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부삼 기자] 올초 실시된 인사청문회에서 까도까도 미담밖에 나오지 않는다며 여야 모두로부터 극찬을 받으며 취임했던 채동욱 검찰총장. 그런 그가 불과 6개월여 만에 스스로 총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검찰 내부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거센 반발이 일고 있고, 정치권에서는 야권을 중심으로 청와대와 여권의 배후 압력설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2월, 검찰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최초로 만들어진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를 거쳐 검찰총장에 오른 채 총장. 그는 취임 이후 소신껏 검찰을 이끌어왔고, 검찰 조직도 그 어느 때보다 중립성을 띄게 됐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가 총장직 사임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것일까? 정치권에서는 그가 박근혜정부에서 원했던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특히 국정원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는 여권과 채 총장 사이가 벌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혼외자식’ 의혹은 채 총장을 끌어내리기 위한 하나의 덫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국정원-이석기 등 굵직한 수사 중 뜬금없는 혼외자식 의혹
지난 6일, 조선일보는 채동욱 총장에게 혼외자식이 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지난 1999년 부산지검 동부지청 부장검사로 근무하면서 현재 부인이 아닌 모씨를 만나 관계를 유지했고, 그러다가 2002년 7월 대검 마약과장을 지낼 당시 아들을 낳았다는 것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혼외아들로 지목된 채 모군은 최근까지 서울의 한 사립학교에 다니다 지난달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에 대해 채 총장은 대검찰청 대변인실을 통해 “본인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며 “검찰총장으로서 검찰을 흔들고자 하는 일체의 시도에 대해 굳건히 대처할 것이고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검찰 본연의 직무수행에 매진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조선일보 보도가 상대할 만한 가치도 없는 허구라는 태도였다.
다만, 채 총장은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내란음모 혐의를 수사 진행 중인 이유에서 이 같은 의혹 제기에도 신중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대검 관계자는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건의 재판과 수사가 진행 중”이라며 “이 시점에서 이 같은 논란이 발생한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채 총장 역시 이런 점에 대해 상황을 엄중하게 보고 있는 듯하다”며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보도의 배경과 저의에 대해 알아보겠다’고 첫 반응을 보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언론의 의혹 제기는 계속 이어졌고, 더 이상 참고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한 채 총장도 지난 9일 조선일보를 상대로 정정보도를 청구했다. 채 총장은 그러면서 유전자 검사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진실은 하나인 이유로, 조선일보와 채 총장 둘 중 한 쪽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그동안 정치권 주변에서 수군거림 정도로만 제기돼 오던 ‘채동욱 흔들기’ 배후설에 대한 직접적인 대상이 지목됐다. 바로 검찰의 표적이 돼 온 국정원이라는 것. 이와 관련,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 1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마침 검찰에서 국정원의 대통령 선거개입 및 NLL 문건 공개에 대한 기소가 이뤄져서 지금 전 국정원장과 전 서울경찰청장을 상대로 재판이 진행 중에 있다”며 “검찰에서는 이례적으로 국정원을 향해 ‘신메카시즘’이라고 하는 등 굉장히 심한 얘기들이 오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정황을 설명했다.
박 의원은 그러면서 “제가 청와대 비서실장할 때도 보면 국정원이 그런 정보보고를 많이 하더라”며 “지금 현재 검찰에 대해 국정원이 가지고 있는 생각, 그런 것들을 보면 국정원이 하지 않았는가 하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특히, 현재 정치권에 ‘국정원 건드리면 안 된다. 건드리면 검찰총장도 다친다’는 분위기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런 분위기는 항상 정치권에 있어 왔는데, 최근에 와서는 그런 것이 더 심한 것 같다”고 인정했다. 박 의원은 “왜냐하면 국정원이 현재 정치에 개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정치를 하고 있다, 이렇게 보고 있기 때문”이라며 국정원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사상초유, 생중계된 법무부장관의 검찰총장 감찰지시 왜?
이에 따라, 국정원 배후설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 지난 13일 오후에는 황교안 법무부장관까지 가세해 채 총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장관이 검찰총장을 상대로 감찰을 벌이는 상황이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생중계되는 사상 초유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말이 감찰 지시였지, 사실상 사퇴 압박과 다름없는 셈이었다.
법무부는 “국가의 중요한 사정기관의 책임자에 관한 도덕성 논란이 지속되는 것은 검찰의 명예와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이라며 “더 이상 논란을 방치할 수 없고 조속히 진상을 밝혀 논란을 종식시키고 검찰 조직의 안정을 도모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법무부의 이 같은 감찰 지시 명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채 총장이 감찰 지시 소식이 언론에 알려진 지 1시간여 만에 전격 사의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채 총장은 이날 오후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검찰총장으로서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자 한다”며 “근거 없는 의혹 제기로 공직자의 양심적인 직무수행을 어렵게 하는 일이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그는 “저의 신상에 관한 모 언론의 보도는 전혀 사실무근임을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밝혀둔다”면서 자신의 사의가 결코 혼외자식 의혹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못 박아 밝혔다. 정치적 흔들기에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이튿날인 지난 14일 <동아일보>는 이런 사실을 보도했다. 황교안 장관이 9월 첫째주말 채 총장을 만나 사퇴를 설득했고, 대검을 통해서도 그동안 두 차례나 채 총장에 대한 감찰 지시를 내렸었다는 것. 아울러,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도 최근 채 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공직 기강 감찰을 받으라고 권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보도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면, 채동욱 흔들기 배경에 결코 국정원만 있지 않았음이 드러난 것이다. 청와대와 정부, 국정원, 그리고 조선일보라는 거대 언론까지 채 총장 흔들기에 한 뜻이었던 셈이다. 이를 두고 민주당은 “청와대를 비롯한 집권세력이 눈엣가시가 된 채 총장을 쫒아내기 위해 모두 나섰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며 “이번 사태를 통해 어느 국민도 청와대가 앞으로 검찰의 중립을 지켜줄 것이라는 주장을 믿지 않게 됐다”고 꼬집었다. 6개월여 중립을 지켰던 검찰이 다시 권력의 하수인으로 돌아가게 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