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이사철이 본격화되면서 전셋값이 상승이 예사롭지 않다. 2년 전에 비해 전셋값이 1억 이상 오른 곳도 있어 상승세로만 보면 거의 ‘폭등’ 수준이다. 서울 송파구 잠실을 기점으로 오른 전셋값은 이사철이 시작되면서 강남과 목동 등 인기지역은 물론 서울 전역으로 번지고 있는 양상이다. 정부에선 전세자금 대출을 늘리고 보금자리주택 분양 등의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당장 이사를 가야 하는 세입자로선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전셋값 상승이 한동안 계속될 것이며, ‘대란’으로 번질 위험까지 있다는 데 있다.
수급 불균형 앞으로가 더 문제
전셋값 폭등의 진원지인 잠실. 한모씨는 지난 2007년 10월 잠실 트리지움 109m2(33평)을 2억5000만원에 전세로 계약했다. 하지만 계약 만기를 한 달여 앞두고 집주인은 전셋값을 3억8000만원으로 올렸다.
2년 새 전셋값이 1억3000만원이 오른 것이다. 근처 리센츠(잠실주공 2단지 재건축) 아파트는 같은 평형이 2년 전 2억5000만원에서 현재 4억원 안팎까지 올랐다.
상상을 뛰어넘는 전셋값 폭등에 정부는 “지금의 전셋값 상승이 그동안 하향됐던 전세 가격이 정상화 된 것”이라고 해서 빈축을 샀다.
잠실의 경우 2년 전 입주물량이 쏟아지면서 전세가격이 다소 저렴했던 것이 사실이나, 서울과 수도권 전역으로 번지고 있는 전셋값 상승을 ‘정상’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전세난을 막을 방법이 전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지금의 전세난은 ‘주택의 수급 불균형’에 있는데 당장 이사를 가야하는 실수요자에게 규제완화나 공급물량 확대 같은 정책들은 단기 전세난을 해결하기 어렵다. 서울 도봉구 창동의 부동산 중개인은 “전세는 매매와 달리 투기수요가 끼어들 틈이 없는 100% 실수요 시장”이라며 “공급이 줄어들면 가격이 올라가는 게 당연하다”고 말한다.
수급 불균형의 가장 큰 원인은 서울 시내 곳곳에서 무계획적으로 벌어지는 재개발과 뉴타운 사업으로 인한 이주 수요의 급증에 있다. 각종 사업으로 멸실가구는 늘어나는 반면, 입주물량은 떨어지는 수급 불균형 문제가 심각하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재개발 사업 등으로 인해 멸실가구가 지난해 1만8000여 가구에서 올해 3만1000여 가구로 대폭 늘었다. 반면 부동산정보업체 닥터아파트에가 파악한 서울시내 아파트 입주물량은 지난해 5만2000여 가구에서 올해 2만7000여 가구로 절반 가량이 줄었다.
특히 신규 아파트가 지난 10년간 평균의 60%에도 못 미치면서 전세난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뉴타운을 비롯한 재개발 사업이 내년부터 본격화되어 향후 전세대란은 불을 보듯 뻔한 실정이다.
내년 서울시 멸실가구는 4만8000여 가구, 후년엔 4만4000여 가구에 이르지만, 입주물량은 내년 2만6000여 가구, 2011년에는 1만7000여 가구만 예정됐을 뿐이다.
예고된 대란 무시한 현 정부
지금과 같은 전세대란은 2007년 상반기에도 경험한 바 있다. 2차 뉴타운지구 11곳 중 3분의 1 정도가 사업계획승인을 받고 이주를 시작했는데 갑자기 1만5000여 가구의 주택멸실이 일어나 전셋값이 두 배로 폭등한 것이다.
이에 오세훈 시장은 50여개의 뉴타운개발지구 추가지정을 중단하고 재개발 사업에 대한 단계적, 순차적 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었다. 이대로 방치했다간 2009년, 2020년이 되면 10만 가구의 주택멸실 등으로 전세대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고됐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건설경기로 경제위기를 극복한다는 방향에서 재개발·재건축 규제완화는 물론, 뉴타운지구를 두 배 더 지정하고 소형주택, 임대주택 의무건설 비율 등의 규제도 모두 폐지했다. 서울시의 진단과 정면 배치됐던 것.
전셋값 폭등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정부는 전세자금 대출을 확대 보금자리주택 공급 등 몇가지 대안을 내놨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팽배하다.
가계빚이 현재 700조원을 넘는 현재 ‘빚’으로 남을 대출이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보금자리주택으로 전세가를 안정화하기엔 수년간을 기다려야 해 당장 전셋값을 올려줘야 하는 세입자한텐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도 개발제한 구역 소유주와 협상이 길어지면 공급시기는 예정보다 늦춰질 수밖에 없고 정부의 계획대로 보상이 이뤄진다 해도 서울시내 재개발 주민들이 이주할 수 있는 곳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어서 전세난 해소에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오피스텔을 주거용으로 전용하는 행위를 엄격히 막아왔던 정부가 다시 오피스텔을 ‘주거용’으로 사용하도록 하겠다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에 심각한 의구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도심의 원룸형 주택과 다세대주택 공급확대 정책이 장기적으로 필요한 정책이다. 하지만 이 또한 당장 발 등에 떨어진 세입자의 고통을 해결할 대안이 아니다. 지난 80~90년대 건설한 다세대, 연립주택지역이 주차, 도로난 등 난개발로 슬럼화 돼 다시 재개발 대상이 됐던 적도 있다.
이주수요 분산, 소형 임대주택 확대 돼야
내집마련정보사 양지영 팀장은 “정부 발표는 그동안 나왔던 대책의 답습으로 보이며, 단기적인 이주수요를 막는 등 현실적이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특히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재개발과 재건축 촉진 무드를 타고 기존 주택이 헐리게 될 경우 주택총량의 부족분을 메울 방법이 제시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재개발에 따른 대규모 주택 멸실에다 소형 임대주택 의무비율을 줄이거나 폐지하는 등 임대주택 공급까지 줄인 것이 최근 전세난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전세난을 당장 진정시킬 뾰족한 수는 없지만 중장기적으로 전세난 개발을 막기 위해 재개발· 뉴타운 이주 수요 분산, 소형 임대주택 확대 등의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재개발이나 뉴타운을 추진하는 각 구청은 구민들을 위해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사업을 추진하려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재개발이 한꺼번에 추진될 경우 이주 수요가 급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 114 김희선 전무는 “매년 재개발과 뉴타운 인허가를 조정해 이주 수요가 적절한 규모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2007년에 뉴타운, 재개발 사업에 대한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했다.
인구구성의 변화를 감안해 소형 주택 건설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급속한 노령화와 미혼가구 증가 등으로 1~2인 가구에 대한 수요는 급속히 늘고 있지만 최근 새로 지은 아파트들은 주로 중대형 위주로 분양되고 있다.
서울시 분석에 따르면 재개발 사업 전 전용면적 60m2 이하의 소형주택 비율은 평균 63%지만 재개발 후에는 그 비율이 30%로 급감한다.
부동산써브 함영진 부동산연구실장은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는 결국 전세시장의 수급난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소형 임대주택 확대 등 소형주택 공급을 늘려 수요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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