는 공산주의자 명단에 올라 방송 출연이 정지되기도 했다. 1970년대 이후에도 반전운동 등을 이어갔다.
2011년 10월에는 뉴욕에서 벌어진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에 참가,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위 셸 오버컴(We Shall Overcome)', '체나, 체나(Tzena, Tzena)', '웨어 해브 올 더 플라워스 건(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온 톱 오브 올드 스모키(On Top of Old Smokey)' 등의 포크 명곡을 불렀다.
특히 '우리 승리하리라'라는 뜻의 '위 셸 오버컴'은 인권운동 현장에서 시위 참가자들이 즐겨부른 노래로 유명하다.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특히 '아리랑'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다. 한국전 참전용사인 시거는 국군과 인민군 병사들이 너나할 것 없이 모두 아리랑을 부르는 모습에 감탄했다. 1957년 발표한 자신의 음반에서 '아리랑'을 노래했다.
시거는 이후 공연에서 '아리랑'을 부를 때마다 한국과 북한이 하나라는 걸 증명하는 상징적인 노래라는 소개를 덧붙였다. 2012년 말 '아리랑'이 UNESCO 세계인류문화유산에 등재됐을 때 그의 행보가 국내에서 재조명되기도 했다.
밥 딜런(72)을 비롯해 조앤 바에즈(73) 등 1960년대를 풍미한 포크 가수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저항 가요의 시초로 통한다. 김민기(63), 한대수(66) 등 1970년대 활약한 한국 포크송 가수들도 그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 '위 셸 오버컴'은 대학가 시위 현장에서 자주 울려퍼지기도 했다.
1996년 록&롤 명예의전당에 헌액됐다. 1993년 그래미어워즈에서 평생 공로상을 받았다. 이후 1997년 그래미어워즈에서 음반 '피트'로 '최우수 전통 포크 앨범'상을 받는 등 이 시상식에서 수차례 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