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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칼럼

[김영두 골프이야기] "플레이 중에는 금연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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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홀. 파4. 330미터. 핸디캡11. 페어웨이 좌우로 곧게 자란 소나무들이 벽처럼 늘어서 있음. 이 페어웨이는 그린을 향해 갈수록 좁아지고 있으며 오른쪽으로는 깊은 숲이 러프와 연결되어 공이 숨으면 쉽게 찾지 못함. ***


[신이 내린 스포츠, GOLF & SEX. 플레이 중에는 금연을 요구한다.]

일본으로 골프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내가 갔던 골프장은 각 홀마다 특별한 이름이 붙어 있었다. 홀의 생긴 모양에 따르거나 난이도에 따라 붙여진 이름 같았는데, Find me out, Eden, Demon's hand, Noah's Ark, Lone maple, The fork in the road, Hit and pray, Water kappa, Double or nothing, Happy knoll 등이었다. 

페어웨이가 좁아서 영락없이 오미의 쓴맛을 볼 것 같은 'Find me out', 이 세상 어딘가에 에덴이 존재한다면 바로 여기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녹음방초가 우거지고 새들이 지저귀던 'Eden', 소풍 나온 듯이 잠시 잔디에 앉아 푸른 하늘도 바라보고 뺨을 스치는 바람도 만져보며 쉬었다 가고 싶은 Happy knoll, 페어웨이가 넓고 길며 낮은 지대에 위치했던 'Noah's Ark', 작은 그린이 연못과 바투 붙어있어서 공을 세우는 기술이 없으면 티샷을 날리고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던 'Hit and pray', 'Demon's hand' 라는 파4의 홀은 악마의 손으로 주물러놓은 홀이니 골퍼를 얼마나 골탕을 먹일까 싶어 지레 겁부터 먹었는데, 괜히 이름만으로 기를 죽이는 홀이었다. 거대한 벙커가 티샷한 공이 떨어질 위치에 커다란 입을 벌려 환영의 뜻을 표하고 있었다. 벙커는, 태산만한 몸집을 가진 악마가 하늘에서 골프를 하다가 떨어뜨린 골프장갑 한 짝이 지상에 찍은 무늬 같았다. 

나는 골프코스는 9의 배수인 9홀, 18홀, 27홀, 36홀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왔는데, 그 곳에는 특이하게도 'Double or nothing'이라고 이름이 붙은 19홀이 있었다. 

내게 작명의 권한이 있었다면 나는 19번 홀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고 명명했을 것이다. 70미터의 파3홀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그린을 벙커가 둘러싸고 있다든지 연못 한가운데 그린이 떠있는 경우는 많이 보아왔다. 그러나 벙커를 띠처럼 에워싸고 있는 그린은 처음 보았다. 게다가 그린의 주위도 세 개의 커다란 벙커가 둘러싸고 있었다. 네 개의 벙커를 피해 그린에 올린다 하더라도, 적어도 핀 주위에서 50cm 반경 안에 공을 내려 꽂지 않으면 홀까지 한번의 퍼팅으로는 성공할 수 없도록 설계가 되어있었다. 'Double or nothing' 이라는 19홀은, 18홀을 도는 동안 실력으로 승부가 나지 않는다면 겸허한 마음으로 하늘의 심판을 따르라는, 코스 설계사의 고심 끝에 탄생한 역작이었다. 

민호씨가 담배를 피고 있다. 나도 담배를 한 대 얻어 불을 붙인다. 

"맛이 좋아요?"

민호씨의 물음은 의미가 깊다. 그는 나처럼 담배를 맛있게 피우는 여자를 못 보았다고 했었다. 나는 첫 모금은 항상 두 볼이 마주 닿도록 빨아들인다. 한 입 가득 빨아들인 연기를 몽땅 다 들이마신다. 

머리 풀고 올라가는 담배연기에 시름도 얹어 공중으로 날려 보내는 맛이란 기가 막히다. 폐에서 니코틴이 여과된 담배연기는 하얗게 표백되어 흩어진다. 가벼운 현기증이 일며 시야가 몽롱해진다. 

흐릿한 공간 건너에서 민호씨가 희미하게 웃고 있다. 민호씨가 담배를 문 채로 티잉그라운드로 올라가려 한다. 

"요즘 날씨가 건조해서 마른풀에 불이 잘 붙어요. 얼마 전에 이 홀에서 불났대요. 담뱃불이 잔디에 옮겨 붙었대요. 그 회원 벌금 물고 한 달 입장정지 당했대요."

내가 민호씨의 귀에 대고 속삭여준다. 민호씨와 내가 무슨 은밀한 정담이라도 나누나 싶어 꺽정씨가 귀가 곤두선다. 

"귓속말 나누는 사이인 줄 몰랐네."

경희도 의아한 눈빛을 띄며, 민호씨와 나를 놀리려 든다. 

"금연하자고 했어요. 연애도 말고 담배도 피지 말자고 했죠."

무슨 말을 나누었는지 덮어두면 경희도 꺽정씨도 더 궁금해질 텐데, 그러면 더 재미있어 질 텐데, 민호씨는 이실직고를 해버린다. 

지난 홀에서 더블보기를 한 내가 맨 마지막으로 티샷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공은 오른쪽으로 활처럼 휘어지며 러프에 처박힌다. 

"꼭 귀신이 붙은 것 같다니까. 왼쪽을 향해서 치는데도 공은 오른 쪽으로 간단 말이야."

나는 투덜대면서 내려왔다. 12번 홀에는 내가 붙인 이름이 있다. '콘서트 홀(concert hall)', 아니 '유령의 집'이다. 오른 쪽 러프에 나를 미워하는 유령이 숨었다가 내 공을 리모콘으로 조종하여 오른쪽 러프로 끌어당기는 것 같다. 

"내가 그 이유를 설명해 줄까?"

꺽정씨는 내 공이 러프에만 박히면 즐거운가 보다. 또 시답잖은 소리를 한다. 

"됐네요. 꺽정씨에게 밤낮으로 렛슨 받으면 싱글 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하려고 했죠? 싱글 핸디캐퍼 되려다가 싱글 이혼녀되라구요?"

타인의 불행을 기뻐하는 심보가 얄미워서 나는 톡 쏘아붙인다. 

"김작가. 우정의 조언을 그런 식으로 받아들인단 말이요? 내가 여태껏 지켜본 바로는 김작가가 여기만 오면 꼭 담배를 한 대 피우더라구. 담배연기가 귀신을 부르는 거야. 굿하거나 제사 지낼 때도 귀신을 부르려면 향을 피잖아." 

역시 말이 안 되긴 마찬가지이지만 꺽정씨가 음흉한 속셈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알았어요. 내가 걱정씨의 우정의 조언을 받아들이죠. 딴 데는 몰라도 이 홀에서만은 금연을 하죠. 더구나 이 홀은 꼭 극장 같잖아요. 극장에선 금연이니까."

나는 손을 들어 극장의 방음벽처럼 좌우에 도열한 소나무들을 가리킨다. 

"정말이야. 네 말을 듣고 보니 그래. 그렇지만 극장에서의 금연이란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야그니까, 연애는 안 말릴께."

경희가 꺽정씨를 향해 눈을 찡긋한다. 꺽정씨는 러프에 박힌 내공을 찾아준답시고 숲으로 따라 들어와서 내 곁에 바짝 붙어 서 있다. 

"눈은 악세서리요? 공, 여기 있잖아."

내 눈에는 안 보이는 공이 꺽정씨의 눈에는 낚이나보다. 말본새는 곱지 않지만 힘들게 공을 찾아주는 꺽정씨의 기사도 정신은 곱게 받기로 한다. 

좌우 송림의 사이의 거리는 그린 쪽으로 갈수록 좁아진다. 편안하고 아늑해 진다. 그린에 도달하면 뒤쪽으로 꽃나무들이 서있다. 

봄이면 벚나무와 목련이 시기를 맞추어서 꽃봉오리를 단다. 그린에 뚝뚝 떨어지는 젖빛 목련이파리는 가슴이 설레어서 차마 바라볼 수가 없다. 

그린은 양지바르다. 스폿라이트를 비춘 것처럼 잔디의 결이 드러난다. 잔바람이 옷깃이라도 날릴 만큼 불어주는 날엔 간지럼을 타는 여린 풀들이 눈부신 은빛으로 뒤집어지며 교성을 지른다. 

오늘은 그린 위에서 꽃잎이 아닌 낙엽이 몇 장 뒹굴고 있다. 바삭바삭하게 구운 과자처럼 스파이크에 밟힌 낙엽이 부서진다. 어디서 날아 왔는지 노란 은행잎도 처연하게 누워있다. 

어느 하루라도 다시 올 날이 있을까마는 괜스레 오늘의 기념품으로 은행잎을 보관하고 싶다. 나는 은행잎을 주워 호주머니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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