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기술의 진보는 번영을 가져다 주는 것일까? 25년간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경제 성장, 고용,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온 저자가 권력이 어떻게 기술 발전의 방향을 ‘선택’하는지, 그리고 테크놀로지가 어떻게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를 제시한다.
경제와 역사에 대한 대담한 재해석
기술이 발전하면 모든 이들의 생활 수준이 높아질 것이라는 게 기존의 경제 상식이었다. 오랜 시간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기술의 진보가 직접적으로 자본이나 노동의 생산성을 높인다고 가정해 왔다. 기술 발전의 병폐는 ‘사소한’ ‘부차적인’ 문제들로 취급됐고 또 다른 과학 기술과 인류의 현명함이 해결해 주리라고 믿었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이 같은 뿌리 깊은 통념에 전면으로 반박하며, 기술 진보로 일궈낸 번영이 결코 자동적인 과정이 아니었으며, 어떻게 하면 우리가 기술 발전의 경로를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선택’ 할 수 있는지 대담한 통찰을 제공한다.
기술 발전의 방향을 정하는 집단은 소수의 엘리트층 및 권력가이고, 진보로 인한 풍요는 그들의 주머니를 불린다. 이들은 언제나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비전을 설정해 왔고, 그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공동의 이익이라는 대의를 앞세워 수많은 이들을 뒤로 물러나게 하고 희생시켰다.
소셜미디어가 떠오를 초기에는 부패와 폭력을 폭로하고 지혜로운 정치 담론의 장을 이루어 민주주의에 이로운 영향을 미치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지금은 가짜 정보를 퍼 나르고 극단주의자들의 혐오 선동이 판치는 온상이 됐다. ‘페이스북’은 플랫폼에 무분별하게 업로드되는 유해한 콘텐츠들에 대해 책임지지 않았고, 오히려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상위 노출되도록 알고리즘을 수정해 거짓 정보가 더 빠르게 확산되고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지는 데 일조했다.
중국 정부는 감시를 위한 AI 기술에 막대하게 투자하고 있다. 혹시 모를 반란이 발생하는 것을 예방한다는 이유로 사적인 데이터를 방대한 규모로 수집해 분석할 것을 주요 테크 기업에 지시해 사람들의 사회적 활동을 통제하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정보를 즉각적으로 검열하고 삭제해 대중들의 접근을 차단한다.
‘아마존’과 같은 거대 기업에서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노동자를 감시하고 업무 일정을 엄격하게 관리한다. 어느 정도의 모니터링은 고용주의 합당한 권한일 수 있다. 하지만 고도의 감시 환경은 노동자를 로봇으로 전락시키고 무리한 업무 일정과 작업 기준을 맞추느라 위험천만한 상황을 초래한다. 실제로 아마존 물류센터에서의 사고 발생률은 전체 평균보다 두 배나 높았으며, 업무량이 특히 집중되는 피크 시즌에는 더욱 사고가 잦았다.
‘멋진 신세계’가 펼쳐질 것인가
이 책은 지난 1,000년의 역사를 정치적·경제적·사회적으로 살펴보며, 기술 발전이 공유된 번영과는 거리가 먼 정반대의 결과를 불러온 순간들을 포착하고 있다. 개선되고 체계화된 농업 기술은 당시 인구의 90퍼센트에 가까운 농민들에게는 부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중세 말 바닷길이 열리고 대서양 교역을 통해 유럽의 일부 사람들은 막대한 부를 축적했으나, 이면에는 그 배로 운송된 수백만 명의 노예가 있었다. 산업혁명 시기 혁신적인 기계의 발명은 공장의 생산량을 크게 늘려주었으나 노동자들은 오히려 더 착취당하고 억압적인 환경으로 내몰렸다. 기술의 발전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 않는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멋진 신세계’가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