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민재 기자] 지난 8월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취임한 이재명 대표가 오는 5일 취임 100일을 맞는다.
당시 77.77%라는 역대 최고 득표율로 당선돼 다수 야당 대표로서의 위상을 구축했다. 하지만 전당대회 기간 내내 제기된 사법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당사 압수수색과 최측근 구속 등으로 현실화하며 이 대표의 리더십이 흔들리는 모양새다.
이 대표가 본인의 법적 문제를 당과 분리하는 용단을 내리지 못하면서 당력의 상당 부분이 이 대표와 이 대표 측근의 변호에 동원됐다. 이에 대한 당내 문제 제기가 이어지기도 했다. 당력이 이 대표와 그 측근 변호에 집중되는 사이 이 대표가 강조해온 '민생 살리기' 기조는 결국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는 데 실패했다.
검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이 대표는 지난 대선 때 언급한 '대장동 특검' 카드를 재차 꺼내 들었고, 지도부는 지난 대선 당시 제기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에 대한 의혹을 수사하지 않는 데 대한 수사당국의 불공정함을 강조하고 나섰다.
일련의 상황에 당내 일각에서는 소수지만 '분당론'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최측근 구속 등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이재명 체제가 반전을 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압도적' 득표율로 취임…잇따른 檢 수사에 단일대오 흔들
이 대표는 지난 8월28일 77.77%의 압도적 득표율로 대표에 당선됐다. 이는 직전 최고 득표율이 이낙연 전 대표 취임 당시 60.77%였던 점에 비춰보면 '몰표'에 가까운 득표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최고위원에 당선된 정청래·박찬대·서영교·장경태 최고위원도 선거 과정에서 이 대표 일정에 동행하는 등 '친명' 마케팅을 펼쳤다.
이 대표는 취임 직후 광주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시장을 방문해 지역화폐 등 민생 이슈를 강조하는 등의 행보를 펼쳤다.
하지만 취임 일주일 만에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로부터 소환조사를 통보받고 배우자인 김혜경씨가 소환조사를 받는 등 전당대회 기간 내내 제기된 사법리스크 우려에 직면했다.
이후 민주당사에 위치한 민주연구원 압수수색과 국회 본청 당 대표 비서실이 압수수색 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최근에는 이 대표의 최측근인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과 정진상 민주당 대표 비서실 정무조정실장이 구속되면서 이 대표에 대한 기소도 머지 않았다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혼란 속에, 초반에는 단일대오를 지키던 민주당도 당사 압수수색을 기점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설훈 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월20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당사 압수수색으로 '이재명 리스크'가 현실화했다고 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김해영 전 의원은 이 대표를 향해 "그만하면 됐다. 이제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와 달라"고 했다.
지도부는 "지금은 단결할 때"라며 자중을 촉구했지만 잡음은 계속됐다. 이 대표가 본인과 측근의 문제를 당과 분리하지 않으면서 당력이 변호에 투자됐기 때문이다.
이상민 민주당 의원은 지난 11월1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지도부와 대변인 등 당이 총체적으로 나서 해명하는 것이 마땅하냐. 이건 정치적 공방이 아니라 사법적으로 대응할 일"이라며 "자신의 결백과 무고를 밝히기 위해 대응해 무고를 밝히면 될 일이고 당이 올인하듯 나서는 것은 과잉이다.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한 수도권 의원은 "대변인이 영장에 나온 내용을 당사자보다 잘 알겠냐. 당사자인 이 대표가 직접 얘기해야지 대변인이 이야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지난 대선 경선부터 이번 전당대회까지 우려한 상황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분리가 안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 당직자는 "과거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탄압받는 것도 아니고 대표와 그 측근들이 이권을 챙겼다는 의혹 아니냐"며 "언제까지 당이 휘둘려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박용진·조응천 의원은 김 전 부원장에 대한 당헌 80조 적용을 검토해달라고 촉구했고 결국 김 전 부원장이 민주연구원장 직에서 사퇴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그런 사이 정국은 강원 레고랜드 사태와 이태원 참사 등 명백히 정부·여당에 귀책이 있는 사건들로 전개됐지만, 민주당의 각종 문제 제기는 그 합리성과 관계없이 '이 대표 방탄' 메시지와 뒤섞여 그 힘을 잃기도 했다.
이 대표가 본인의 수사 상황에 대해 발언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판단으로 말을 아끼면서 오히려 당 차원의 이 대표 엄호는 더욱 강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모양새다.
◆검찰 수사 맞서 외친 '민생'…실제 성과는 미흡
이 대표는 지난 8월 말 당권을 잡은 이후 '민생'을 최우선으로 강조해왔다. 검찰의 대장동 의혹 수사엔 대응을 자제하면서 "첫째도 민생, 둘째도 민생, 마지막도 민생"으로 사법리스크를 돌파하겠다는 취지였다.
민주당은 이재명표 7대 민생입법 과제로 ▲노란봉투법 ▲양곡관리법 ▲기초연금 확대법 ▲출산 보육·아동수당 확대법 ▲가계부채대책 3법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법 ▲장애인 국가책임제법을 선정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 민생법안 모두가 본회의 문턱도 넘지 못해, 이 대표의 입법 성과는 '0'에 머무르는 상황이다.
노동자 쟁의행위에 대한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은 당내에서도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다는 지적이 대다수다. 이 대표는 이정미 정의당 원내대표를 예방하는 자리에서 '프레임에서 (정의당에) 밀렸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쌀 초과 생산량 시장격리(정부 매입)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이 대표가 상임위원회 강행 처리를 밀어붙였던 사안이다. 민주당의 단독 처리로 농해수위를 가까스로 통과했으나, 이후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에 한 달이 지나도록 머물러 있다.
이 대표는 윤석열 정부의 노인 관련 예산 삭감을 비판하며 65세 이상 노인에게 40만원씩 기초연금을 주는 '기초연금 확대법'을 핵심 정책으로 내세운 바 있다. '출산보육·아동수당 확대법'과 함께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이지만, 정의당조차 막대한 재원 필요성에 "막 던지는 정책이어서는 안 된다"며 우려를 표했다.
여론 등을 지나치게 의식한 이재명 지도부의 민생 법안에 일관성이 없어 혼란이 계속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으로 민주당은 정부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2년 유예를 '초부자감세'로 규정하고 내년 1월 도입을 주장했지만, 이 대표의 우려 표명에 전면 재검토에 나섰다.
당내 더좋은미래는 공동성명을 내고 "2020년 여야 합의에 따라 입법화된 금투세는 예정대로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또 이 대표는 자신의 2호 법안 '불법사채무효법'을 중점 추진 과제에 포함했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미온적인 분위기다. 법정 최고이자율(20%)을 어긴 이자 계약을 무효로 하는 취지의 해당 법안은 고금리 현상이 지속됨에 따라 부작용을 우려하는 당내 우려에 제동이 걸렸다.
이 대표가 당 대표 취임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열었던 기자간담회 주제도 민생이 아닌 대장동 특검이었다. 민생예산 처리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나 설명은 없었다.
이 대표는 지난 10월21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언제까지 인디언 기우제식 수사에 국가 역량을 소진할 수는 없다. 대통령과 여당이 떳떳하다면 특검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며 대장동 특검을 제안했다.
◆조여오는 수사망에 다시 꺼내든 '대장동 특검' 카드
검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이 대표는 자신의 문제를 당과 분리해 대응하는 대신 '대장동 특검' 카드를 재차 꺼내 들며 역공에 나섰다.
이 대표는 지난 10월21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대통령과 여당에 공식적으로 요청한다"며 "화천대유 대장동 개발과 관련된 특검을 즉시 수용하라"고 역공을 펼쳤다. 검찰이 민주당사에 위치한 민주연구원 압수수색을 시도한 지 이틀만이었다.
다만 본인과 관련된 의혹뿐 아니라 "비리 세력의 종잣돈을 지켜주었던 대통령의 부산저축은행 수사"와 "대통령 부친의 집을 김만배씨의 누나가 구입한 경위" 등을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측에서 이를 단칼에 거절하며 대장동 특검은 잊히는 듯했으나 민주당은 지난 11월28일 대장동 특검을 또다시 요구했다.
박찬대 최고위원이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정말 떳떳하다면 조작·편파·보복 수사를 중단하고 대장동 특검을 즉각 수용하기를 바란다"고 밝힌 것이다.
그 전주에는 김 전 부원장이 사퇴하고 이 대표와 그의 가족의 계좌 추적 영장이 발부되는 등 이 대표에 대한 '악재'가 쏟아지고 당내 일각에서는 이 대표의 유감 표명 요구도 나오던 차였다.
지도부는 이 대표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불공정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김건희 여사에 대한 의혹도 다시 소환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지난 2일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과 학·경력 부풀리기, 논문표절 의혹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있으니 내 아내는 봐주고 내 정적은 표적 수사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는 것"이라며 "공정과 상식, 정의가 무너지면 정권도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임선숙 최고위원도 "자기편은 온갖 방법으로 감싸고 풀어주는 편파 수사가 극에 달하고 있다. 수많은 개미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으로 피눈물 흘리고 있다"며 "검찰은 김 여사를 즉각 소환 조사해서 엄단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께서 모두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분당론' 등 李 사법리스크 확대 위기에…반전 모색할까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가 임박하자 민주당 내에서는 분당 가능성도 공개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했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라디오에 출연해 이 대표가 전당대회에 출마할 당시 경고한 대로 분당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는 검찰 독재에 맞서 '단일대오'를 강조하고 있지만, '이재명 방탄'에 대한 불만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일부 비명(비이재명)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연말·연초에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검찰이 이 대표를 소환하는 시점에 집단행동이 분출되면 당이 최대 고비를 맞을 수도 있다.
이에 취임 100일을 기점으로 이 대표가 수사와 관련한 입장을 밝힐지 주목된다. 그간 당내에서는 이 대표가 최측근인 김 전 부원장과 정 실장의 구속과 관련해 유감 표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다만 오는 5일 이 대표의 취임 100일과 맞물려 11일에는 정 실장의 구속 기한이 만료돼, 검찰이 내주 중 정 실장을 기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에서는 '김건희 특검' 등을 역공 카드로 고심하고 있다.
사법리스크 확대에 따라 당초 예상됐던 이 대표의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가 무산되면서, 신년 기자간담회 등에서 정치·민생과 관련한 이 대표의 메시지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