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종근 기자]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이 임시주주총회에서 통과됨에 따라 삼성 지배구조의 최정점이자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담당할 새로운 '삼성물산(통합법인)'이 출범하게 됐다. 이번 합병으로 통합 삼성물산 최대주주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장악력이 한층 커지고 지배구조 개편이 9부 능선을 넘어서면서 다음 시나리오에 관심이 쏠린다.
삼성물산은 17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오는 9월 통합법인이 출범한다.
순환출자 고리는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제일모직에서 삼성물산(합병)→삼성생명→삼성전자로 단순화됐다. 특히 이 부회장은 이번 합병으로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했다. 현재 이 부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0.57%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번 합병으로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4.1%를 추가로 확보하고 이건희 회장의 지분 3.38%를 상속받는다. 대주주 일가의 지분을 합하면 10% 이상의 삼성전자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
삼성의 지배구조에서 삼성생명이라는 고리 하나가 빠져나가더라도 두 자릿수 지분율을 유지하면서 삼성전자를 지배할 수 있게 된다.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공세로 적잖은 진통을 겪은 삼성으로서는 앞으로 신중하게 지배구조 개편작업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이번 합병으로 향후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로 삼성전자와 삼성SDS의 합병, 지주회사의 전환, 삼성SDS와 삼성SDI의 합병, 부품 회사간의 합병 등이 거론되고 있다.
삼성 측은 지주회사의 전환과 삼성전자-삼성SDS의 합병에 대해서는 부인한 상태다. 지주사 전환을 위해서는 수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지주사는 공정거래법에 따라 상장 자회사는 20% 이상, 비상장 자회사는 4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또 자회사는 증손회사 지분 100% 가져야 한다.
또 이번 합병으로 사실상 합병 법인이 지주사 역할을 하면서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지배력을 확대했기 때문에 추가 재원이 필요한 지주사 전환 작업을 서두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주사 전환이 그룹 경영권 승계에 유리한 만큼 장기적으로는 삼성 역시 지주사 전환을 시도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삼성전자와 삼성SDS의 합병도 지배개편 시나리오 중 하나다. 이는 삼성물산이 삼성SDS 지분 17.08%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SDS와 삼성전자가 합병하게 되면 통합법인의 삼성전자 지분이 4.1%에서 신주 발행 여부에 따라 5.3~5.4%까지 확대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회사의 합병도 쉽지 않다. 삼성SDS는 2020년까지 매출액을 20조원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비전 2020'을 발표했다. 삼성전자에 합병되면 삼성SDS 경영 정상화를 신뢰했던 투자자들과 충돌하게 된다.
최근에는 삼성SDS와 삼성SDI가 합병하는 시나리오도 제기 됐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삼성전자 지분을 확보한 뒤, 삼성SDS와 삼성SDI의 합병을 통해 삼성전자의 지배력이 없거나 약한 관계사 지분 확보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이다.
업계 관계자는 "진통을 겪은 삼성이 주주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또다시 무리하게 합병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한동안 속도를 냈던 사업 재편도 다소 조절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