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귀하게 여기는 것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건강과 장수, 명예와 권세, 부귀와 영화, 지식과 지혜를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과연 가장 귀한 것은 무엇일까요?
삶의 지혜가 기록된 잠언 3:13~17을 보면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잠 4:7),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 1:25) 교훈합니다.
악하고 간교한 꾀도 지혜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러한 지혜는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수 없으니 많은 것을 얻었다 해도 언젠가는 사라집니다. 반면 선하신 하나님의 지혜를 받으면 모든 일에 형통하며 가정이나 학교, 직장 등 자신이 있는 곳에서 사랑받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3:17에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 했는데, 여기서 “위로부터 난 지혜”란 하나님의 지혜를 말합니다. 선하신 하나님을 경외하여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을 이루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를 받는 길입니다(잠 9:10, 16:6).
선과 사랑, 진리 자체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지혜로 말씀하고 행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0장을 보면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되물으시지요.
이에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지혜롭게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말씀하시지요.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했던 율법사는 자기 의도대로 되지 않자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라고 다시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마음에 사랑이 없음을 아셨지만, 그가 감정이 상하지 않으면서 깨우칠 수 있도록 선한 사마리아인을 비유로 들어 설명하시지요.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되었을 때 제사장은 보고 피해 지나가고 레위인도 마찬가지였지만 사마리아인은 불쌍히 여겨 돌봐주었다면 네 의견에는 누가 그의 이웃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당시 사마리아인은 이방 민족과 혼혈되었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에게 천대를 받았습니다. 율법사는 어쩔 수 없이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라고 대답하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말씀하십니다. 율법사에게 사랑이 없음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으시면서도 충분히 깨우칠 수 있도록 비유를 들어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마음에 선이 부족한 사람은 예수님과 같은 상황을 만나면 상대를 찌르기도 하고 무안을 주기도 합니다. 직접적으로 찌르지 않더라도 상대의 악한 의도를 눈치 채고 비꼬는 말로 되갚아 주기도 하지요.
하지만 예수님처럼 선한 지혜가 있는 사람은 상대를 무시하거나 감정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설명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요, 선의 지혜입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야고보서 3:17)글: 만민중앙교회 당회장, GCN 방송 이사장