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자우환(識字憂患)이란 말이 있다. 글자를 아는 것이 오히려 화근이 된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자(字)자를 자(者)로 바꾸면 무엇을 아는
자가 오히려 화를 당하게 된다는, 보다 광범위한 뜻으로 변하지만 결국은 그 말이 그 말이다.
‘아는 것이 병이다’, ‘입만 놀리지 않으면 손해는 보지 않는다’는 따위의 말도 있다. 어설프게 아는 것이 병이며 어설프게 아는 것은
절대로 떠벌리지 말아야 한다. 쓸데없이 입을 놀려서 이득을 보는 경우란 거의 없으므로 말을 않으면 반타작은 된다. 자랑할 것이 따로 있고,
숨겨둘 것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언제나 명심해야 한다. 자랑이 자랑은커녕 욕이 되는 수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이것은 세상 만사 어디에나 해당되지만 특히 남녀 사이에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아는 것도 모르는 채, 알고도 모르는 채, 상대가 틀림없이
알고 물어도 실토를 해서는 안 될 경우에는 철저하게 잡아떼야 한다.
한 사내가 한낮에 외간 여자와 러브호텔에서 재미를 보다가 마누라한테 들켰다. 여자와 한 침대에 누워있는 것을 마누라가 두 눈으로 확실하게
보았다. 이런 경우에도 이 사내는 그 여자와는 아무 일이 없었다고 끝까지 우겨야 한다.
“공연히 넘겨짚지 마! 아무 일 없었어!”
“시뻘건 대낮에 남녀가 벌거벗고 한 침대에서 굴렀으면서도 아무 일 없었다고? 그 짓을 안 했다면 도대체 호텔 방에는 뭣하러 들어가?”
“누가 더 키가 큰가, 키를 재보려고.”
“키를 재는 데 왜 옷은 벗어?”
“기왕 시작한 일이라 몸무게도 재 봐야지...”
이런 경우에 마누라가 아무리 따지고 덤비고 화를 내고 할퀴어도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어야 한다. 믿든지 말든지, 그것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마누라의 마음 한 구석에는 혹시나 하는 어리석은 바람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뻑뻑 우기면서 거짓말을 했던 것이 참으로
현명한 처사였음을 알게 될 날이 결국은 온다.
시골에 사는 한 처녀가 시집을 가게 되었다. 그녀는 처녀 시절에 건너 동네에 사는 김 좌수의 아들과 눈이 맞아서 여러 번 진한 재미를
맛본 적이 있었다. 남녀는 소문이 나지 않게 조심하고 조심했지만 결국은 근동에 요상한 소문이 나돌았다.
처녀와 정혼한 총각은 반신반의했다. 사실인가, 헛소문인가. 그러나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으니 어찌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혼례식도 끝나고 신랑신부는 첫 밤을 치르게 되었다. 신랑은 다른 새신랑들이 다 그렇게 하듯 첫 행사를 위해서 새 각시의 옷을 벗기고
몸을 애무했다. 신부는 흥분되어 죽을 지경이면서도 숫처녀처럼 보이려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것도 못 느끼는 나무토막처럼 행세했다.
거기까지는 연기가 아주 좋았다.
그런데 그때 신랑의 손이 점점 아래쪽으로 내려오더니 잠시 신부의 문 앞에서 노니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참 그곳에서 손장난을 하던 신랑이
느닷없이 이상한 말을 했다.
”이 곳이 왜 이렇게 비좁지? 너무 비좁아서 그냥 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걸. 칼끝으로 입구를 살짝 째 버려야 일이 되겠어!”
신랑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차고 있던 패도를 끌러서 신부의 그곳을 쨀 시늉을 했다. 신부는 너무나 놀랬다. 칼로 짼다고? 그녀는
엉겁결에 이렇게 호소했다.
“건너 동네에 사는 김 좌수 댁 막내아들은 그곳을 째지 않고도 잘도 합디다. 그러니 그냥 해보십시다!”
신랑이나 신부가 아는 체 하다가 일을 망쳐 버린 경우이다. 남녀가 똑같이 바보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신부는 신랑이 아무리 칼을 들고 덤벼도
오리발을 내밀었어야 옳았고, 신랑은 애초부터 그런 꽤를 내지 말았어야 옳았다. 도대체 신부의 과거를 알아서 무슨 소득이 있다는 말인가.
그런 점에서는 신랑 역시 우환거리를 자초한 셈이다.
옛날에 어떤 동네에 점잖은 양반이 살았다. 점잖기는 하지만 너무나 지독한 꽁생원이어서 마누라 이외의 다른 여자에게는 눈 한번 돌린 적이
없었으므로 색의 세계에서는 백치나 다름없는 위인이었다.
이 점잖은 양반이 어쩌다가 여자 종과 관계를 맺었다. 평생 처음 해본 외도이므로 그에게는 엄청난 변혁이었다. 다른 친구들이 외도 자랑을
할 때마다 자기는 늘 할 말이 없어서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었는데, 이제야 할 말이 생겼으니 그 일을 어찌 자랑하지 않고 배기랴.
그 여종과의 맺은 한번의 관계에서 이 양반은 처음으로 보고, 처음으로 맛본 것이 많았다. 그것은 신선한 충격이기도 했다.
양반은 다음날 친구들 앞에서 자기가 체험한 것을 자랑하기 위하여 우선 서두를 꺼냈다..
”상것들은 이상하더란 말일세!”
”상것들이 이상하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도대체 상것들의 무엇이 어떻게 이상하다는 것인가?”
”내가 얼마 전에 어떤 여종과 재미를 본 적이 있어...”
친구들은 실망했다. 양반이 여종과 재미를 보는 것은 너무나 흔한 일인데, 그것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저토록 자랑을 할까. 하지만 워낙
꽁생원이 하는 말이라 이들은 그 다음 말을 듣고 싶어했다.
”그거야 흔한 일인데, 뭐가 그리 이상하다는 것인가?”
양반은 여전히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여종의 거웃이 무성하더란 말일세. 상것들의 여편네들은 그곳에도 털이
무성하니 그 아니 이상한가?”
그의 말을 듣고 친구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렇다면 그 양반의 아내는? 이렇게 되어 그 집 마나님의 그 곳에 털이 없다는 사실이 온
동네에 두루 퍼져서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었고, 급기야는 그것이 온 나라에 다 펴졌다. 평생 무모증인 마누라의 그것만 보아와서 여자의
그곳에는 본디가 거웃이 없는 것으로 잘 못 알았던 것도 유죄이고, 그렇게 어설프게 안 것을 떠벌린 것 또한 유죄이다. 이것이 식자우환이다.
자랑도 자랑 나름이고, 자랑할 것이 따로 있는 법이다.
인물이 너무나 못 생겨서 늦도록 시집을 못 가던 한 처녀가 어찌어찌 시집을 가게 되었다. 그 날이 있기까지 친정 어머니의 수고와 노심초사는
말 할 것도 없다. 그런 딸이 시집을 가게 되었으니 이에서 더 기쁜 일이 있으랴. 하지만 어머니는 딸이 신방을 치를 때까지, 아니 그
다음날 아침까지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신부가 너무 못 생겼다고 신랑이 첫날밤에 혹시 소박이나 놓지 않을지.
다행히도 다음날 아침까지 별일이 없기에 어머니는 조금은 마음을 놓았다. 이럭저럭 일이 무사히 끝나는 모양이구나!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다. 그래서 어머니는 다음날 아침, 딸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지난밤 신랑이 너의 얼굴을 보고 혹시 뭐라고 하지 않더냐?”
“아니요!”
“정말? 말은 없었지만 혹시 무슨 눈치라도…”
“처음에 내 얼굴을 볼 때는 별로 좋아하는 눈치는 아니었어요.”
“그래서?”
“그랬는데, 나중에 이불 속에서 합궁할 때는 칭찬이 대단했어요!”
“뭐라고 칭찬을 했는데?”
“당신의 얼굴은 그저 그런데, 이 맛은 유별나구려! 아주 유별나! 당신의 이 맛은 끝내 줘! 신랑은 그렇게 말하면서 무척 좋아하더라고요!
신랑이 그토록 좋아하니 걱정 마요!”
딸의 말을 들은 어머니도 좋아라 한다.
“그럴 것이야! 아무렴, 그렇고 말고! 우리 집 여자들의 그 맛이 유별나다는 소문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니까!”
그 집 여인들의 그 맛이 유별나다는 소문이 어찌 널리 퍼졌겠는가. 어머니는 그 마지막 자랑만은 하지 말았어야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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