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법조계 비리사건이 국민들에게 전해졌다. 법을 잣대로 사회정의를 구현하는데 앞장서야 할 현직 고등법원 부장판사와 검사, 경찰 총경 등 10여 명이 사건 청탁 등과 관련해 법조브로커로부터 금품과 향응 로비를 받은 것이다.
조관행 전 부장판사 구속… 법조계 충격
결국,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재판부 이상주 부장판사는 법조브로커 김홍수 씨로부터 1억3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고 민ㆍ형사 재판에 개입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를 받고 있는 조관행(50) 전 서울고법부장판사, 브로커 김씨로 부터 사건 무마대가로 1000만원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를 받고 있는 김영광(42) 전 검사, 3000만원을 받은 혐의(특가법상 뇌물)로 민오기(51) 총경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특히 주목을 끌었던 인물은 고법 부장판사로서 차관급 대우를 받는 조관행 부장판사. 특가법상 알선수재 혐의가 적용된 그는 지난 2003년 양평 TPC 골프장 사업권 소송과 관련해 재판에서 이길 수 있게 도와달라는 청탁을 받고 김홍수씨와 소송 당사자 측으로부터 5~6건의 소송과 관련한 청탁을 받으면서 금품, 고급 수입 카펫 등을 받았다.
실질심사 내내 `전문가답게` 변호인의 조력 없이 직접 검찰 측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억울함을 호소하던 조 전 부장은 오후 8시45분께 법정을 나서며 마지막까지 “검찰 측의 주장이 너무 허위다. 혐의를 부인한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법원의 결론은 ‘구속’이었다. “고위법관의 신분으로 다른 재판에 관여해 고액을 수수했고 참고인들과 부적절한 접촉을 가져 구속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였다.
조 전 부장판사의 구속은 법조계 안팎에 충격으로 전해졌다. 법조인들도 `법관의 꽃`이라는 전 고법부장판사가 구속된 것에 대해 대부분의 “충격적”이라는 반응. 서울중앙지법의 한 관계자는 모 언론에서 “그간 크고 작은 법조비리 사건이 있었지만 한낱 변호사나 지방의 젊은 판사가 아니라 최고위직인 고법 부장이라는 데서 사안의 경중이 다르다”며 “법원이 내부 인사에 대해 좀 더 엄격한 잣대를 댄다는 측면에서 영장이 발부된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법조비리가 불거져 나오고 국민들의 비난과 불신이 고조되자 법조계는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비리사건으로 신뢰에 결정적 타격을 입은 대법원은 8월 16일 전국 28명의 법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장윤기 법원행정처장 주재로 법원장 회의를 열고 법조 비리 사건과 관련한 대국민 사과 및 후속대책을 논의하기로 했으며 정상명 검찰총장도 `법조 비리에 대해 “부끄럽고 참담하다”는 말로 몸을 낮췄다.
비리 연루자 더 있다. 모 판사, 검사, 변호사 7~8명 김홍수는 여기도 관련?
그러나 파문은 쉽게 가라않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법조비리에 대한 수사가 아직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구속된 조 전 부장판사 외에도 비리에 연루된 법조인이 더 있다는 ‘괴담’이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인규(李仁圭)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조 전 부장판사를 비롯해 이미 구속한 3명 외에 대법원 재판연구관 신분의 모 판사도 이미 여러 차례 불러 조사했다”며 “이 판사를 포함한 7~8명에 대한 수사를 이달 말까지 마무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검찰 수사대상은 브로커 김씨로 부터 1000만원의 돈과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대법원 재판연구관 신분의 판사 등 법관 2~3명, 모 현직 검사, 전직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 2명, 경찰, 금융감독원 간부 등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주로 브로커 김씨로부터 청탁과 함께 수 백 만원에서 수 천 만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를 받고 있으나, 당사자들은 금품 수수 사실 자체나 대가성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수사의 결과에 따라 더 많은 법조인이 구속자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대형 법조비리를 접한 시민들은 “어떻게 법원을 믿을 수 있겠냐”고 분통을 터트리는 모습. 특히 조 전 부장판사의 판결에 불복한다는 소송이 잇따르고 있는 것도 이번 법조비리 사건의 후폭풍이다. 실제로 조 전 판사의 판결을 받은 박 모씨(54)는 8월 9일 조 전 판사가 내린 판결에 대해 “브로커가 판결에 개입했는지 여부를 조사해 달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서울 중앙지검 종합민원실에 제출하기도 했다. 시민들이 판사의 판결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민심을 얻기는 어렵지만 잃기는 쉽다. 고강도 대응책을 주문하며 비리근절을 외치고 있는 사법부가 다시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조관행 고법 부장판사는 누구?
구속된 조관행(50) 전 고법부장판사는 후배들로부터 존경받다가 하루 아침에 수감자로 추락한 스타법관. 그는 지난 1982년 법조계에 입문한 이후 25년간 소위 `출세 코스`만 걸었다. 사법연수원 동기 중 선두주자에게 돌아간다는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94년 발탁돼 3년간 근무했으며 99년에는 사법연수원 교수를 거치기도 했다. 이후 서울지법 부장판사를 거친 뒤 2005년 차관급 대우를 받는 대전고법 수석부장, 올 2월에는 서울고법 부장판사에 임용됐다. 사법시험에 응시한 첫해 합격하지 못하고 고배를 마셨던 게 인생 일대의 최대 실패인 셈이다.
법원 내 성골(聖骨)이었던 그는 `잘 나가는` 판사였지만 법원 안팎에서 질투와 시샘도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몇몇 변호인 사이에서는 `권위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터무니없는 논리를 펴 다시는 재판에서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변호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