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뉴스 이화순 칼럼리스트] 한국화가 박래현(1920~1976)은 그간 청각장애 천재화가 김기창(1913~2001)의 아내로 더 유명했다. 탄생 100주년을 맞은 박래현의 예술세계에 대한 재조명이 코로나팬데믹 속에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박래현, 삼중통역자>전시를 통해 누구보다 뜨거웠던 박래현의 삶과 예술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새해 1월 3일까지 덕수궁 전관에서 이어지는 이 전시는 1월 26일부터 5월 9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서 순회 전시를 계속한다.

전시명 ‘삼중통역자’란 박래현이 자신을 일컬어 했던 말로 알려져 있다. 언젠가 미국 여행에서 박래현은 여행가이드의 영어를 해석하여 다시 구화와 몸짓으로 김기창에게 설명해 주었는데, 여행에 동행한 수필가 모윤숙이 그 모습에 관심을 보이자 박래현은 자신이 ‘삼중통역자와 같다’고 표현했다.
박래현이 말한 ‘삼중통역자’는 영어, 한국어, 구화(구어)를 넘나드는 언어 통역을 의미하지만, 이번 전시에서의 ‘삼중통역’은 회화, 태피스트리, 판화라는 세 가지 매체를 넘나들며 연결지었던 그의 예술 세계로 의미를 확장하였다.
박래현은 식민지 시기에 일찍 유학을 떠날 정도로 장래가 촉망받던 화가였다. 평안남도 만석꾼의 딸로 부유한 집안의 딸답게 그에 대한 집안의 기대도 컸다. 요즘의 미국 유학보다 더 가기 힘들었던 당시 일본 유학 신여성으로 일본화를 수학했다.
그는 유학중이던 1943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단장’으로 총독상을 받았다. 해방 후에는 한국적이고 현대적인 회화를 모색하였다. 박래현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운보 김기창과 결혼한다. 당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세간의 화제였다. 아마도 금지옥엽으로 이 땅의 최고 여류화가를 키워보겠다던 가족에겐 청천벽력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래현은 “결혼 후 계속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자”고 결심했다고 한다.
결혼 후 박래현은 자녀 넷을 낳아 주부로서, 아내로서, 또 작가로서의 쉽지 않은 삶을 살았다. 특히 어렵사리 선택한 결혼이었기에 작가로서의 삶도 포기 할 수가 없었다.

박래현은 동양화의 재료와 기법을 넘어 세계 화단과 교감할 수 있는 추상화, 태피스트리, 판화를 탐구했다. 40대 중반 미국으로 가 뉴욕 프랫 그래픽아트센터에서 공부했고, 밥 블랙번 판화연구소에서 본격적으로 판화 작업을 했다. 그는 특히 동판화를 중심으로 다양한 기법들을 융합하고 여러 주제의 작품을 통해 한국 화단에 실험적이고 선구적인 판화 작업을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섬유예술이 막 싹트던 1960년대에 박래현이 선보인 태피스트리와 다양한 동판화 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1970년대에 선보인 판화 작업들은 20세기 한국 미술에서 선구적인 작업으로 기록될 만하다.
이러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 박래현은 천재 화가 운보 김기창의 아내로 더 익숙한 게 사실이다. ‘박래현’이라는 이름대신 ‘청각장애를 가진 천재화가 김기창의 아내’로 통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김기창의 아내가 아닌 예술가 박래현의 성과를 조명함으로써 그의 선구적 예술작업이 마땅히 누렸어야할 비평적 관심을 모은다.

박래현은 일본 유학 중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총독상을 받은 것 이외에도 해방 후에는 서구의 모더니즘을 수용한 새로운 동양화풍으로 1956년 대한미협과 국전에서 ‘이른 아침’, ‘노점’으로 대통령상을 연이어 수상하며 화단의 중진으로 자리잡았다.
박래현은 1960년대 추상화의 물결이 일자 김기창과 함께 동양화의 추상을 이끌었고, 1967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방문을 계기로 중남미를 여행한 뒤 뉴욕에 정착하여 판화와 태피스트리로 영역을 확장하였다.
미국에서 7년 만에 귀국하여 개최한 1974년 귀국판화전은 한국미술계에 놀라움을 선사했다. 그러나 1976년 1월 간암으로 갑작스럽게 타계함으로써 대중적으로 제대로 이해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박래현, 삼중통역자>전은 완벽한 기술 습득을 통해 다양한 표현을 구사했다. 마침내 기술을 초월하여 하나의 예술로 통합시킨 박래현의 도전을 따라, 1부 한국화의 ‘현대’, 2부 여성과 ‘생활’, 3부 세계여행과 ‘추상’, 4부 판화와 ‘기술’로 구성됐다.
1부 한국화의 ‘현대’에서는 박래현이 일본에서 배운 일본화를 버리고, 수묵과 담채로 당대의 미의식을 구현한 ‘현대 한국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조선미전 총독상 수상작 ‘단장’, 대한미협전 대통령상 수상작 ‘이른 아침’, 국전 대통령상 수상작 ‘노점’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2부 여성과 ‘생활’에서는 화가 김기창의 아내이자 네 자녀의 어머니로 살았던 박래현이 예술과 생활의 조화를 어떻게 모색했는지 볼 수 있다. ‘여원’ ‘주간여성’ 등 1960~1970년대를 풍미했던 여성지에 실린 박래현의 수필들이 전시되어 생활과 예술 사이에서 고민했던 박래현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3부 세계 여행과 ‘추상’은 세계를 여행하고 이국 문화를 체험한 뒤 완성해 나간 독자적인 추상화의 성격을 볼 수 있다. 1960년대 세계 여행을 다니며 박물관의 고대 유물들을 그린 스케치북들을 통해 박래현의 독자적인 추상화가 어떻게 완성되었는지 함께 추적했다.
4부 판화와 ‘기술’에서는 판화와 태피스트리의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동양화의 표현영역을 확장하고자 한 박래현의 마지막 도전을 조명했다. 박래현이 타계하기 직전에 남긴 동양화 다섯 작품이 한자리에 함께 공개되며, 판화와 동양화를 결합하고자 했던 박래현이 제시한 새로운 동양화를 감상할 수 있다.
<박래현, 삼중통역자>전은 전시를 기획한 김예진 학예연구사의 설명으로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다. 또 덕수궁관 전시 종료 후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서 순회 개최예정이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오랫동안 박래현의 작품을 비장(秘藏)했던 소장가들의 적극적 협력으로 평소 보기 어려웠던 작품들이 대거 전시장으로 ‘외출’했다”며, “열악했던 여성 미술계에서 선구자로서의 빛나는 업적을 남긴 박래현 예술의 실체를 조명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