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릿 대처, 로널드 레이건, 고이즈미 준이치로... 이들의 공통점은? 과감한 경제개혁을 통해 최고의 국가지도자로 명성을 날렸다는 점이다. ‘경제 대통령’을 자임해 온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표방하는 정치색과 비슷한 면이 많아 이들의 성공요인이 새롭게 관심을 받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경제개혁을 주도한 국가지도자 6인’ 보고서를 통해 “경제개혁을 주도한 국가지도자는 시대적 흐름을 통찰하고 국가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새로운 틀을 창조했다”고 밝혔다. 이념보다는 ‘실용’, 정치보다 ‘경제발전’에 집중, 경제개혁에 성공했다.
위기에 개혁적 리더쉽 발휘
대처(1979∼1990년 재임)와 레이건(1981∼1988년), 뤼버르스(1982∼1994년) 등은 2차 오일쇼크로 스태그플레이션이 만연했던 1980년 전후에 집권해 개혁적 리더십을 발휘했다. 덩샤오핑(1978∼1997년)과 고이즈미(2001∼2006년), 리콴유(1959∼1990년) 등도 기존 체제에 한계가 오고 개혁 지체와 사회, 경제적 혼란 속에 개혁을 추진했다.
연구소에 따르면 마거릿 대처는 경기침체와 전국적 파업이 만연하던 1970년대 말의 상황을 ‘영국병’으로 규정하고 개혁의 필요성과 신자유주의적 비전을 제시했다. 그 이후 제 2차 세계대전 이래 영국정치의 전통이던 ‘합의정치’의 틀을 깨고 민영화와 노사안정에 주력함으로써 영국경제를 본격적인 성장궤도로 진입시켰다.
로널드 레이건은 작은 정부와 감세정책을 통해 오랜 기간 미국경제의 발목을 잡아 온 공공부문의 비효율과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하고 물가안정과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잃어버린 10년의 종식’에 대한 국민적 여망을 바탕으로 취임한 후 우정성 민영화 등 과감한 정부개혁과 행정혁신을 주도함으로써 일본경제가 경기침체에서 벗어남은 물론 경제의 주도권을 ‘궁’에서 ‘민간’으로 이양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덩샤우핑(鄧小平)은 체제경쟁이 한창이던 1970년대에 사회주의 체제의 한계를 인식하고 개혁·개방을 주도했다. 그는 경제발전에 걸림돌이 되어 온 이념논쟁을 종식시키고, 경제발전을 국정의 최우선과제로 채택하여 정치적 안정을 확보함은 물론 경제의 장기적 성장 기반을 구축했다. 리콴유(李光曜)는 싱가포르가 처한 지정학적 현실을 토대로 ‘사회의 엄정한 기강 확립’과 ‘아시아 금융·무역의 허브’라는 장기비전을 향해 국가적 역량을 결집시켰다.
그는 냉철한 판단력과 강력한 실천력을 바탕으로 경제개발청(EDB)과 부패행위조사국(CPIB)를 설치한 후 그 운용과정에서 자율·개방과 규율·통제를 적절히 조화함으로써 경제개발과 부패척결이라는 목표를 모두 달성할 수 있었다.
루드 루버스는 정부, 기업과 가계가 모두 심각한 경제난에 직면해 있던 1980년대 초 네덜란드 수상으로 취임하여 정부의 솔선수범과 노사 간 대화를 통해 사회적 대타협을 이끌어 내는데 성공함으로써 네덜란드가 ‘강소국(强小國)’의 대표주자가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경제개혁을 성공으로 이끈 국가지도자들의 공통점을 “시대적 조류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국가적 위기 징후를 진단하고, 작은 정부와 시장기능 확대를 개혁방향으로 설정했다”고 분석하고 “국가비전 제시와 국민설득을 통해 광범위한 참여를 이끌어 냈고, 이념과 정치를 넘어 실용과 경제 어젠다에 집중하면서 단호한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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