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종근 기자]이준석(70) 세월호 선장이 항소심에서살인죄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이씨를 제외한 나머지 승무원 14명에 대해서는 직급에 따른 일률적 형량이 아닌 승객 구조를 위한 조치 등 사고 전·후 행적과 승선 경력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됐으며, 그 결과 1심보다 낮은 형량이 선고됐다. 이는 사고 당시 선박 최고 책임자였던 선장 이씨의 무한책임을 물은 것으로 해석된다.
◆살인의 미필적 고의 인정
광주고법 제5형사부(부장판사 서경환)는 28일 오전 10시 법정동 201호 법정에서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씨와 승무원 14명, 기름 유출과 관련 청해진해운 법인 대표 김한식(73)씨에 대한 선고공판을 열었다.
재판부는 징역 36년의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이씨에게 살인죄를 적용,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선장으로서의 막대한 권한과 책임에 비춰 400여명의 승객들이 익사할 수 있다는 사정을 알면서도 골든타임에 퇴선방송 등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먼저 탈출했다"며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했다.
이어 "이씨는 승객 등의 인명을 구조하기 위한 조치를 결정할 수 있는 법률·사실상 유일한 권한을 가진 지위에 있었다"며 "권한과 지위는 누구에 의해서도 대신 이행될 수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퇴선 이후에도 승객 구조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해경정(123정)의 선실로 들어가 버렸다"며 "심지어 사고 현장을 떠나 진도의 병원에서도 신원이 밝혀질 때 까지 스스로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씨의 구호조치 포기와 승객 방치, 퇴선행위(부작위) 등은 살인의 실행행위(작위)와 동일하게 평가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며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또 "이씨의 행위는 마치 고층 빌딩 화재현장에 구조를 위해 출동한 소방대장이 빌딩 내 사람들의 구조를 외면한 채 옥상의 구조헬기를 타고 먼저 빠져나온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아울러 "야간 병원 응급실을 지키던 유일한 당직의사가 생명이 위독한 환자를 방치하고 병원에서 빠져나오는 행위에 견줄만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간부 승무원으로서 이씨와 함께 살인죄로 기소된 1등 항해사 강모(43)씨, 2등 항해사 김모(47)씨, 기관장 박모(54)씨에 대해서는 선장의 지휘·감독을 받는 선원에 불과한 사정 등을 고려, 1심의 무죄(살인죄) 판단을 그대로 유지했다.
◆“선장 퇴선명령 없었다”
그 동안 이들의 재판에서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던 퇴선명령 유무와 관련, 재판부는 "선장과 선원들이 세월호를 탈출하는 순간에도 여전히 승객들에 대해 선내에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퇴선방송 지시에 수반되는 조치가 아무것도 이뤄진 것이 없었다"며 "퇴선방송 지시가 있었다고 진술하는 선장과 1·2등 항해사 등의 진술 또한 신빙성이 없다"고 덧붙였다.
즉 해경이나 주변 상선 등 구조세력에 대한 승객 구조 요청, 비상부서 배치표상 퇴선 상황에 따른 조치, 승객들의 퇴선 여부에 대한 확인 등이 이뤄져야 함에도 불구, 선장·승무원 탈출 당시 이 같은 조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승객들이 선내에 대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퇴선방송 지시도 없이 퇴선한 사실이 알려질 경우 극심한 비난에 노출될 것을 우려, 이를 은폐하려는 내심의 동기가 강했을 것으로 보인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2등 항해사 김씨가 오전 9시37분께 진도VTS와 '지금 탈출 할 수 있는 사람들만 일단 탈출을 시도하라고 방송했는데' 라고 교신한 사실에 대해 "1심은 이 같은 교신을 유력한 퇴선방송 지시의 근거로 보고 있지만 교신과 달리 승객들에 대한 퇴선방송은 실제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탈출할 수 있는 사람들'만 일단 '탈출을 시도' 하라는 표현은 '승객 전체'에 대해 이뤄져야 하는 '퇴선명령'과 부합하지 않은 표현이다"고 지적했다.
◆대각도 조타 과실 불인정
재판부는 1심과 달리 사고 당시 당직 항해사와 조타수의 조타과실(대각도 조타)을 인정하지 않았다.
조타과실은 1심에서 선박개조에 따른 원시적 복원성 악화, 화물 과적·고박불량과 함께 세월호 침몰의 3가지 원인으로 제시됐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당시 조타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관련 선원 진술' '평소에도 조타를 조심히 했으며 달리 대각도 조타를 쓸 상황이 아니었던 점' '조타기의 고장이나 엔진, 프로펠러의 오작동 가능성' 등까지 고려한다면 이들에게 업무상 과실의 형사책임을 지우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피해가족 “지나친 선처”
세월호 희생자 유족 4명은 이날 오전 10시 수원지법 안산지원 중계법정에서 이들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을 지켜봤다.
초췌한 모습으로 방청석에 앉은 유족들은 재판이 시작되자 굳은 표정으로 화면을 응시했다.
선장 이씨 등 피고인들의 얼굴이 화면에 등장하자 긴 한숨을 내쉬며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다.
재판부가 판결문을 읽어내려가자 유족들의 한숨은 더욱 깊어졌다.
특히 승무원들에 대한 감형이 줄을 잇자 단원고 학생의 한 어머니는 거부감을 드러내며 화면 밑으로 고개를 떨구기도 했다.
이어 재판부가 이씨의 살인 혐의를 인정하자 유족들의 눈시울은 붉어지기 시작했다.
판결문을 읽어내려가던 부장판사가 단원고 학생들의 희생을 언급하며 울먹일 땐 방청석에서도 소리없는 흐느낌이 연이어 흘러나왔다.
광주고법을 찾은 피해자 가족들 역시 선고 과정 내내 긴 한숨을 내뱉으며 판결에 대한 불만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항소심 검찰 구형 및 법원 선고형량
▲선장 이준석(70), 사형, 무기징역. ▲ 1등 항해사 강모(43)씨, 무기징역, 징역 12년. ▲ 2등 항해사 김모(47)씨, 무기징역, 징역 7년. ▲ 기관장 박모(54)씨, 무기징역, 징역 10년. ▲ 3등 항해사 박모(26·여)씨, 징역 30년, 징역 5년. ▲ 조타수 조모(56)씨, 징역 30년, 징역 5년. ▲ (견습)1등 항해사 신모(34)씨, 징역 20년, 징역 1년6개월. ▲ 조타수 박모(60)씨, 징역 15년, 징역 2년. ▲ 조타수 오모(58)씨, 징역 15년, 징역 2년. ▲ 1등 기관사 손모(58)씨, 징역 15년, 징역 3년. ▲ 3등 기관사 이모(26·여)씨, 징역 15년, 징역 3년. ▲ 조기장 전모(62)씨, 징역 15년, 징역 1년6개월. ▲ 조기수 이모(57)씨, 징역 15년, 징역 3년. ▲ 조기수 박모(60)씨, 징역 15년, 징역 3년. ▲ 조기수 김모(62)씨, 징역 15년, 징역 3년.
◆1심 검찰 구형 및 법원 선고형량
▲ 선장 이준석 사형, 징역 36년. ▲ 1등 항해사 강씨, 무기징역, 징역 20년. ▲ 2등 항해사 김씨, 무기징역, 징역 15년. ▲ 기관장 박씨, 무기징역, 징역 30년. ▲ 3등 항해사 박씨, 징역 30년, 징역 10년. ▲ 조타수 조씨, 징역 30년, 징역 10년. ▲ (견습)1등 항해사 신씨, 징역 20년, 징역 7년. ▲ 조타수 박씨, 징역 15년, 징역 5년. ▲ 조타수 오씨, 징역 15년, 징역 5년. ▲ 1등 기관사 손씨, 징역 15년, 징역 5년. ▲ 3등 기관사 이씨, 징역 15년, 징역 5년. ▲ 조기장 전씨, 징역 15년, 징역 5년. ▲ 조기수 이씨, 징역 15년, 징역 5년. ▲ 조기수 박씨, 징역 15년, 징역 5년. ▲ 조기수 김씨, 징역 15년, 징역 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