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2022.11.28 (월)

  • 흐림동두천 8.6℃
  • 구름조금강릉 12.9℃
  • 구름많음서울 11.4℃
  • 구름많음대전 8.1℃
  • 구름많음대구 8.3℃
  • 구름조금울산 14.6℃
  • 광주 13.2℃
  • 구름조금부산 19.7℃
  • 흐림고창 17.3℃
  • 구름많음제주 22.0℃
  • 흐림강화 10.6℃
  • 흐림보은 5.4℃
  • 흐림금산 3.6℃
  • 흐림강진군 15.0℃
  • 맑음경주시 13.1℃
  • 흐림거제 14.4℃
기상청 제공

사람들

[인터뷰] 열린공감TV 정천수PD “경영권 분쟁? 찬탈이다” ①

URL복사

이전 멤버 현 ‘시민언론더탐사’와 ‘의결권금지ㆍ신주발행 무효 가처분 소송 진행 중’
정PD “일방적 횡령범으로 몰려...가처분 10월 중 결과 나온다”

 

[시사뉴스 김정기 기자] 탐사보도전문 ‘열린공감TV’는 유튜브를 플랫폼으로 운영되는 언론이다.  현재 72여만명 구독자와 함께 하며, 지난 3월 대선을 앞두고 100만 구독자를 목전에 두기도 했다.

 

열린공감TV를 창립했던 정찬수 PD는 "‘오로지 진실'을 모토로 기존 언론이 하지못한 특종을 거듭 독자들에게 인정받았다" 자부한다. 매달 들어오는 후원금도 2억여원에 이르며 지난 6월 법인 잔고는 20억여원에 달하기도 했다.

 

탄탄한 시민들의 후원은 대안언론을 목표로 한 정PD 포함 기존 언론에서 열린공감TV로 이직한 기존 매체 출신 기자들에 대한 응원이었다. 탐사보도 중심 ‘새로운 언론대안'으로 꼽히기도 했던 열린공감TV.

 

현재는 파열음 속에 '기존 열린공감TV vs 시민언론 더탐사'로 나뉘어져 법정 소송이 진행 중이다.

 

방송을 통해 양측은 서로를 비난한다. 정PD는 "대선을 거치며 보수 중심 언론지형을 바꿔야 한다는 열망에 시민포털을 만들어야 한다는 시민들의 요구가 커졌다"며 자신이 이를 추진하기 위해 "미국에 건너가며 모든 일이 시작됐다" 말한다.

 

정 PD가 미국에서 있던 지난 6월 9일 예전 열린공감TV 멤버들(현재 시민언론 더탐사 소속)은 ‘긴급생방송‘'이라는 제하 방송을 통해 “정PD가 시민포털을 빌미로 미 한인동포들에게 후원금을 받아 이를 횡령했다” 주장 "지난 7일 대표이사인 그를 해임했다" 방송한다.

 

정PD는 "열린공감TV 멤버들(현재 시민언론 더탐사 소속)은 내가 서둘러 귀국하던 6월 10일과 11일 (비행기에서 꼼짝할수 없었던) 18시간 동안 추가방송을 통해 윤석열 정부가 무서워 미국으로 도망간 횡령범, 사기꾼 이라 비난했다" 덧붙였다. 열린공감TV를 창립  열린공감TV 멤버들(현재 시민언론 더탐사 소속)을 영입했던 정천수PD를 통해 그가 주장하는 바를 들어봤다.

 

지난 3월 대선 후 갑작스러운 미국행으로 사람들 의견이 분분했다. 왜 갔나?

 

미국으로 출발한 때가 지난 5월 2일이다. 대선 과정을 통해 한국 언론지형이 너무 편향적이라 판단했다.

 

지금도 일반 시민들이 기사를 접하는 것은 포털사이트를 통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포털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보니 당연히 언론 소비자에게 한쪽 의견이 전달되는 것이 더 컸다. 시민들 후원으로 열린공감TV가 성장한 만큼, 새로운 포털을 통해 치우친 언론을 바로 세우고 싶었다.

 

이런 의견을 당시 열린공감TV 멤버들에게 전했고, 윤 정부 출범으로 한국에서 '정부허가제인 시민포털 '진행이 힘들다 판단 미국으로 출국하게 되었다. 구성원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나는 판단했다. 출국 전날 내 생일을 겸해 모든 직원이 함께 생일케익을 나누고 응원과 격려 속에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을 나올 정도로 반대가 없었다.

 

미국 도착 후 옵티머스펀드 사기사건 주범으로 도피 중이라 알려진 (옵티머스) 전 대표 이 모씨와 동행했다.

 

미국에서 모금을 제안한 사람도 이 씨였고, 그의 도움을 통해 현지에서 은행 계좌를 개설하고 동포분들을 만나 강연과 좌담을 통해 후원금을 모았다. 현지에서 뜨거운 반응을 통해 후원금을 모았고, 현금으로 받은 돈은 이 씨에게 전달했다.

 

당시 모금계좌는 이 씨가 '여행비자인 나는 계좌를 단독으로 만들 수 없다'해 그의 아내와 공동으로 만들어 입금 받았다 (후일 그 말이 거짓말인 것을 알았다). 시민들의 집단지성을 목표로 진행했기에 포털관련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시민포털추진위원회’도 설립했다.

 

서버를 미국에 두고 운영하면 현정부 입김이 개입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행동이었고, 이에대해 열린공감TV 멤버들(현재 시민언론 더탐사 소속)은 반대하지 않았다.

 

 

처음에 이 모씨에게 도움을 받았다고하는데, 어떻게 알게된 사이인가?

 

열린공감TV 멤버(현재 시민언론 더탐사 소속)였던 강 모 기자를 통해서다. 옵티머스와 관련한 취재를 위해 2021년 초에 단톡방에 강 기자가 초대 소개해줘 알게되었다.

 

미국에서 활동하며 이 씨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던게 사실이다. 현금으로 전달한 후원금으로 맥주를 사먹고 자신 생활비로 유용하는 등을 포착하기도 했다. 마음 속으로 '헤어질 결심'을 하던 중 한국에서 열린공감TV 멤버들(현재 시민언론 더탐사 소속)로 부터 '이 씨와 관련 안좋은 이야기들이 들리니 조심스럽게 행동했으면 한다'는 의견이 왔다.

 

현지에서 사실 경황이 없었다. 시민포털을 위한 강연회 이외에도 그때 마침 미국 얼바인에 있던터라, 한동훈 법무부장관 자녀스펙에 관한 여러 제보가 쏟아졌다. 기존 일정 외에 취재를 진행 특종 기사를 유튜브에 업로드하는 등 정신없이 지내는 상황이었다.

 

취재와 편집을 혼자서 며칠 밤을 새워가며 하다보니 한국에 있는 멤버들 의견을 반영해 행동으로 즉각 옮긴다는게 쉬운일은 아니었다.

 

또, 어떤 일이 있었나?

 

바쁜 미국 일정 속에 6월 초 박 모 기자(RTV 이사장ㆍ전 춘천 MBC 기자)가 미국에 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당시 박 기자는 강 기자 소개로 알게 되어 합류, 체계적인 운영을 위해 박 기자를 사외이사로 선임하자는 (강 기자의) 제안으로 열린공감TV 법인 사외이사를 맡고 있었다.

 

미국에 온 박 기자는 처음에는 나를 도와주는 듯싶었는데, 이후 강ㆍ최ㆍ박 3명이 진행한 방송을 보니 '잠입'를 했다고 표현하더라. 대표를 감시하고 해임 구실을 찾기 위해 '선의를 가장해 접근한 행동'에 충격을 받기도 했다.

 

당월 2일  박 기자는 자신이 준비한 아이패드로 '화상 이사회'를 열자고 했다.

 

주요안건은 시민포털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시민포털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나는 주체를 다르게 세워야 한다고 판단했다. 열린공감TV도 언론매체이기에 주체가 될 경우 문제가 생길거라 생각, 당시 열린공감TV가 20억여원 법인자금을 갖고 있음에도 미국에서 모금을 시작했었다. 이에 대해서 기존 멤버들과 공감이 있다고 판단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또한 미국 일정을 도와주던 이 씨와 즉각적인 결별을 요구했다.

 

이 씨가 주선한 워싱턴 일정이 있어 '그것까지 진행 후 이사들의 의견을 반영할테니 시간적 여유를 달라'답하는 등 서로 의견을 주고받던 중 (미국 현지) 옆에 있던 박기자가 불쑥 "정관에 따라 대표이사 외 한명의 이사가 더 이사회를 소집할수 있다"며 "(구성원 중 한명인) 최 모 촬영감독에게 이를 맡기자" 제안했다.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기에 나는 형식적으로 '그렇게 하시구요' 답했다.

 

이사회는 이 발언을 빌미로 그 부분을 불법 녹취했고, 이를 근거로 최 감독이 며칠 후 같은 달 7일 이사회를 소집 나를 해임했다.

 

 

대표이사 해임은 이사회가 아니라 주주총회를 통해 가능하지 않나?

 

먼저 분명히 해야 할게 있다. 열린공감TV는 2020년 4월 내가 설립했고 7월 경에 가서야 촬영과 관련한 업무을 도와주던 최 모 감독과 함께 2020년 9월초 언론법인으로 출발했다. 처음 방송 소재는 '사법피해자모임'에 관한 것으로 억울한 이들을 위한 방송을 진행했다.

 

언론법인화 할 당시 함께한다는 의미에서 최 감독에게 49%의 지분을 무상으로 줬다. 그런데 이게 화근이 되었다.

 

2020년 11월 한 사법 피해자를 통해 경향신문에 근무하던 강 모 기자를 소개받았고, 탐사보도로 영역을 확장한 후 강 기자와 많은 취재를 함께 했다. 그는 경향신문 정직원으로 열린공감TV하고는 '취재연대 기자' 신분이었다.

 

이 과정에서 페이스북 친구였던 김 모 작가를 합류시켰고, 일주일에 2~3차례 탐사보도가 힘들다는 강 기자의 건의를 받아들여, 그 소개로 박 모 전 춘천 MBC 기자(당시 RTV 이사장)가 합류했다. 박 기자 또한 RTV 이사장 신분이었기에 열린공감TV에서 지위는 취재연대기자였다.

 

법인 설립 초기에 감사로 내 처를 선임하기도 했음에도 성장 후에는 회계법인으로 이를 바꾸기 위해 알아보는 중이었다. 지인을 채용안한다는 경영철칙으로 나와 관계있는 사람은 회사 내에 한명도 없었다. 당시 강 기자는 경향신문 소속으로 '사직 후 정식 합류'를 원하는 내 요구를 계속 거절했다.

 

강 기자가 정식으로 합류한 것은 대선이 끝난 후 2022년 3월이다. 이런 과정에서 강 기자의 지속적인 처우 개선 요구가 있었고, 때론 과한 대우를 요청해 나와 불화가 생기기도 했다.

 

내가 미국에 있던 시기 결정적인 사건이 터진다. 창업 멤버인 최 감독이 6월 2일 방송 중 '본인 소유 아이패드를 통해 음란사이트 접속한 기록이 생방송에 노출되는 최악의 사태'을 저질렀다.

 

나는 최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시민들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또한 당시 현지에 함께 있던 박 기자에게 '최 감독과 헤어지겠다'는 장문의 SNS를 보냈다. 또 최 감독이 회사에 남아있겠다면 ▲나에 대한 사과 ▲음란 방송에 대해 직원들에게도 사과 ▲재발방지약속 ▲나 또는 최 감독 중 한명이 자의적으로 회사를 떠날 시 아무조건 없이 주식을 법인에 반납할 것 등 약속을 요구했다.

 

당시만 해도 박 기자가 진중하다고 여겼고, '나와 최 감독'을 중재할 것이라 믿었다. 그런 기대와 달리 다음날 3일 돌아온 답은 '내가 자진사임했으면 한다'는 요구였다. 내가 가진 주식 일체도 법인에 반납해달라는 사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당연히 거부했고 그때부터 이사들이 나를 제거하려 하는구나 생각을 하게 되어 증거를 모으기 시작했다.

 

앞서 이야기했듯 회사를 설립할 당시 법인 설립을 법무사에게 맡겼고 정관도 타 회사 것을 인용했다. 이후 알고보니 이사회가 주총을 통하지 않고 대표이사를 해임하고 선임할 자격이 있는 엉망으로 만들어진 정관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미국으로 출국하고 ▲박 기자가 (자신들의 말로는 ‘잡입’을 위해) 미국에 오고 ▲박 기자가 이사회 개최권한을 최 감독에게도 주자고 주장하고 ▲이를 녹취 후 근거로 삼아 7일 강ㆍ박ㆍ최 3명의 이사들이 불법으로 이사회를 개최해 나를 해임했다. 나에게 자신 사임과 주식 반납까지 요구하고 이를 거부하자 해임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다시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거대한 음모로 자기들끼리 공모해 나를 사냥하듯 몰아 해임시킨거다. 7일 이사회에 대해 "동의할수 없음"을 명확히 밝히고 미국에서 일정을 진행했다. 동포들과 약속이 우선이라 판단했다.

 

펜실베니아 일정 진행 중 강 기자가 전화가 와서 "자기에게 주기로 한 주식을 달라" 요구했다. 예전 경향신문 해고 전 내가 자신에게 "사직을 하고 와라. 그러면 주식도 주고 할테니 정식으로 함께 일하자" 말했던 (구두)제안을 당시에는 무시하다가 이제와 무작정 요구했다 (이 사항은 미국에 오기 전 최 감독에게 철회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아무래도 미국에 더 있기 힘든 상황이라 판단,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했다.

 

- 이어짐 -

 

[인터뷰] 열린공감TV 정천수PD “경영권 분쟁? 찬탈이다” ①

[인터뷰] 열린공감TV 정천수PD “경영권 분쟁? 찬탈이다”

 

본문에 기재된 시각은 한국 기준입니다.

열린공감TV 정천수PD 주장에 대한 반론은 더탐사가 올린 영상으로 대신합니다.

이에 대한 반론은 언제든 sisanews@hotmail.com 으로 부탁드립니다.

 


배너



배너

커버&이슈

더보기
【커버스토리】 거래 멈춘 부동산...시장 안정·실수요자 부담 완화가 핵심
[시사뉴스 김철우 기자] 경제가 내년에는 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잇달아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 따르면 전국 대학 경제 및 경영학 교수 204명의 반 이상이 현재 상황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와 비슷하거나 더 어렵다고 진단했다. 올 무역수지 누적적자 3백7십6억달러, 물가 상승에 내수는 얼어붙고, 금리도 급격히 오르면서 자금시장까지 나빠지고 있다. 그 한 가운데에 부동산 시장 발 신용위기 우려가 있다. 부동산은 우리 국민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실제 체감하는 위기의 강도는 더 클 수밖에 없다. 부동산시장 상황, 정부 대책,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 등을 짚어봤다. 주택시장 침체 본격화...서울아파트 거래 최저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이 좀처럼 빙하기에서 벗어날 기미가 없다. 이런 추세가 내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금융시장 전반으로 위기감이 확산중이다. 신규 분양과 기존 매매시장, 금융시장이 함께 침체하는 복합위기로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미 ‘거래 절벽’의 심각도는 임계치에 도달했다. 올해 수도권 아파트 매매 거래량(1~9월)은 전년 동기보다 70.3%나 줄었다. 전체 주택 대비 거래량은 통계 작성 이래

정치

더보기
민주당 '사회적경제 3법' 상정 요구에…세제개편안 30일까지 심사 처리 불투명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여야가 세제 개편과 '사회적경제 3법' 상정 등을 두고 대립각을 세우면서 내년도 예산안과 연동되는 예산부수법안 심사에 돌입하지 못했다. 심사가 미뤄지면서 법정 기한인 오는 30일까지 세제 개편안을 처리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이날 오전 10시에 조세소위원회 회의를 열고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을 비롯한 세제 개편안을 심사할 예정이었으나, 더불어민주당 측의 불참으로 회의를 열지 못했다. 여야는 조세소위에서 법인세 인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유예, 종합부동산세 과세기준 완화 등을 논의해 왔으나, 입장차만 확인한 채 논의를 뒤로 미룬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민주당이 '사회적경제 3법'의 경제재정소위원회 상정을 요구하며 지난 24일부터 조세소위 심사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사회적경제 3법은 사회적기업과 마을기업, 생활협동조합 등 지원과 국공유지·국유재산 임대, 별도 기금 설립 등을 담고 있다. 국민의힘은 세제 개편안과 무관하고, 소위 '운동권 지원법'에 불과하다며 상정을 반대하고 있다. 여야가 예산부수법안 논의를 뒤로 미룬 데다 사회적경제 3법 상정 등을 두고 대립각을 세우면서 세제 개편안 논의가 또 다른 암

경제

더보기

사회

더보기

문화

더보기
코리아아트, 해외진출을 위한 발판 마련 필요… ‘이명호’ 작가의 작품 주목받아
[시사뉴스 김남규 기자] 금보성 이사장은 최근 제주 비엔날레에 참가한 이명호 작가의 작품들을 인상 깊게 보았다고 밝혔다. 이명호 작가는 뉴욕 사진전문 요시미로 갤러리 전속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세계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국내 작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작품은 ‘동양의 선 정신을 가장 잘 표현한 사진’이라는 평을 받았으며, 혹자는 대지 미술가 크리스토의 작품과 비교하여 ‘크리스토는 나무를 포장해서 감추었지만, 이명호는 자연의 나무를 캔버스에 담아 드러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금보성 이사장은 “세계시장은 국내 시장처럼 녹록치 않으며, 해외 아트페어를 통해 국내 작가들이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일회성에 그칠 때가 대부분”이라며 “특히 경제적 어려움과 기획의 부재가 가장 큰 어려움이며 회화, 조소, 사진 등 여러 분야에서 한국 작가들의 활동은 미비하다”며 “한국 작가들의 다양한 장르 진출을 위해 기업과 화랑, 작가들이 콜라보하여 해외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명호 작가의 작품은 관객들에게 명상적 또는 치유적 감성을 선사한다. 들판에 또는 산 위에 홀로 서 있는 나무가 기댈 수 있도록 무덤의 테두리 같은 곡

오피니언

더보기
【박성태 칼럼】 “남들에게 훈계하고 지적질 그만하고 너나 잘 하세요”
지난주 토요일 고교동기와 동기부부 60여명이 버스 2대를 빌려 한탄강 주상절리와 고석정 일대 야유회를 다녀왔다. 지난 몇 년간 코로나 팬데믹 등으로 인해 야외활동에 제약을 받다가 코로나 엔데믹시대로 접어들면서 고교 동기들이 단체여행길에 나선 것이다. 고교졸업 47년만에 보는 동기들도 있으니 얼굴은 어렴풋이 알아도 이름은 어사무사했다. 그래서 여행을 준비한 집행부는 여행 참가자 한사람 한사람의 가슴에 부착할 명찰을 정성스레 만들어왔고, 여행 일정이 끝날 때까지 모두들 그 명찰을 가슴에 달고 여행을 다녔다. 명찰에는 고교 3학년 당시 반과 이름이 표시되어 있었다. ‘3-0 반(班) 000’. 이렇게 표시된 명찰을 가슴에 달고 고교 재학 시 불렀던 응원가며 교가를 부르니 마주치는 관광객들이 관객이 되어 “어느 학교냐?” “60넘은 노인네들이 수학여행 왔나보다” “우리도 저렇게 한번 여행오자”라며 관심을 보였고 뿌듯한 마음으로 여행을 마치고 마지막 코스인 저녁 식사장소에 도착했다. 이때 버스에서 사회를 봤던 오지랖 넓은 한 친구가 집행부를 도와준다며 명찰을 걷기 시작했다. 왜냐면 그 명찰은 다음 모임에서도 유용하게 재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식사하는 테이블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