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종근 기자]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그룹 수장으로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이건희 회장의 와병으로 사실상 삼성그룹을 이끌고 있는 만큼 수장으로서 리더십을 행사한 것이다. 이 부회장은 대국민 직접 사과를 통해 책임지는 자세를 보임으로써 삼성서울병원, 나아가 삼성그룹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달래려고 했다.
이 부회장은 23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서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를 확산시킨데 대해 국민에게 사과했다.
지난 18일 삼성서울병원을 방문해 현장을 점검하고 국민에게 사과한 데 이어 두 번째다. 삼성서울병원 방문 당시 사과는 자료였으나 이날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직접 고개를 숙였다는 점에서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부회장이 공식 석상에서 삼성그룹을 대표해 발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삼성그룹의 수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은 이건희 회장이 지난 2008년 4월 '삼성 특검' 관련 사과 이후 7년여 만에 처음이다.
이 부회장이 직접 진솔한 자세로 사과함으로써 부정적 여론을 차단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이 부회장은 삼성서울병원의 초기대응 실패로 메르스 확산이 이어졌다는 지적이 이어질 때도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전면에 나서 진두지휘하기보다는 신중한 태도를 견지했다.
그러나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국민 여론이 점점 악화하고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까지 나서 이 부회장을 몰아세우자 사태 진화를 위해 직접 나섰다.
하태경 의원은 22일 "삼성병원을 통한 '대리 사과'에 실망했다"며 "이 부회장이 국민에게 직접 사과하고 삼성그룹 차원에서 후속대책을 발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도 지난 19일 삼성서울병원 정문 앞에서 "일류병원을 추구해 온 삼성서울병원은 환자 안전에 무방비였으며 감염예방과 환자안전에서 낙제였다"며 "이재용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이 사태 수습 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단상에 올라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이 부회장은 "국민과 유족, 환자 모두에게 죄송하다"며 거듭 사과했다.
그는 "관계 당국과 함께 메르스 사태가 이른 시일 안에 해결되도록 힘을 모으고, 메르스 사태가 수습되면 병원을 대대적으로 혁신하겠다"고 다짐했다. 음압 병실을 확충 등 진료 환경 개선책도 제시했다.
이번 사과문은 이 부회장이 직접 검토하며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은 이날 "우리 병원에서 메르스 환자가 많이 발생해 사과를 여러 번 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이재용 부회장도 삼성생명 공익재단 이사장으로서 국민에게 큰 걱정 끼쳐드린 점에 대해 사과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그룹이 경영권 승계 작업을 진행 중인 상황에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합병 반대, 메르스 사태 등 예상치 못한 돌발 사태가 빚어져 이 부회장으로서는 몹시 당황스러웠을 것"이라며 "이 부회장의 발표문을 보면 대국민 사과를 하기까지 적잖은 고민과 자기반성이 엿보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