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화가이자 판화가인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France, 1871~1958)는 색채의 연금술사이자 20세기의 유일한 종교화가로 불린다.루오는 하층민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테마로 많은 그림을 그렸으며 그들의 가난과 고통을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연결시켰다. 원색적이면서 거친 필치감, 파격적인 변형으로 성스러우면서 동시에 인간적인 예수님의 얼굴을 그려 세계인들의 존경을 받았다.인간애와 예술에 대한 열정, 자유로운 영혼과 종교에 대한 신념, 순수함과 신비로움이 복합적으로 드러나는 그의 그림은 어느 화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면모로 큰 감동을 준다
20세기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한 명의 작가를 손꼽으라면 단연 스페인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가 연상될 것이다. 한 평생 회화, 조각, 판화, 드로잉, 도자기 등의 다양한 매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 피카소. 그는 다각적 시점으로 바라본 사물을 한 화면에 펼쳐 표현하는 획기적인 미술 경향인 입체주의(cubism)를 탄생시켰고 그 후에는 조각적인 견고함이 특징인 고전주의적 양식 (classicism)그리고 인간의 무의식 표현을 추구하는 초현실주의(surrealism)로 표현하는 등 그의 새로운 표현에 대한 갈망과 열정은 그가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식을 줄 몰랐다. 또한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예술적 영감의 원천을 수많은 여인들에게서 찾았다는 여성편력 사실 역시 널리 알려져 있다.천재 화가 피카소는 벌써 십대의 젊은 나이에 완벽한 사실적 묘사력을 갖추�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Paris)는 근대화 물결의 선두에 선 아방가르드 예술의 중심지로 유럽 전역은 물론 전 세계의 예술가들이 몰려드는 보다 진취적이며 진실된 예술표현을 자유로이 펼칠 수 있는 꿈의 도시였고, 여기 아방가르드군 중에 프랑스 작가들이 유독 많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기 소개하는 드렝과 위트리오 모두 프랑스인들로 각자 본인의 독창성과 개성을 유지하며 새로운 조형적 표현 추구의 선두에 섰던 뛰어난 작가들이다.앙드레 드렝은 파리 카리에르 아카데미에 수학하며 야수파 작가들인 앙리 마티스(H. Matisse, 1869-1954) 그리고 모리스 블라멩크(M. Vlaminck, 1876-1958)와 친분을 쌓았고 이 패기에 찬 젊은이들은 기존의 아카데미즘, 즉 자연에 충실한 사실적 묘사를 버리고 사물의 본질, 즉 ‘자연’에 보다 가까운 표현을 추구하는데 뜻을 같이 하였다. 말
19세기는 고전주의의 절제된 균형미와 우아함이 특징인 아카데미즘(academism)이 주류를 이룬 시대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이 시대는 가장 다채롭고 실험적인 예술사조들이 등장하였는데, 이들은 낭만주의, 상징주의, 표현주의, 인상주의 등 다양하다. 이는 미술(예/ 들라크루아) 뿐 아니라, 문학(예/ 괴테), 음악(예/ 베토벤, 슈베르트)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발달했다. 그 중 낭만주의(romanticism)는 18세기말에서 19세기 중엽까지 꽃핀 예술사조로, 절제된 고전주의의 엄격한 틀을 넘어 억압된 격정적인 감정의 분출과 이국적 취향을 추구하였다.젊은 여인과 어린 아이는 생각하는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19세기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뎅의 낭만주의적 성향이 잘 드러나는 걸작이다. 이탈리아 여행 중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B. Michelangelo, 1475-1564)의 조각�
살아 꿈틀거리는 붓터치의 정열적인 해바라기 그림으로 널리 알려진 빈센트 반 고흐. 시골목사였던 그의 아버지를 따라 목회자의 꿈을 안고 목사가 되려다 좌절한 그가 깊은 고민 끝에 비로소 ‘화가’의 길을 선택하게 된 것은 그의 삶의 본질적인 가치관이 바뀐 것이 아니라 ‘영혼이 담긴 진실 된 그림’이야말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또 다른 길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삼십대 초반인 1885년 그의 고향인 네덜란드를 떠나 벨기에의 대도시 안트웨르펜(Antwerpen)에 정착하여 수계월간 왕립미술학교에서 드로잉 및 회화 수업을 받았는데, 이는 그가 평생 받은 유일한 미술 교육이었고, 1890년 불과 37세의 젊은 나이에 권총자살로 삶을 마감할 때 까지 고통스러운 생활고와 지독한 고독과 싸워가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풍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고된 현실
19세기 중후반 전개된 프랑스 미술은 수세기를 걸쳐 전해 내려오는 균형, 절제, 우아미(優雅美)를 추구하는 고전주의(Classicism)의 전통을 기초로 한 아카데미즘(Academism: 전통과 권위를 중시하는 학파)에 기초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과학, 광학, 카메라의 발명 등의 사건은 기존의 회화적 전통의 틀을 깨고 새로운 표현을 추구하는 인상주의, 낭만주의 등의 다양한 사조가 등장하게 큰 영향을 주었지만, 화단 전반을 지배한 것은 갈색톤의 차분하고 절제된 사실적 표현을 선호하는 고전주의가 주를 이루었다. 앙리 팡텡 라투르는 고전의 사실주의적 표현과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있으면서도 ‘인상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1883)의 대담한 붓터치를 수용함으로써 전통과 현대의 만남에서 이상적인 화합을 이루어낸 화가로 높이 평가된다. 내향적인 성향의 화가, 팡텡 라투르는 특히 고요한 실내에서 펼쳐지는 인물들의 섬세한 심리 묘사와 특유의 정적인 분위기 연출로 널리 사랑받는다.17세기 플란더스(Flanders: 오늘의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지방) 바로크미술의 거장인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160
16세기 이탈리아는 르네상스의 휴머니즘(Humanism, 인본주의)을 바탕으로 한 새롭고 역동적인 물결의 중심에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하나의 나라로 통일된 모습이 아니라 공작, 군주들이 지배하는 공국(公國) 형태로 존재했고, 당시 정치, 경제, 문화를 화려하게 꽃피운 대표적인 도시가 바로 피렌체(Firenze)이다.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아르노강을 중심으로 발달한 피렌체 문화의 풍요와 여유는 실로 감탄을 자아내는 것이었다. 북유럽 무역의 중심에 벨기에의 안트웨르펜(Antwerpen)과 독일의 뉘른베르크(Nuremberg)가 있다면 남유럽의 중심은 피렌체(Firenze)였고, 특히 피렌체의 은행가 집안이자 섬유산업으로 부흥한 메디치(Medici)가의 활약은 단연 지배적이었다. 기업가로써 예술가 후원을 적극적으로 한 메디치가(家)는 가문의 부와 영광을 과시하기 위하여 당대의 훌륭한 예술가들을 후원하였고, 그들의 아름다운 궁과 별장들을 장식하게 하였다. 메디치가 후원한 예술가들 중 대표적 인물로는 단연 부오나로티 미켈란젤로(Buonarroti Michelangelo, 1475-1564)를 들 수 있다. 엘레오노라 공작부인의 흉상은 바로 이 메디치 가문의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