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우동석 기자] 정년은 지나 안정적 수입은 기대할 수 없는데 한창 팔팔할 때 자식들 공부시키느라 진 빚을 아직 갚지 못했다.
자녀의 교육비와 주택담보대출 등으로 생애 주기에 걸쳐 쌓인 가계부채는 50대에 이르러서야 줄어들기 시작했고, 가진 자산이라곤 살고 있는 집 한 채가 전부다. 우리 주위에서 평범하게 볼 수 있는 60대 가장의 자화상이다.
고령층이 돼서도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는 가구가 늘어나면서 자칫 이들이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취약점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해지고 있다.
◇ 저축률 높아야 할 40대에 교육비 지출 가장 커
18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고령층 가계부채의 구조적 취약성'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60대 이상 고령층의 소득 대비 가계부채 상환 부담은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주요국 중 가장 심각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60대 이상 고령층의 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전 연령층보다 높은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여타 국가보다 자녀 교육비를 지나치게 많이 지출하는 한국의 소비행태 탓이다. KDI가 지난해 내놓은 '연령별 소비성향의 변화와 거시경제적 시사점'을 보면 연령별 소비성향은 소득이 높지 않은 20~30대에 높았다가 고소득을 구가하는 40~50대에 저축증가로 낮아지고 노년으로 접어들면서 다시 높아지는 U자 형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소득이 가장 높은 40대 가구의 평균소비성향이 오히려 높게 나타나는 W자를 그리고 있어 저축을 하거나 빚을 갚을 여력이 되지 않는다. 이 때가 자녀의 사교육비가 가장 많이 지출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40대는 처분가능소득의 약 14%에 달하는 돈을 교육비로 집중한다. 2%에 불과한 미국에 비해 약 7배나 많은 수치다.
◇은퇴 눈 앞에 둔 50대 돼서야 부채 규모 줄이기 시작
사정이 이렇다보니 빚을 줄여나가야 할 시기도 늦어진다. 미국은 40대 중반부터 부채를 축소시키기 시작하는데 우리는 이보다 약 10년이 늦은 50대가 돼서야 빚의 규모를 줄여나간다.
법정 정년퇴직 기준이 60세로 연장된다지만 '사오정', '오륙도'라는 말이 보편화된 한국 사회에서 50대가 됐다는 것은 직장에서 떠날 날이 멀지 않았음을 뜻한다.
고액연봉을 받는 일부 임원들을 빼고는 지금까지 받았던 돈보다 크게 적은 돈을 받고 다른 직장으로 옮겨야 하거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자영업자가 돼 그나마 있던 노후자금을 까먹거나 더 큰 빚을 지게될 가능성이 높다.
통계청의 '2015년 경제활동인구조사(근로형태별 및 비임금근로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10년 동안 버틴 자영업자의 상존률은 16.4%로 5명에 1명 꼴도 되지 않는다.
◇현금 없는 60대 이상 부동산 자산 처분하면 주택시장 추세적 하락
부동산자산이 우리나라 전체 국부의 7할이 넘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고령층의 부채 부담은 부동산 가격 하락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우리보다 앞서 인구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처럼 주택 가격이 폭락할 것이라는 주장에는 여러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다만 빚을 상환할 여력이 없는 고령층이 큰 비중을 차지해 이들이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매물을 내놓는 경우가 많아진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송인호 KDI 연구위원은 "한국은 다른 나라와는 달리 60대 이상의 자산을 분석해 봤을 때 집 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부동산 자산 비중이 높다"며 "고령층에 현금 흐름이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이 한꺼번에 자산을 처분한다면 부동산 시장의 추세적 하락은 피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송 연구위원은 "부동산 경기 사이클로 인한 폭락보다 더 무서운 것이 추세적 하락"이라며 "국부의 대부분이 부동산인 상황에서 부동산 가치가 하락하면 거시경제 전반에 걸쳐 부정적 요인이 나타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