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은 민중의 감정을 담는 그릇이었던 만큼, 시대의 바로미터가 됐다.
대원군 정권기에는 세도정치를 비아냥거려 “이씨의 사촌이 되지 말고 민씨의 8촌이 되려므나”는 노랫말이 유행했는가 하면, 구한말에는 조정의 외세를 경고해 “아라사 아차하니 영국은 영글렀네. 미국놈 믿지말라 일본이 일등이다”는 이른바 ‘아미일영가’가 널리 불리기도 했다. 또한, 1905년의 을사조약, 1910년의 한일병탄조약으로 대한제국이 멸망할때 민중들은 “백성을 버리고 가시는 님군은 발병이 난다”고 노래했다.
심지어 천연두 예방주사를 알리기 위한 ‘종두아리랑’, 문맹퇴치와 한글 보급을 위한 ‘한글아리랑’ 같은 계도적 아리랑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일제시대 총독부도 집권에 이용하기 위해 아리랑에 대해 세밀한 조사를 했다. 결과적으로 총독부는 대동아전쟁에 총력을 다하라는 내용의 ‘비상아리랑’을 보급했다. 비록 부정적 용도로 아리랑이 이용됐지만, 아리랑의 파급력을 일본도 간파했던 것이다.
아리랑은 이처럼 민중의 역사였고, 민중의 ‘지하방송’이었다. 때문에 필연적으로 아리랑은 민중의 투쟁사이기도 하다. 정선아리랑 중에는 조선창업과 이성계정권에 대한 반발을 읽을 수 있는 노래도 있다. 동학군들의 아리랑이나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시 백성들이 불렀던 아리랑, 한말 의병들의 아리랑도 모두 저항 정신을 담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