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신철 기자]가습기 살균제 사망자들 중 70%가 사용했던 제품의 제조사 옥시레킷벤키저가 정부의 자사 제품 '유해성 검증 실험 결과'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자료를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자료는 국립대 실험을 거쳐 대형 로펌 법률자문까지 거친 것으로, 실제 자료의 객관성과 설득력이 확인될 경우 지금까지 진행된 검찰 수사에 큰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의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수사도 중대 기로에 선 것으로 풀이된다.
26일 검찰과 관련 학계 등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건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부장)은 최근 제조업체 옥시레킷벤키저로부터 자사의 가습기 살균제 '옥시싹싹 New 가습기당번'이 폐손상 발병에 인과관계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취지의 실험 결과를 받았다.
옥시레킷벤키저의 '옥시싹싹 New 가습기당번'은 가습기 살균제를 쓰다 숨진 사망자 143명 중 70%가 사용한 제품이다.
제조사의 실험은 국내 한 국립대 실험실에서 자체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김앤장의 법률 자문을 거쳐 검찰에 결과가 제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업체는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질병관리본부가 2012년 2월 발표한 '옥시싹싹 New 가습기당번' 사용과 폐손상의 상관관계를 다룬 동물흡입실험에 대해 실험 조건 등이 잘못됐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살균제 1차 동물흡입실험을 완료하고 "가습기 살균제 화학물질(PHMG·PGH 등)이 주성분인 총 6개 제품은 폐손상과의 인과관계가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옥시레킷벤키저의 '옥시싹싹 New 가습기당번'의 주성분인 'PHMG 인산염'에서도 동물실험 결과 이상소견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옥시레킷벤키저측은 ▲실제 제품에 들어간 PHMG 농도와 실험 농도가 다르게 진행된데다 ▲실험을 3개월 밖에 진행하지 않았으며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인체에 적용했다는 등의 이유로 질병관리본부의 조사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당시 실험에 참여했던 질병관리본부 폐손상 조사위원회 관계자는 "사람과 동물은 다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같은 농도로 실험할 수가 없고 다른 농도로 실험했다고 해서 사람한테 이상이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동물 실험에서 농도를 좀 높였을 때 문제가 발생했고 그보다 낮은 농도에서 일부 사람한테도 문제가 발생했다면 그 제품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동물 실험에서 분명히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3개월만에 나타났다"며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할 수 없어 동물실험을 한 것인데 기간을 문제 삼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밝혔다.
이에 검찰은 최근 폐손상 조사위원회 관계자를 비롯해 해당 분야 전문가들을 불러 입장을 들어보는 등 옥시레킷벤키저와 질병관리본부 각각의 실험 결과를 비교 분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피해자 조사와 함께 양측 실험결과 검증 과정에 한달 이상의 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인과관계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으면 수사가 어렵다"며 "기업들의 과실 여부는 가습기 살균제와 폐손상의 인과관계를 따진 이후 확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사건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지난 2011년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임신부와 영유아, 노인 등이 급성 폐질환으로 숨지자 유가족 등 110여명을 모아 2012년 해당 업체들을 검찰에 고소·고발하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지난 23일엔 옥시레킷벤키저 전·현직 임원 29명을 추가 고발하기도 했다.
검찰은 보건당국이 지난해 5월 역학조사와 동물실험 등을 통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피해자들의 폐질환이 발생했다고 밝히자 가습기 살균제 제조·유통업체를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를 재개했다.
이어 지난달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에 가습기살균제 전담수사팀을 꾸렸다. 전담수사팀은 지난 2~3일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업체 등 20여곳에 대해 동시다발적으로 압수수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