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치하가 시작되면서 아리랑의 저항성은 정점에 이른다. 1926년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에서는 “싸우다 싸우다 아니되면 이 세상 천지에 불지르자”는 저항의 아리랑을 노래했다. 이 영화를 계기로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는 경기아리랑은 본조아리랑으로 불리며 아리랑의 전범으로 자리잡았다. 최근들어 나운규의 아리랑은 일본음악의 논리에 맞춰진 것으로, 전통가락을 훼손시켰다는 문제제기가 있지만, 이 노래가 민중의 가슴에 저항의 불씨를 당긴것만은 사실이다.
김연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에 의하면, “날좀보소 날좀보소”의 밀양아리랑도 흥에 겨워 불리워졌던 노래만은 아니다. 3.1운동 당시 일본 경찰의 총격 앞에서 1만4천여명의 백성이 얼싸안고 외쳤던 노래가 밀양아리랑이었다는 것이다. 광복군 아리랑이나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항일가사를 거꾸로 불렀던 정선의 ‘거꾸로아리랑’ 등 일제강점기에 아리랑은 저항의 노래로 꽃피었다.
재미있는 것은 60-70년대 일본 형무소에서 가장 많이 불러진 노래가 아리랑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사회학자가 쓴 ‘저항의 노래’라는 책에 명시된 내용이다. 김 이사장은 “저항의 뜻을 알고 그들이 부른 것은 아니다. 일제시대 수감되었던 독립투사들이 아리랑을 불렀고, 그것을 일본인들이 답습했다고 볼수있다.”고 말했다. 일본인에게도 억압받는 자의 노래로 각인될 만큼, 아리랑은 뜨겁고 절절한 노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