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농촌의 겨울밤은 즐겁고 눅진눅진했다. 일 년 내내 논밭에서 땀 흘려 일하던 젊은 일꾼들은 마을에서 제일 큰 머슴방에다 뜨끈뜨끈하게 군불을 넣고 한쪽에서는 투전판을 벌리고, 한 쪽에서는 짚신을 삼거나 가마니를 짠다. 그리고 그것에도 실증이 나면 여자 이야기로 열을 낸다.
동네 아무 댁 큰아기의 엉덩이가 요즘 너무 커진 것 같고, 어느 과부의 허벅지는 너무 희멀겋게 보이고… 일단 이들의 입에 올랐다 하면 무엇이든 남아나는 것이 없다. 이렇게 입방아를 찧다보면 어느 사이에 밤은 이슥해 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내들의 그것은 점점 부풀어올라 주체하기 어려운데, 배는 오히려 꺼져간다. 아무리 여자 이야기가 좋지만 배가 고파서야 무슨 재미가 있으랴. 결국 화제는 ‘여자’에서 ‘먹는 이야기’로 옮겨지지만 출출한 배를 달랠 길이 그리 만만치 않다. 이런 날 동네에 제사라도 든 집이 있으면 제사 밥이라도 얻어먹으련만 아무리 따져봐야 그런 집도 없다.
어느 집 감자 구덩이를 조금 실례할까, 아니면 어느 집 무 구덩이를 슬쩍할까. 별의별 궁리를 다해본다. “이럴 것이 아니라 차라리 닭서리를 하자!” 모두가 좋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닭서리로 낙착을 보기는 보지만 막상 닭서리 할 집을 정하는 것도 그리 쉽지 않다. 어느 집은 외진 곳에 있어서 좋으나 그 집 바깥 노인이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았을 시각이고, 어느 집 닭장은 허술하기는 하지만 닭장 앞에 개집이 떡 버티고 있어서 어렵다. 결국 집을 고르는 것은 행동대원에게 맡기기로 하고 대원을 뽑고, 이렇게 뽑힌 행동대원은 조심스럽게 출동한다. 자칫 온 동네 개가 일시에 짖을 것이므로 행동대원으로 뽑힌 사내는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장가 못 간 불쌍한 머슴들은 이렇게 겨울밤을 보내지만 그러나 마누라를 끼고 사는 사내의 재미는 다르다. 저녁밥을 먹고 사랑방에서 짚신을 삼다가 밤이 이슥해서 안방으로 건너오니 마누라가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 시큼한 탁주 한 주발과 먹다 남은 밥에다 김치를 조금 넣어서 화로에 올려놓아 두었다가 밤참으로 내놓는다. 이런 때의 밤참 맛이라니! 밤참이 꿀맛이다. 이런 때 마누라를 돌보지 않는다면 이것은 사내도 아니다. 또한 마누라가 이토록 정성을 다해서 밤참을 내놓은 것도 사내의 이런 마음을 사려는 것임은 물론이다.
둘의 마음이 합해지니 일의 결말은 뻔하다. 사내는 마누라가 미쳐 상을 치우기도 전에 뒤에서 덥석 껴안는다. 마누라가 몸을 빼자 사내는 턱도 없이 큰소리를 친다. “오늘밤에는 임자를 죽여 줄게. 임자가 흡족하도록 수십 번이라도 해줄 것이니까!” 몸을 빼던 마누라는 수십 번이라는 남편의 말에 반색을 한다. “뭐라고요? 수 십 번이나요? 그게 정말이오?” “정말이고 말고!” 마누라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사내는 또 한 마디 한다. “오늘밤은 끝내줄 것이니 걱정 말라고! 그 대신 임자는 무엇으로 나의 수고에 보답할 거야? 수고의 대가는 있겠지?” 마누라는 흔쾌히 대답한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아낄 게 무엇이오? 당신 몰래 무명 한 필을 감추어 놓은 것이 있으니 그 것으로 옷을 지어서 그 수고에 보답하리다.” 사내는 횡재를 만났다고 좋아한다. “임자가 그 약속만 지켜 준다면 오늘밤은 열 일곱 번을 해주리다.” “열 일곱 번이나요?” “그렇다니까!” 사내는 기고만장해서 큰소리를 치면서 마누라의 배로 기어오른다. 곧 무지한 사내의 그것이 전희(前戱)고 뭐고 할 것도 없이 마누라의 옥문으로 돌진한다. 마누라는 아직 준비도 덜 됐는데, 이렇게 하면 재미가 없다. “조금 천천히 하시오!” 그러나 사내는 다른 소리를 한다. “한 번!” 사내의 그것이 이미 옥문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는 뜻이다. 이것이 한 번이라니! 마누라는 그 생각을 하는 참인데, 사내의 말이 또 들린다.
두 번! 남편은 한 번 나아가고 한 번 물러나는 것을 한 번, 두 번으로 헤아리고 있다. 이것은 말도 안 된다. “이것이 무슨 한 번 두 번이란 말이오? 한 번 나아가고 한 번 물러나는 것을 한 번이라고 하니 말이 되오?” “말이 되고 말고!” “이것이 한번 두 번이라면 무명옷은 고사하고 헤어진 베 잠방이도 아깝소! 그러니 무명옷을 얻어 입을 생각은 아예 마시오!” 남녀가 생각하는 한 번이라는 정의가 다르니 오해가 생길 수밖에. 사내가 묻는다. “도대체 당신이 생각하는 한 번이란 어떻게 하는 것을 말하오? 그것을 한번 들어봅시다!” “처음 시작할 때는 조용조용히 한 번 나아갔다가 한 번 물러나서 이 물건으로 하여금 옥호 저 깊은 곳까지 통과하도록 하여 그것으로 위쪽을 애무하는 한편 아래쪽을 마찰한 다음 좌로 찌르고 우로 찌르기를 구진구퇴(九進九退)의 법에 따르게 하고, 이어서 그것이 화심(花心)에까지 들어가게 하기를 몇 백 번 계속하는 것이오. 둘의 마음은 부드러워지고, 사지는 나른하고, 목구멍이 막혀 소리를 지르려 해도 지를 수 없고, 눈을 뜨고 싶어도 뜰 수 없는 경지에 이르러서야 일을 끝내야지요.
이것이 이른바 한 번이 끝났다는 것이오. 그리고 이렇게 한 번을 끝낸 다음에 두 사람이 깨끗이 씻고 정신을 가다듬은 다음에 다시 시작하는 것이 두 번 째라 할 수 있소!” 처음부터 사내와 여인이 한 번이라고 생각하는 기준이 달랐던 것이다. 사내는 한 번 나아가고 한 번 물러나는 것을 한 번으로 여겼고, 여인은 완전히 열락(悅樂)의 문턱을 넘나드는 경지에 이르는 것을 한 번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사내는 기가 막힐 수밖에. 이쯤 되면 마누라가 무명으로 정성스럽게 지어주는 옷을 얻어 입기는 애초부터 틀렸다. 그렇다고 아내가 요구하는 대로 열 일곱 번을 제대로 다 시행하다가는 뼈도 추리지 못할 판국이다.
부부는 한 번이란 것을 놓고 불꽃 튀는 설전을 벌린다. “이것이 무슨 한 번이오?” 남녀가 서로 자기가 말하는 ‘한 번’이 옳다고 우기니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는다. 때마침 닭을 훔치러 왔다가 문밖에서 자초지종을 엿보고 엿듣던 머슴방의 행동대원이 엉겁결에 끼어 든다. “그것은 아주머니의 말씀이 옳소! 바깥양반이 말하는 ‘한 번’이란 말도 안되오. 아주머니의 주장이 백 번 옳소! 나로 말하면 이 동네 아무개 집에서 머슴을 사는 머슴인데, 마침 머슴들끼리 놀다가 시장하던 참이라 야식이나 하려고 닭 한 마리 빌리려 왔소이다.
닭 한 마리만 빌려주시면 나중에 틀림없이 후한 값으로 갚으리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이 깜짝 놀래어 도둑을 잡으려고 몸을 일으키려 하자 마누라가 남편을 붙잡고 말리면서 바깥을 향해서 소리를 지른다. ”이 송사에 대하여 내린 현명한 판관의 판결이 이토록 지공무사(至公無私)하니 이런 옳은 판결에 보답이 없어야 쓰겠소? 그까짓 한 마리의 닭이 아까울 것이 무엇이오? 나중에 갚을 것도 없으니 어서 몇 마리 잡아가오!” 그 날밤, 많은 사람들이 즐거웠다. 닭 도둑은 좋은 구경도 하고 어렵지 않게 닭을 얻어서 즐거웠고, 그 것으로 출출한 배를 달랜 동네 머슴들 또한 모두가 즐거웠다. 하지만 누구보다 즐거웠던 사람은 몇 마리의 닭을 흔쾌하게 내준 마나님이었다. 몇 번이나 말을 하고 싶어도 말이 목구멍을 넘어가지 않고, 눈을 뜨고 싶어도 눈을 뜰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 역시 그런 대로 괜찮았다. 수고는 했지만 틀림없이 좋은 옷을 얻어 입으리라는 희망이 있으니 어찌 즐겁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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