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욕이 낳은 비극, 명분 없는 전쟁의 참상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동 공습으로 시작된 전쟁이 당초 단기전 예상을 깨고 4주째를 넘기고 있다. 이란의 저항이 거세어지며 장기전 돌입이 자명해진 상황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사실상 전쟁 범죄를 저질렀으며, 이란의 반격 과정에서 민간인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이 정당성 없는 전쟁으로 인해 중동은 물론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까지 막대한 경제적·사회적 내상을 입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는 왜 총성을 울렸는가? 명분은 자국민 보호였으나, 실상은 트럼프의 11월 중간선거 승리와 네타냐후의 집권 연장이라는 '개인적 정치 야욕' 때문임을 천하가 다 알고 있다. 지도자의 광기에 가까운 무모함이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극단의 비극을 초래한 것이다.
국민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 정치의 본령(本領)이다
정치(政治)의 한자를 풀이하면 ‘구부러진 곳을 편편히 펴서 물이 흐르듯이 잘 흐르게 한다’는 뜻이다. 즉, 삶이 고단한 국민을 위해 올바른 정책을 펴서 모두를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다. 이를 위해 정당이 존재하고, 정권을 획득한 집권 여당은 행정·사법부와 협력하여 오직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해 매진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선정(善政)을 베푼 지도자는 수백 년이 지나도 존경받지만, 정치의 참뜻을 저버리고 폭정(暴政)을 일삼은 자는 영원한 비난과 질책의 대상이 된다. 곡선을 직선으로 펴는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야말로 치자(治者)의 진정한 도리다.
시스템을 압도한 독주, 나락으로 떨어진 국가의 품격
국내로 눈을 돌려보자. 지난 2024년 12월 3일, 있어서는 안 될 참담한 사건으로 나라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결국 그 권력을 휘두른 당사자인 전직 대통령은 물론, 영부인과 그 명령을 수행한 핵심 인사들까지 모두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다.
국가 관리를 위한 3부 요인의 시스템이 존재함에도, 정치적 욕망에 사로잡힌 권력의 독주를 막지 못했을 때 국가가 어떤 재앙에 직면하는지 위 두 사례는 극명하게 보여준다. 시스템이 무너진 자리에는 오직 지도자의 오판과 국민의 눈물만이 남을 뿐이다.
지리멸렬한 야당, 민심(民心)은 어디에 있는가
최근 6.3 지방선거 공천 과정을 보면 과연 정치 지망생들이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자세를 갖췄는지 강한 의구심이 든다. 특히 야당인 국민의힘은 2024년 계엄령 이후 정권을 내주고도 여전히 권력 다툼에 매몰되어 지리멸렬(支離滅裂)하다.
새로 선임된 공관위원장은 사임과 복귀를 반복하며 '완장 찬 똠방각하'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공천 심사를 이어가고 있고, 당 대표는 창당 이래 최저치인 18% 지지율에도 '마이웨이'를 외치며 웃고 다닌다.
만약 최악의 경우 서울, 부산, 대구 등에서의 패배로 지방선거에서 대패해도 본인들의 안위만 지키면 된다는 식인가. 청년인재를 영입한다고 실시한 ‘청년오디션’ 역시 이해하기 힘든 참가자와 심사위원 구성으로 민심과는 동떨어진 ‘별나라 정당’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을 관전하는 입장에서는 ‘도대체 이 사람들은 정치의 참뜻을 알고 나 있는건지, 알면 도저히 이런 행보를 할 수 없을 텐데’ 라는 생각만 뇌리를 때리고 있다.
국민을 위한 정치는 여론을 경청하고 존중하는데에서 시작된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고자 한다면, 개인의 손익을 따지기 전에 여론을 경청하고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트럼프와 네타냐후는 전쟁 종식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해야 하며, 영어의 몸인 전직 대통령은 과오를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 역시 제대로 된 후보를 선출해 정정당당히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정치는 국가에 이익이 되고 국민을 편안하게 해주는 '치유의 힘'을 발휘할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굽은 것을 바로 펴는 정치 본연의 길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정치지도자의 유일한 책무다.
글쓴이=시사뉴스 박성태 대기자

배재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졸업 행정학 박사
전 파이낸셜뉴스 편집국 국장
전 한국대학신문 대표이사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