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정치평론가이자 프랑스 공쿠르상 최종 후보작 <크렘린의 마법사>의 저자 줄리아노 다 엠폴리의 문제적 정치 에세이다. 저자는 기술과 정치가 융합된 시대에 새로운 권력 구조가 도래하는 과정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빠른 해결사’에 대한 갈망
저자는 도널드 트럼프와 블라디미르 푸틴 같은 정치 지도자뿐 아니라 일론 머스크, 샘 올트먼, 마크 저커버그 같은 기술 정복자들을 새로운 포식자로 일컫는다.
이들은 현대 정치의 혼란 속에서 ‘속도와 힘’을 주요 덕목으로 내세우며 새로운 권력의 종족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 신흥 세력은 포퓰리즘적 정치인들과 기술 기업가들의 연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단순히 권력을 장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권력의 본질 자체를 바꾸고 있다.
민주주의의 틈을 파고든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들은 이제 단순한 기업가가 아니라 세계 질서를 재편하는 신흥 권력자로 떠올랐다. 기술 권력은 기존의 정치권력과의 연합을 넘어 오히려 그들을 흡수하거나 대체하며 민주주의의 규칙과 책임을 점점 무력화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새로운 권력의 주체들을 하나의 진화된 종족으로 바라보며 그들의 탄생과 부흥 과정을 치밀하게 관찰해 나간다.
지금 세계는 ‘절차·규칙·제도’보다 ‘속도·힘·감각적 충격’을 더 빠르게 소비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민주주의는 너무 느리고 복잡한 체제로 인식된다. 기술은 사회의 분열을 더 빠르게 확산시키고, 플랫폼은 민주주의의 규칙을 대체한다. 경제적 불안은 기존 엘리트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을 더욱 심화시키고, 시민들은 ‘빠른 해결사’를 갈망하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등장하는 이들이 ‘포식자’다.
저자는 그들의 등장 자체가 시대의 증상이자 역사적 ‘정상 상태’로의 회귀라고 말한다. 즉, 규칙과 인권으로 권력을 통제했던 시대는 아주 짧은 예외적 순간이었다. 인류 정치의 긴 역사에서 힘, 속도, 폭력, 결정력은 오히려 ‘기본 상태’였다. 지금은 단지 그 기본 상태가 기술 문명과 결합해 새로운 형태로 돌아온 것일 뿐이다.
AI를 만든 사람들의 결여된 역사 감각
저자는 인공지능(AI) 기술 자체의 작동 원리가 아니라 이 기술이 등장한 이후 정치적 문화적 지형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주목한다. 즉 기술의 성능보다 권력의 이동이 더 중요하다는 관점이다.
자연스럽게 그의 시선은 일론 머스크, 마크 저커버그, 샘 올트먼, 얀 르쿤, 에릭 슈미트처럼 기술 개발을 넘어 정치적 영향력까지 행사하는 ‘테크 개발자’들에게 향한다.
권력의 탄생과 전환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포착하는 저자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기술 자체의 문제로 돌리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맹목적인 확신과 역사 감각의 결여 속에서 기술을 설계하고 운용하는 지배층의 사고방식이 더 근본적인 위협이라고 진단한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것은 기술의 미래가 아니라 권력의 미래이며, AI 자체가 아니라 AI 시대를 지배하는 인간들의 선택이다.
저자는 권력의 작동 원리를 현장에서 포착하면서 동시에 풍부한 역사적 배경과 서사를 함께 풀어낸다. 소설가이기도 한 그는 유엔 총회 현장이나 오바마 재단 창립 만찬회 같은 장면에서 사람들의 몸짓, 가식적인 미소, 거만한 손짓, 의미심장한 웃음을 한 편의 블랙코미디처럼 섬세하게 묘사한다.
이로써 권력이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일상 속에 드러나는 구체적 관계의 역동임을 일깨운다. 읽기 쉬우면서도 신랄한 통찰과 서사적 흡인력을 지닌 이 책은 독자를 단순한 정보 소비자가 아니라 시대의 목격자로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