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철우 기자] 22대 첫 100일간의 정기국회가 지난 2일부터 시작됐다. 지난 1일 여야 대표 회담이 열리며 ‘협치’ 기대감이 커졌지만 정기국회 초반 여야 간 파열음이 잇달아 표출되면서 정국이 급랭하고 있다. 이러다 모처럼 여야가 다짐한 민생 협력이 가능하겠느냐는 회의론이 고개를 든다. 당장 여야 대표가 합의한 민생공약협의기구 구성을 위해 예정됐던 여야 정책위의장 회담이 취소됐다. 연금개혁 논의도 제자리 걸음이다. 국회밖에선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논란으로 대통령실과 야당 간 대치가 날카로워지고 있다. 내부 전열 정비를 마친 여야는 윤석열 정부 3년 차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한 치열한 공방을 당분간 이어갈 전망이다.
與 170개·野 165개 법안 추진... 입장차 커 곳곳 암초
국회는 지난 4일과 5일 각각 진행된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필두로 100일간의 대장정에 돌입했다. 오는 9~12일까지 나흘간은 대정부질문이 예정돼 있고, 상임위별로는 예산과 법안 심사 등을 계속 진행한다. 10월 7일부터 25일까지 19일간에는 국정감사가 예정돼 있다. 일단 여야는 오는 26일에 본회의를 열기로 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방송 4법, 노란봉투법, 전 국민 25만 원 지원법에 대한 재표결이 상정될 예정이라 격돌이 불가피해 보인다.
국민의힘은 이번 정기국회를 앞두고 민생경제·저출생·의료 개혁 등 6개 분야 170건의 주요 법안을 발표했다. 민주당도 경제·인구소멸 등 분야 법안 165건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여야는 지난달 28일 비쟁점 민생법안 28개를 합의 처리하고, 1일 여야 대표 회담을 열어 ‘민생 협치’ 분위기를 어렵게 이끌어냈다. 하지만 막상 정기국회가 열리자 정국이 다시 얼어붙으면서 여야 간 입법도 험로가 예상된다. 여야 모두 ‘민생 입법’을 강조하고 있지만 입장차가 크다.
민주당은 ‘25만 원 지원법’에 이어 지역화폐를 들고 나와 골목상권 활성화를 위한 개정안을 당론 법안으로 추진하겠다고 예고했지만, 국민의힘은 ‘현금살포법’이라며 나라 살림은 고려하지 않은 빚잔치라고 반대했다. 대법원장이 특별검사를 추천하도록 하자는 ‘제3자 채상병 특검법’도 뇌관이다. 민주당은 제3자 특검 안을 직접 발의하며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국민의힘은 “변한 게 없다”며 일축했다. 방송 4법을 포함해 노란봉투법 등 대통령 재의요구로 국회로 돌아온 법안도 여야 입장 차가 극명해 여전한 갈등요소다.
휘발성 강한 ‘2특검·4국조’... 국정감사 여야 대충돌 뇌관
오는 10월 7일부터 25일까지 19일간 실시될 국정감사에서는 여야 간 충돌이 정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은 김건희 여사 관련 각종 의혹과 ‘동해 유전개발 의혹’, ‘채상병특검법’ 등을 놓고 여권을 거세게 몰아붙일 태세다. 이 외에도 ‘2특검(채상병·김 여사 특검법)·4국조(채상병·서울~양평고속도로·방송 장악·동해 유전개발 의혹)’ 추진 의사를 밝혀 충돌이 불가피하다. 국민의힘은 ‘2특검·4국조’ 요구를 모두 거부할 방침이어서, 여야 간의 갈등이 정기국회 내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연금개혁 등도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국정 브리핑에서 ‘세대별 보험료 인상 속도 차등화’ 등을 골자로 한 정부의 연금개혁안 발표했다. 국민의힘은 국회 연금개혁특위를 조속히 구성해 정기국회에서 모수개혁(소득대체율 및 보험료율)을 먼저 처리하자 입장이지만 민주당은 ‘세대 차별 갈라 치기’라며 비판하고 있다. 여야는 21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에서 1년 7개월 동안 국민연금 개혁 논의를 이어왔으나 끝내 합의에 실패했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 입장차... 건전 재정 vs 부자 감세
내년도 정부 예산안 심사에서도 재정 운영 방향과 세제개편 등을 놓고 여야의 입장차가 크다. 총 677조 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은 올해보다 3.2% 증가한 수준이다. 정부는 24조 원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증액을 최소화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예산의 대규모 삭감·증액이 필요 없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당은 ‘부자 감세’로 세입 기반이 훼손된 예산안이라며 정부의 특수활동비 점검 등을 통한 대규모 칼질을 예고했다. 정부 예산안에 빠진 민주당이 주장하는 ‘25만 원 민생지원금’ 추가를 두고도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민주당은 내수 진작 수단으로 민생지원금 지급을 내세우고 있지만 여당은 건전 재정 원칙에 따른 ‘선별 복지’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1일 양당 대표 회담 모두발언에서 이 대표는 “차별, 선별 지원 방안에 대해 받아들일 용의가 있으니 적정 선에서 협의하자”고 제안했지만 이어진 비공개 회담에서 인식 차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추·이 국정 난맥 서로 전가... 민생협의체·금투세 ‘접점’
여야가 이번 정기국회를 바라보는 입장차는 지난 4일 박 민주당 원내대표, 지난 5일 추 국민의힘 원내대표 연설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두 원내대표는 국정 난맥의 책임을 상대에게 전가하며 비판을 쏟아냈다. 추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범죄 피의자’로 칭하며 “수사 검사를 탄핵하겠다는 건 그야말로 적반하장의 입법 농단”이라고 직격했다. ‘2만 원 민생지원금’에 대해선 “남미의 많은 국가가 이런 식의 포퓰리즘 정치로 재정 파탄을 불러 국가 경제를 망가뜨렸다”고 비판했다. 박 민주당 원내대표도 윤 대통령을 향해 “야당이 의회 독재를 한다고 주장하지만, 진짜 독재는 대통령이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계속 민심을 거역한다면 불행한 전철을 밟을 것”이라며 탄핵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다만, 여야 대표회담에서 민생과 관련된 협의체 구성 합의가 아직 유효한 만큼 실질적인 법안 처리 노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금투세와 관련해서도 폐지하자는 국민의힘과 완화 혹은 유예하자는 민주당의 입장이 완전히 엇갈리는 게 아닌 만큼 접점이 가능하다는 시각도 있다. 두 원내 대표도 민생법안 처리와 의정갈등 해소를 전제로 내걸긴 했지만, ‘여야정 협의체’를 가동해 현안을 풀자는 데는 뜻을 같이했다. 민주당 한 재선 의원은 “정기국회 초반이라 기세 싸움이 치열한 상황”이라면서도 “추석 민심이 나오면 여야 모두 정국을 풀어갈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